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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an 04. 2022

사피엔스 각각의 인생은 더 나아지고 있나

<사피엔스>

이 책은?


20여만 년 전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류가 어떻게 지금 우리 종과 같은 인류가 되었고, 다가오는 신인류의 새로운 역사는 어떤 모습일지까지 그려보는 책이다.


지난 7만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류 종을 제치고 현재까지 살아남았는데, 크게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정보혁명을 지나 이제 생명공학 혁명의 길까지 나아가고 있다. 거대한 물결을 넘으면서도 우리의 감정과 욕구는 그 어느 혁명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았다. 저자는 과연 우리 종의 미래도 그러할 것인지 큰 물음을 남기면서 마무리한다.


상상으로 지구를 접수한 사피엔스


특히 힘도 없고 몸집도 작은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를 통해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수많은 무리의 협동을 이끌어 낸 과정과 어떻게 지구를 접수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신, 국가, 인권, 돈 등의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발명품 역시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는 시각 역시 흥미로웠다. 상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동굴에서 큰 동물을 피해 하루하루 생존하는 작은 동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보는 우리 인류는 말 그대로 상상으로 번영하기 시작하여 상상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간다.


진리란 건 없을지도


그러고 보면 모든 신념, 가치가 상상이나 다름없다. 책에는 근거와 예시가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차별은 잘못된 것'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 같은 보편적인 사상 역시 상상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화라는 자연의 법칙은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한다. 상상의 질서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긴 해도, 우리가 특정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도 결정해왔다. 나의 개인적인 욕망이라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 예시를 읽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의 흔한 욕망인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하는 것도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엘리트는 자신의 재산을 피라미드를 짓고 자신의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데 썼지, 해외에 쇼핑을 하러 간다거나 휴양 또는 스키 휴가를 보내러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 책에선 '낭만주의적 소비 지상주의'를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이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꿀 것이다" 하는 낭만주의적 신화가 되풀이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무한한 경험의 시장은 결국 나름대로의 피라미드인 것이다. 그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 우리는 결코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하는 신화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서늘한 진실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토록 긴 인류 문명의 거대 서사 속 ‘나’라는 한 사피엔스의 사회적 환경, 생활양식, 사고방식, 선호, 욕망에 대해 객관적으로 쉽게 바라보게 해 주는 책은 아직 없지 않을까? 우리가 흔히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을 때 그 진리는 결국 변하는 게 아닌가 묻게 한다. 진리라고 여기는 것도 어쩌면 긴 사피엔스 역사 속에서 우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고, 또 다른 진리에 자리를 내어 주기도 하면서 모습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사피엔스 각각의 인생은 더 나아지고 있나


6종의 호모   지금의 우리 종은 어쨌든 그런 상상하는 능력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사피엔스가 인지・농업・과학혁명을 거치며 인류 집단으로서는 전체 파이가 증가하는 결과를 이루어냈을지 몰라도 개인의 삶은 수렵채집인의 그것보다  팍팍해졌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며 우리가 쌀을 길들인  아니라 쌀이 우리를 길들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배나 빠르게 만들고 우리의 일상에 불안과 걱정을 생산해 내는 주범 역시 농업혁명이라는 것도. 저자는 역사가  과정에서 개개인의 삶을 비추진 못함을 여러  확인시켜 주며 문제를 제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과 동물을 착취하고, 동・식물을 멸종시키는 무관심하고 아무 생각 없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 종은 의기양양하게 이것을 만들어 냈고, 저것을 이루어 냈다고 주장하지만, 저자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마지막에 분명히 드러난다.


"불행히도 지구 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인류는 왜 이 이모냥이냐' 하는 궁금증이 드는 사피엔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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