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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Nov 01. 2020

2020년의 키워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내 인생에 덕지덕지 붙은 군살들을 모두 비워내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한번씩 비워내는 주기가 있어야,  쌓이지 않고 언제나 가볍게 살 수 있다. 

 9월에 한국 들어간 김에 구입했던 아이폰. 4개월 남짓 지났는데 벌써 4,600개의 사진과 수많은 영상으로 가득 찼다. 가끔 보고 싶어지는 사진과 영상만 제외하고 다 삭제했다. 경험상 100장의 사진이 있을 적보다 단 10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간직할 때 사진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뭐든, 많은 것은 짐이고 마음의 부담이다. 여행하며 사진을 자주 찍게 되었다. 나중에 들여다봐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진들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는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는 잊고 싶지 않은 순간, 꼭 담아서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만 사진을 찍어보기로 한다. 사진을 추리고 정리하는 것도 일이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해 임시저장에 올려둔 블로그 글들도 모두 삭제. 지금 당장 쓰고 싶은 글이 아니면, 앞으로도 쓰고 싶은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 메모장에 끄적여둔 짧은 생각, 리스트, 메모 등도 삭제. 불필요해진 어플과 기타 등등 모두 삭제. 지난 메일함, 쪽지, 카톡 메세지, 문자 메세지, 전화번호부 등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함에 있어 지난 기록들을 모두 삭제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 얽매이지 않고 가뿐하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17 키워드 비움 

2018 키워드 건강 

2019 키워드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였다.


몇 년간 미니멀라이프를 하며 삶의 군더더기를 비우고 나자, 내가 보였다. 텅 빈 방에 가만히 서있는 나.. 텅, 빈 방마저 짐스럽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나는 세계여행을 통해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를 규정하는 행위와 집착, 자기검열에서 벗어나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나의 2019년은 가뿐했다. 홀가분했으며, 자유로웠고, 새로웠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도 되지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의 국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없는 

이국의 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내게 자유를 준 만큼, 내게 다른 것들을 가져갔다.


세상에나..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비싼 돈과 시간을 바쳐가며 배워나갔다. 한 가지를 강렬하게 열망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희생과 포기가 뒤따라야했다. 떠도는 길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와 안전, 먹거리를 보장 받지 못한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 리오와 데비의 고양이 보스는 낮엔 하고 싶은대로, 가고 싶은대로 동네를 놀러다니다가 배고프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최소한의 울타리 덕분에 자유로우면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나는 리오와 데비의 고양이처럼 세상을 살고 싶어졌다. 내게 더이상 '무한의 자유'는 빛나는 보석이 아니다.


언젠가 먼 훗날, 지금의 자유롭고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늘 그랬듯, 나는 지금의 내 마음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서 2020년의 키워드는 <시작> 이다. 모든 살림과 물건 등을 비우고서, 온전히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3년차 신혼부부가 또 어디에 있을까? 감사한 기회다. 올해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직 날짜는 미정이지만) 길면 2년까지도 생각했던 여행이었기에 조금 이른 귀국일지도 모르겠다.


집, 직장, 살림, 일상 . . .  하다못해 사는 동네까지도 모두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고 가꿔나가야 한다. 완전 새로운 시작 -! 무엇보다 올해는 [우리집]을 갖고 싶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는 자유를 느끼고 싶다. ^^ 미지의 모험과 험난한 고생이 도사리고 있어도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간다는, 튼튼한 울타리를 가진 선택적 자유 말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맥시멀리스트가 되라는 말처럼, 원 없이 하고 싶은만큼 떠돌아다니며 돈을 펑펑 쓰고 일도 하지 않고 매일 퍼질러 놀기만 했더니, 이제 매일 단조로워보이던 나의 일상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에는...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별 일 없는 행복, 그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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