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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Dec 16. 2022

혼자 일하니 어때요?

내 영혼은 내가 알아서 잘 챙기면서 살고 있다. 나름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예전처럼 '영혼 털리면서' 사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조직 생활에서도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결이 잘 맞는 이와 일할 때, 다양한 모양의 성취를 맛볼 때, 누가 불러도 못 들을 정도로 자아를 잊고 몰입한 경험을 마주할 때, 동료와 틈내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리고 최대한 늦게 들어가자며 쿡쿡 웃을 때.



지금 와서 보니 그 좋은 것들과 영혼 털림 사이 수많은 시간이 없었다면 그다음, 그리고 그다음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날아가고 있나'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는 이제(어쩌면 지금 당장은) 없다. 그들 중 일부만이 조직 바깥에서도 만나는 친구가 되었긴 하지만, 내 일에 대해서 '야 우리 일이 좀 그렇지 않냐' 하다 '야 그래도 이럴 땐 좋더라' 할 수 있는 동료는 이제 없다. 하긴 조직에서도, 나름의 분장이 있기에 백 프로 서로의 일에 대해 이해할 순 없어도 어렴풋이는 아니까. 대충 무엇이 가장 힘든지는.



직장 내에서 극강의 불행과 극강의 행복은 사람으로부터였던 것 같다. 'X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운운하며 서로 누가 더 힘든가 겨루다 보면, 그래도 이런 이야길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라 자위하며. 그러다 어느덧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바뀐다. 역시나 같은 법칙에 의해, X라이가 없으면 '혹시 나?' 하며 자문해 보기도 하며.



혼자 일하니, 외부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애환이나 추억 따위는 아직 없다. 자연히 극강이랄 것도 별로 없다. 그저 어떤 날은 좀 더 잘 풀리고, 어떤 날은 좀 더 에너지가 차 혼나 신나서 작업하고, 또 어떤 날은 조금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가, 다른 어떤 날 '와 대박'하며 스스로 만족할 때가 있을 뿐. 그런데 '나는 의외로 이런 것을 더 좋아하네' 하는 요즘이다. 막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상은 아니지만, 어떤 날은 조금 00 하고, 어떤 날은 조금 더 00 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료를 만들며 머리를 싸매고 결국은 해냈을 때의 그 희열도 없지만, 국 과장님 앞에 가기 전 머릿속으로 수없이 정리하고 논리적 흐름을 그려 보며 가슴 콩닥댈 일도 없고, 이후 원하는 바로 하라는 분부(!)가 떨어질 때의 그 짜릿함도 없지만, 앞으로 열린 결말이라는 그 자체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또 너무 이상적으로 갔나.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나인 것을.)



어느 날은 남편이 집에 오면서 뭘 보고선, 부모는 자식을 '귀한 손님' 대하듯 해야 한다는 진부한 이야길 했다. 막상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잊게 된다. '손님이 이럼 안되잖아' 하는 심정이 들 때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바꾸려 하게 된다. "그 말, 옛날에 들었거든?"하고 새침하게 대답하고선 내심 다시 그 말에 대해, 그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맞네.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갈 손님이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 바로 나의 아들일진대. 혼자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가장 귀한 손님에게 그동안 나는 어떻게 대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눈을 껌뻑이며 진지하게 생각하다 잠든 밤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샛길에서, 우리 모두가 지구에, 생이라는 시간선 위에 손님으로 온 것이란 사실도 기억해 냈다. 대학생 때 그 생각을 마주했을 때 흥분했던 순수를 기억해 냈다. 한 면접에서 "직장에서 사람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희선 씨는 어떡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사람도 나도, 언젠가 떠난다는 걸 생각하면 미움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극단적으로 '그 사람이 내일 죽는다면?' 하고 생각하면 오늘의 증오가 후회가 될 것 같습니다... 생각에 잠긴 채 진지하게 대답했던 내 모습과 만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준 고마운 인터뷰어도 기억해 냈다. 실제로 그 질문이 직장 사람 생활(?)을 버티게 하는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많은 기억을 잊어갔다.



혼자 일하는 요즘에서야, 다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생기는 걸까. 사람에 울고 웃고, 사람에 치이면, 그럴 여백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지금이 좋다. 느려도 혼자 하나씩 해내가는 지금이.



그렇다고 완전히 홀로는 아닌 것이, 외주라든가 타 업체와 거래를 할 때 결국 여기도 사람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혼자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나는 오늘도 혼자 열심히 내 일을 즐긴다. 과거에는 거의 대부분 주어진 일을 내 일처럼 완수하려 노력하며 살았다. 요즘은 진짜 내 일을 내 일로 하며 산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하는 한탄 섞인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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