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Call Phobia(전화공포증)

'잘 해야만 해'라는 생각, 잘 할 수 없게 만드는 생각

by 메리힐데

Call phobia


언제부턴가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게 되었다. 용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고 거절을 누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매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전화가 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불안보다는 '공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적절하리라 생각이 든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물론이거니와 친한 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거절하는 것이 계속되다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오해하면 어쩌지. 난 이들이 귀찮은게 아닌데 왜 이렇게 전화가 불편하고 싫지..’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걸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는 사람인가. 도대체 뭘까. 카톡은 좋은데 전화는 안 하는 이유. 전화가 무서운 이유가 뭘까.


오늘 문득 내 자신에게 물어봤다. 나 원래 전화가 싫었나?


아니었다. 나는 원래 문자보다는 전화를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문자는 피드백을 바로 받지 못해 답답하고 감정이 비춰지지 않아 오해하기 쉬웠기에 전화를 선호했다. 상대방에게 문자가 오면 난 바로 전화를 걸고는 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부터야 민진아? 왜 전화가 무서워진걸까?


그때 내가 알려줬다.

창호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갑작스런 친구의 사고. 의식불명. 죽음이 코앞에 와있다고,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고 알려준 그 사건. 상상도 못한 채로 받은 전화였다. 단짝친구가 사고를 당해 의식 불명이라는.. 수화기에서 들려온 말은 지금도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냥 그때의 기억이 토막으로 없어진 것 같다. 예고없이 맞은 뒤통수에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정신차리자, 김민진.’ ‘죽은 것도 아니다. 죽었다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다 잘 될거야.’ 이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그 순간에도 감사했다. 죽었다는 연락이 아니어서.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작별인사의 기회라도 있으니까.


그게 전화 공포증이 생긴 첫 계기였다. 나는 전화가 왔을 때 거절을 누른 뒤, 문자로 항상 용건을 묻는다. ‘무슨 일이야?’라고. 그리고 어떤 일인지 어렴풋한 카테고리라도 알게 되면 편하게 전화를 건다. 이것은 아끼는 이들에게 갑작스런 전화가 왔을 때 혹시나 또다른 이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순간 멎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별이나 사고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나는 업무와 관련된 연락이 오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고는 문자로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바쁜 척 혹은 밖에 있다는 등의 핑계를 대야하기에 거짓말을 하는 나의 마음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죄책감이 들어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에도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창호 사건 이후 <윤창호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지금까지 4년째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다 보니 나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의 입장을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민진씨, 이제부터 녹음을 할거예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해주시면 되세요. 바로 할게요.’ 나에게 허락된 준비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는다. 저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지금요?’라고 반문할 시간도 없다. 그냥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몇몇 분들의 조언을 듣고는 했다. ‘감정을 더 실어라’, ‘이 이야기도 넣는게 안 좋을까?’ 등의 계속된 피드백이었다. 물론 더 나은 전달력을 위한 감사한 조언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다. 마치 내가 인터뷰를 잘 못하면 창호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것 같은 느낌.. 내 말 한 마디가 창호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인터뷰, 전화통화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커져갔다. 물론 라디오나 뉴스 인터뷰를 전화로 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공간으로 이동했지만, 이후 그 녹화본을 방송을 통해 듣는 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숨죽여 ‘이번 것은 잘 한걸까’ 노심초사하곤 했다.

누군가 보기엔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고 나를 바보같다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난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르는 슬픔, 분노, 원통함, 공포’… 창호의 지인들이 느끼는 그 모든 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님들이 한 번씩 ‘민진씨. 어쩜 이렇게 말을 일목요연하게 잘해요? 인터뷰를 정말 너무 잘하시네요. 말을 너무 잘해요.’라는 피드백을 주셨던 것이 나의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고 느껴진다.

기자님들은 한 번씩 말하지만 나는 매번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처음에는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말을 잘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나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며 문득 이 모든 것은 기자님들이나 지인들의 기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내 스스로 품었던 기대였다.

내가 잘하고 싶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인정받는 게 아닙니다.
나에게 나를 증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지웅, <최소한의 이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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