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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an 16. 2022

시간이 쌓인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귀해질 수밖에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기록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 나에게 기록이란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는 일기장과 태그로 검색할  있는 에버노트 기록의  정도에 불과했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아졌지만,  시간 사이사이 촘촘하게 바라보지는 못하는  같았다.


결과적으로 기록은 꼭 부지런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멋진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랑도, 취미도, 삶도, 책으로 배우는 나는 이번엔 기록을 책으로 배워 보기로 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김신지 지음)>와 <아무튼, 메모(정혜윤 지음)>을 동시에 읽었는데, 둘 다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인 소개팅남 같은 느낌이라 꼭 소개하고 싶다. 무엇보다 어떤 날 내가 '뭘 기록하지' 혹은 '아 귀찮아' 할 때 다시 들여다보기 위한 나를 위한 기록이랄까.


오늘은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이 책은 <아무튼, 메모>와 비교하면 조금은 가볍지만 읽으면서도 '아 지금 받아 적자'하며 기록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게 했다. <아무튼, 메모>에는 저자의 성장 기록까지 풍부하게 담겨서 읽으면서 배부른 느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좀 더 기록에 관한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이가 깔끔하게 정리한 실용서+기록 계발서(?) 느낌이라 날 움직이게 만드는 느낌. 두 책 다 줄을 좍좍 긁으며 신나게 읽었던지라 이 두 매력적인 소개팅남을 어쩌나 하는 느낌이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그러므로 기록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던져 주었는데, 기록 역시 답은 없으며 그저 내 것을 내 방식대로 쌓는 일은 다 기록이 되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덕분에 내 에버노트에 고작 '문장 수집, 생각, 하고 싶은 것' 정도인 카테고리가 늘어날 예정이다.


특히 기록을 남기고 싶은 아이디어는 아래와 같다.


- 좋은 순간 모음집(이건 내 일상을 돋보기를 들고 찾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 1일1줍(이거 정말 근사하다. 긁어서라도 만들고 싶은 기록)

- 내가 들은 좋은 말 메모장(바로 시작했다, 이게 모이면 힘들 때 들여다보고 힘을 얻겠지?)

- 나만의 느낌창고("내 느낌에 내가 댓글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 아름다운 이야기 수집(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 나만의 아름다운 이야기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야겠다)

- 월말결산!(이것도 바로 시작했다. 생각보다 좋았던 일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달 한 달이 재미있을 듯)

- 영감노트(이것도 바로 시작! 제목에 꽂혀 산 책이나 콘텐츠, 공간이 매력적인 카페나 전시장에 대한 기록+나만의 의견)

- 반복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요가일기, 수영일기, 점심일기 등... 난 드로잉 일기와 '손바닥 육퇴일기'를 시작해 본다)

- 냉장고 쪽지(저자는 어머니가 쓴 냉장고 쪽지를 수집해야겠다는 발상을 했는데, 반대로 난 아들에게 그럼 냉장고 편지를 매주 쓰기로)


좋은 건 왜 좋은지 의견을 붙여 "저축하듯 기록" 하는 것이 포인트. 삶을 기록하는 것이 멋진 것은 "내가 나로 살아서 할 수 있는 기록이자 나밖에 할 수 없는 기록"이며 "먼 미래의 내가 좋아하리란 걸 분명히 알아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저자.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바로 시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영감노트에 대해 좀 더 덧붙이면, 저자는 "내가 좋다고 느낀 것엔 다 이유가 있다"라고 하며 그렇게 느낀 순간을 기록해두지 않음 금세 잊게 되므로, '순간을 모은다'라는 생각으로 정확히 어떤 포인트에서 좋았는지 기록하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번 나의 일에 활용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가 아니라 '나는 뭘 좋아하지'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영감노트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영감을 어떻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알려 주어 바로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저자는 '무자극 콘텐츠 연구소'라는 페이지도 소개했다. 거기선 일상을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쉼을 주는 '햇볕을 받고 있는 벽돌' 같은 말 그대로 무자극 거리를 기록한다고. 그러고 보면 기록을 잘하는 이도 계속 기록에 대해 이렇게 공부를 하는구나. 그렇게 영감을 얻고 자기 방식대로 기록하고. 그게 어쩌면 기록을 잘하는(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비결 아닐까.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 하라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가 잘 녹여 있었고, 보통 그렇듯 나의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다. 매일 아들 영상은 열심히 찍었지만, 엄마 아빠의 영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했다. 고향에 가면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찍어야지. 물어보지 않아 듣지 못했을 수많은 엄마 아빠의 이야기도(좀 부끄러워서 이건 아직 '언젠가' 하기로).


한편 부모에게 육아일기를 선물 받은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이 추가로 생겨난 것 같으며 인생이 힘들 때마다 충전해 주는 보조배터리가 되어주었다고.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준 마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았기에 꼭 기록해 보고 싶다. 나의 냉장고 쪽지와 손바닥 육퇴일기도 그렇게 아들에게 선물 같은 추가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그가 살면서 사랑의 힘으로 충전될 수 있기를.


"시간을 쌓는다는 것은, 마음을 쌓는 일과 같아요. 무엇보다 그렇게 쌓인 마음의 힘이 강해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생의 어떤 바람에 휘청거리게 되더라도 다시 두 발을 딛고 굳건히 설 수 있도록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중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하나라도 더 캘 게 없나 궁리하게 된다. 난 그 조밀 조밀하고 따뜻한 일상을 원한 것이다.


기록은 즉 나하고 잘 지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짧게라도 메모를 남겨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에 쓸데없이 힘 빼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면 그 문장들이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기록을 남겨야 할 이유가 계속 생겨나게끔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어떤 기록을 시작하든 시간이 쌓인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귀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매일 기록하는 사람은 하루도 자신을 잊지 않는다"라는 문장들이 날 설레게 한다. 그리고 즐겁게 기록할 것을 권유한다.

나를 위해 인생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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