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짓다>
준비 중인 브랜드 이름은 순전히 내가 추구하는 것들의 조합이기는 하나, 이것이 브랜드 네이밍으로서 적합할까? 그런 물음에서 들게 된 이 책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을 알려 주었다.
브랜딩에 관한 인사이트들로 사적인 기록을 꽉꽉 채우게 해 준 책 <브랜드; 짓다>.
카누, 티오피, 오피러스, 서울스퀘어, 뮤지엄 산, 올림픽 슬로건 등 수없이 들어 그 글자만 보아도 떠오르는 브랜드, 그것의 이름을 지어준 국내 최고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 민은정 저자의 책이다. 브랜드 네이밍은 단순히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그것은 그 본질로서 살아가고 성장하게까지 한다.
단순히 껍질, 그 형식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껍질을 만들기 위한 본질을 파고든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이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가 이름을 짓는 방식만이 아닌,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배우고, 브랜드란 무엇인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까지 엿볼 수 있어 의미가 컸다.
모든 생물은 변화를 통해 성장한다. 애벌레는 변화 의지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내부 장기를 다 파먹고 어느 순간 나비로 변신한다. 나비가 된 애벌레는 달라진 삶을 산다. 경쟁자도, 먹거리도, 카테고리도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땅에서 하늘로 활동 공간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를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라고 한다.
- <브랜드; 짓다> 중에서
"변화 의지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라니, 나의 그 한계에 다다랐는지는 훗날 가봐야 알겠지만, 변화 의지가 불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그 과정에는 겉으로 봤을 때는 몰랐던 고통이 있음을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우리가 놓쳤던 자연의 그 '자연스러운' 과정마저 그러할진대, 사람의 일이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에 이르니, 과정 속의 부대낌에서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앞서 적었듯, 브랜드에 관한 내밀한 생각들을 채울 수 있는 독서였다. 브랜딩에 관해 배우고 싶다면, 하다못해 실용적으로 '브랜드/슬로건은 어떻게 짓지?'라는 고민이 든다면 펼쳐보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가 참 인상적이어서 요약해 본다. 저자는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같은 소제목을 달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마그리트처럼 낯설게 보기
피카소처럼 몰입하기
마티스처럼 계속하기
- <브랜드; 짓다> 중에서
-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익숙한 것을 낯선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거기서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랬듯. 낯설게 보는 기법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힘일 것이다.
- 낯설게 볼 줄 알려면 결국 몰입해야 한다. 그 주제에 끝없이 천착하는 경지에 이르러 보아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처럼. "새로운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전혀 다른 10개의 브랜드에서 찾는 것"은 이 책에서 던져준 수많은 팁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마스터피스는 어느 완벽한 하나를 다듬고 다듬어야 나오는 걸까?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작업한 앙리 마티스의 삶과 예술은 그 반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재인용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는 어느 학교 도예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선생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학기 내내 하나의 도자기를 완벽하게 만들도록 다듬고 또 다듬게 하였고, 두 번째 그룹은 끊임없이 다른 도자기를 만들게 했다. 학기 말, 최고의 작품은 계속 도자기를 만들어낸 두 번째 그룹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저자는 그러므로 "어느 한순간 반짝 떠오르는 영감을 잘 믿지 않는다"라고 한다. 노력파인 나에게도 어쩐지 용기가 되어주는 부분이었다.
+ 추가로, 거절을 꿋꿋하게 견뎌야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덧붙인 저자의 말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 등장한 다양한 브랜딩 인사이트들 다 잊어 먹어도 "마그리트처럼 낯설게 보기, 피카소처럼 몰입하기, 마티스처럼 계속하기 + 거절을 꿋꿋하게 견디기"는 깊이 새겨 두려 한다.
자, 그럼 오늘 할 일을 또 하나씩 해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