미용실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

선을 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웃지 않기로 했다

by merry

선을 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웃지 않기로 했다


나는 미용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감을 하고 나오는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웃으며 인사하고,

웃으며 설명하고,

웬만한 상황은

웃음으로 정리했다.


그게 프로라고 믿었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 것,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게 서비스라고 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웃음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선을 지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만만하게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 시간을 넘겨도 웃었고,

요구가 늘어나도 웃으며 “네”라고 했고,

말투가 거칠어져도 농담처럼 넘겼다.


웃고 있었지만

상황은 늘

내가 더 감당해야 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선을 넘는 순간은

대단한 사건으로 오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말,

아주 가벼운 태도로 시작됐다.


“이 정도는 괜찮죠?”

“단골한테는 원래 좀 해주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웃었다.

웃음으로 넘기면

상황이 커지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말 무례했던 한 고객이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가 되기까지

내가 매장을 옮길 때마다 따라와 주던,

오래된 단골 수호 씨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선생님도, 부원장님도, 원장님도 아닌

나를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호칭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반말과 경어가 섞인 말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내 동의를 묻지 않았다.


반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관계의 합의 없이 시작된 반말은

고객과 디자이너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무너뜨린다.


그는 점점 편해졌고,

그 ‘편함’은 무례로 바뀌었다.


매번 올 때마다

매장 어린 여자 직원들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술자리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다 어느 날,

직원들과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우연히 그와 그의 친구들을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내가 함께 있던 직원을

자기 친구에게 소개해 달라고 했다.

기혼자라고 하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엔조이할 건데…”

그 말 한마디로

모든 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이 있었다.

결혼 후 주말부부였던 나에게 그는 말했다.

“누나, 신랑 근무지에 애인 있을걸요.

요즘은 다 그러고 사니까

누나도 즐겨요.”

그 순간 알았다.

이 관계는 여기 까지라는 걸.


“수호야, 우리 너무 오래 봤나 봐.

이제 다른 곳에서 스타일 찾아.”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어떤 말을 해왔는지

끝내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문가와 고객 사이의 선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무조건 웃고 받아주는 것이

친절은 아니라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나의 친절함과 친근함이

그에게는

더 많은 요구를 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어 있었다.


선을 넘는 말은 계속됐고,

나는 계속 웃었다.

그리고 몇 번의 침묵 끝에

멈췄다.

그만 오라는 말은

찰떡같이 알아들었고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어디선가 그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말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게 무례였다는 걸

지금은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다.

선을 넘는 순간,

더 이상 웃지 않겠다고.


화내겠다는 뜻도 아니고,

무례해지겠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웃음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웃음을 거두고

표정을 정리하고

말을 짧게 한다.

반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건 어렵습니다.”

“그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신기하게도

선을 분명히 하자

관계가 더 편해졌다.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고 불편해하지 않았다.


기준이 보이면

그걸 따른다.

그 기준을 잡는다는 게 어려웠다.

그때 알았다.

웃음이 친절인 게 아니라,

기준이 친절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웃으며 일한다.

하지만

아무 때나 웃지 않는다.


선을 지켜야 할 순간에는

기준을 먼저 꺼낸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고,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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