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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Aug 20. 2022

우울증과 ADHD의 사이

다 들리는 혼잣말

2달정도 된 것 같다. 사실 일이든 뭐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문서를 집중해서 읽고 해석해서 결론을 도출해야하는데, 이상하게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보고서를 써야하는데, 방향도 도무지 모르겠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퇴근 직전에서야 그 일에 조금씩 집중하고 도저히 업무가 진행되지 않았다. 매일 하던 루틴대로 겨우겨우 살고 있었지만, 머리 아픈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한 SNS에서 ADHD에 관련된 글을 읽게 되었고, ADHD 약을 먹고 집중도가 훨씬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예약하고 가보게 되었다.


ADHD에 관한 글을 보다 이거다 싶었다. 직장인으로서 내가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회사 업무에 집중하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왜 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지, ADHD가 아니면 설명이 안됐다. 약을 먹어서라도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어서라도 마무리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싶었다.


병원을 예약하고 실제로 병원에서 진료받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경정신과는 실제로 대부분 예약제여서 예약하고 일주일정도 후에나 초진을 할 수 있었고, 예약하고 가도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30분이나 기다렸을까...들어오라는 선생님의 신호.

왜 오셨냐고 하셔서 처음부터 거침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저 ADHD인거 같아요. 회사 일에 집중이 도무지 안되거든요. 요즘 이상하게 식욕도 왕성한데 이상하게 많이 먹어도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아요. 원래 이런사람이 아닌데, 요즘 아무것도 안하고 TV보거나 유튜브 보는 오락행위만 하고 싶어요. 회사에 민폐되지 않게 회사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도저히 안되요"


이후 선생님은 이것 저것 물어보셨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하루에 밥은 얼만큼 먹고 잠은 얼만큼 자는지, 최근 무슨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는지는 등등.

질문과 관련된 내 이야기를 한참 들으시고, 선생님은 우울증 초기라는 진단을 내려주시며 아주 미량의 우울증약을 처방해주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ADHD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대부분 청소년기나 어렸을 때 발현되는 것이며,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도 무언가에 쉽게 집중할 수 없고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난 우울할 이유가 없다. 아주 행복한 일도 있지 않지만 딱히 기분 나쁠 일이 없다. 사람들과의 갈등을 겪을 일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고 관대한 편이다. 회사에서도 분위기메이커라, 내가 가면 시끌벅적하고, 분위기를 띄우곤한다.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성실히 사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막상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정말 힘들었다고, 나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 모든 행동들이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조차 꽁꽁 감춰왔던 내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약은 아주 미량이었고, 회사에서의 업무 집중이 꼭 필요했기에(더 이상 미루면 안되었기에) 처방된 약을 복용했다. 하루에 한알만 먹는 것이기에 그다지 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 약을 먹고, 우울증 관련된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 받았다.


예전보다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비로소 들기 시작하였다 예전보다 삶을 살아갈 용기가 난다는 말이 적절하겠다. 삶에 대해 맞써 싸울 용기가 이제야 비로소 생긴다. 


원인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에게 그동안 솔직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내가 내 마음을 보살피지는 않았나. 내가 나를 방치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뿐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내 영혼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 뿐.


겉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여전히 웃고, 밝고, 즐거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다가 문득 눈물이 흐른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훅 눈물이 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잦아졌다. 조금 좋아졌지만, 다 나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도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고 더 강해지고 성장했으니 이번 나에게 찾아온 이 우울증도 극복해보기로 한다. 리트머스지처럼 천천히 내 삶에 들어왔지만, 천천히 내 삶에서 빠져나가기를.





런닝하다가 촬영한 사진. 내 삶이 하늘과 나무처럼 늘 푸릇푸릇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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