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방에는 공허함만이 남았다

by 메이 이혜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미니멀 라이프’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 칭했던 어느 블로거를 통해서였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란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삶이라 말했다.


'최소한의 물건'이라니, 물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그 개념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꼭 필요한 물건들만으로 생활하는 삶을 그려보지 못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그런 삶도 지금껏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이참에 나도 미님러 라이프라는 걸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취방의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비우는 삶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본격적으로 극한의 미니멀 라이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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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집 사진이었다. 사진에 담긴 그의 집은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화이트톤의 아주 작은 원룸이었고, 방에는 새하얀 이부자리만 펼쳐져 있었따.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면이었다. 그에게는 이부자리 외의 어떤 가구도 없다고 했다. 텅 비어 있는 방. 빈 벽과 여백이 가득한 공간. 저런 집에서 살게 된다면 물건에 얽매이지 않고 늘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극도로 물건을 비우고, 되도록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목표로 좇았다. 옷들을 비롯해, 더이상 읽지 않는 책들을 마구 처분하기 시작했고, 집안에 있을 줄도 몰랐던 수많은 잡동사니와 살림살이, 인테리어 소품들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옷 한 벌을 꺼내려면 한참 진을 빼야 했던 빽빽한 2단 행거에는 옷들이 넉넉하고 여유있게 걸렸고, 집 안에 쌓이던 먼지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공간이 쾌적해지면서 마음도 상쾌해졌다. 홀가분했따. 이게 답이라 여겼다.


나는 매일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비울 수 있을까 고민했고, 하는 수 없이 들여야 하는 물건이 생기면 짐스럽게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건을 더 줄일 수만 있다면 생활에서의 불편함은 기꺼이 자처했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책상까지 비워냈다. 그렇게 기어코 아무것도 없는 방을 만들어냈다.


모든 벽과 바닥을 가구와 물건으로 가득 채워 살았던 나의 방에는 사 단짜리 서랍 하나와 작은 스탠드, 전신거울만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걷어 서랍 위에 개어 두었고, 퇴근하고 오면 이부자리를 펼치고 잠을 잤다. 처음에는 텅 빈 방이 주는 황홀감에 빠졌다. 사사키 후미오의 텅 비어있던 집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그가 느꼈다는 홀가분함을 나 역시 느껴보았다. 그러나 그건 목표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찰나의 감정일 뿐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물건의 갯수는 현저하게 줄어지만, 갈증은 여전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유로워질 것 같았는데 물건의 개수만 줄었을 뿐, 나는 여전히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비워내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텅 빈 듯한 집 안 풍경, 심플하고 값비싼 물건, 새하얀 인테리어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자취방에 옷을 가득 쌓아놓았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많은 것에 집착하느냐, 적은 것에 집착하느냐, 그 차이일 뿐이었다.


텅 빈 나의 방은 아무것도 없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방이었음에도 뭐든 할 수 있는 그 방에서 나는 아무런 욕구가 일어나지 않았다. 책상을 없애니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서 점점 읽지 않게 됐고, 침대가 없으니 낮에 잠시 누워 쉴 곳조차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면 단순하고 편할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모든 게 재미가 없어졌다. 내 방인데 내 방처럼 느껴지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다. 방을 비우면 더 자유롭게 뭐든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게는 오직 허무와 공허함만 남았다.


물건을 채우며 모든 욕구를 풀던 습관과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비우기였는데, 어느새 나는 또 다른 강박과 자기 검열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무기력함을 이어가다가 나의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텅 빈 방을 만들기 전에 무엇을 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 물어야 했고, 어떻게 비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남길까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런 고민 없이 비워낸 방에는 나의 삶이 없었다. 물건만 비운 게 아니라 나를 함께 비웠던 것이다. 모든 것을 가차없이 비워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 같은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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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지 내 자신에게 물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왔다. 비로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황무지로 변한 내 삶에서 이제는 나의 행복을 위해 꽃과 나무를 심을 차례였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텅 빈 방과 텅 빈 인생을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편하게 앉아 오래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을 다시 방안에 들였고, 예쁜 원피스도 몇 벌 구입해서 단벌 신사를 벗어났다. 한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발레를 시작했고, 오랫동안 꿈꾸던 에어비앤비 숙소를 오픈해서 호스트가 되었다. 물 공포증으로 늘 고사했던 수영도 배워서 동남아리조트 수영장에서 튜브 없이 놀아보는 소망도 이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버킷 리스트였던 세계여행도 다녀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 매일 공허함으로 가득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하루 하루가 너무 재밌고 신이 났다.


내 삶에 불필요와 군더더기를 줄이고 비우며 갖게 된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 공간, 돈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로소 내게 미니멀 라이프가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내가 꾸준히, 주기적으로 비우는 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더 마음껏 좋아하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것, 원치 않는 것, 낭비되는 것을 줄이고 비운 자리를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필요한 것으로 더 촘촘히 채우기 위해서다. 삶에는 정답이 없듯, 미니멀 라이프에도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텅 빈 방이 미니멀 라이프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채우기 위해 비우는 것, 이것이 나의 미니멀 라이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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