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응원과 허락 사이 그 어딘가

상대는 호기심이라는데, 나는 그것이 왜 '부정'으로 느껴질까

by 메리힐데

이제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되고 있다.


인생 처음으로 "나 이거 해도돼?"라고 묻기 전에 행동하는 중이다. 어릴 적에는 허락을 구하는 대상이 엄마였고, 내 인생에 아빠라는 선물이 찾아온 이후에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인생에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인생의 경험을 더 많이 한 이들이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마음으로 나의 잘됨, 나의 건강,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이들임을 알기에 무한정으로 그들을 신뢰한 상태에서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과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눈다.


'나누는 것'과 '보고하는 것'의 경계가 무너질 때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의 감정을 공유하고, 내가 살아가면서 조언이 필요할 때 찾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이고, 가끔은 친구들이 되기도 한다. 나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책임을 피하고플 때가 있으니까'라고 해야겠다. 무언가 내 인생에 큰 결정,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선택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두려움이 커서, 그래서 타인의 동의를 얻고자 말하는 때가 많다. 그들의 동의는 곧 나의 면죄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봐서가 아닌, 그저 이런 실수는 누구든 할 수 있었던 것이었음에 대한 증거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주변에 나의 선택에 대한 피드백을 구한다. 그들에게 '나눔'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진 '허락'을 구한다. 그러고는 허락이 아닌 '궁금증'이 돌아오면 패닉에 빠진다.


'뭐야,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거야? 내가 잘 못 했다는 거야?'

그렇게 소통에 오류가 날 때가 있다.


나는 '나눔'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진 '허락'을 구했고, 타인의 '궁금증'을 나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생각을 자유로이 나누고자 했다면 나는 타인의 궁금증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타인에게 내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의 내지는 결재를 구한 것이었다.


따라서 상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중이었던 나는 '근데 이건 왜 이렇게 한거야?'라는 그의 단순한 호기심을 내 능력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질문은 나에게로 와서 질책이 되었고, 그들의 '?'은 나에게로 와서 '!'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파도에 모래성같이 쌓아놨던 나에 대한 신뢰를 잃고 단숨에 '아.. 이렇게 하면 안됐나보다.'라는 생각에 빠진다.



나는 종종 '믿음'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민진아, 난 널 믿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럼 나는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라고 마음을 전한다.

대부분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가 믿을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믿는거야.'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믿음은 그렇지 않다. 믿고 말고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믿을만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기로 선택했기에 그저 믿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믿음' '신용'의 차이다. 증거들로 하여금 믿을만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 이후에 믿음을 받는 것을 우리는 '신용'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신뢰는 현실적인 사랑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은 이상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넌 절대 넘어지지 않을거야'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이란 무조건적임과 동시에 현실적이기에 '너는 넘어지더라도 결국 일어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걸 알아'에 더 가깝다.


나의 '믿음'에 대한 정의에는 '언제'와 '어떻게'에 대한 질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상대에게 구하는 '언제'와 '어떻게', when과 how에 대한 질문은 믿음이라는 포장지에 싼 의심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믿음은 어렵고 비논리적이고, 가끔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의심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 또한 인간이 갖는 방어기제이자 스스로 쌓는 최후의 만리장성같은 보호수단이니까. 다만 의심이 있기에 믿음이 있고, 의심이 존재하기에 그만큼 '믿음'의 가치가 커지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다. 나를 믿는다는 일념 하나로 파도 앞에 모래성같이 나에 대한 신뢰를 쌓기도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나의 모래성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를 믿는다.


나는 무너지더라도 다시 믿음의 성을 쌓을 것을 알기에.

다음 번에는 파도가 닿지 않을 곳으로 조금 더 물러나 성을 쌓을 것을 알기에.

그러다 예상치 못할만큼 크나큰 파도가 나의 성을 다시금 파헤쳐버린다해도,

나는 결국 다시 더 튼튼한 나의 성을 쌓아갈 것을 알기에.


적어도 내가 '나를 믿는다'고 할 때에는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바탕으로 한다.


결국 일어설 나를 안다. 넘어지면 넘어질 수록 더 잘 넘어지는 법을 깨우칠 나를 알고, '다시 일어섬'의 달인이 될 나를 안다. 지금껏 그런 모습으로 살아와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나는 나를 믿는 것이다. 믿기로 했으니까, 믿고 싶으니까.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나를 믿을 테니까.


나를 믿는다 말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나를 믿기로 선택해준 그들이 있어 진심으로 기쁘다. 가끔은 흔들리고 가끔은 무너지더라도 결국은 나를 믿기로 선택한 내가 있어서 오늘 하루도 이미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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