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행거의 무게에 짓눌린 그 순간,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뭐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시절이었다.
주 5일 출석하는 강의실에서 하루라도 같은 옷에 같은 액세서리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나는 늘 새로운 옷, 새로운 액세서리를 탐냈다. 매달 한정된 용돈 안에서 다양한 옷들을 사기 위해서 늘 옷을 저렴한 것들로 구입했다. 여름엔 통기성이 안 좋고, 겨울엔 보온이 안 되는 옷들. 한 철 입으면 늘어나거나 보풀이 일어나서 더는 입기 창피해지는 옷들로.
나는 옷을 좋아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외부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방 한 칸짜리 자취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옷들로 쌓여갔다. 처음에 구입했던 1단짜리 행거에 옷을 걸 자리가 없어지자, 2단짜리 행거를 새로 사들였다. 버리는 옷은 없고 매달 새로 구입하는 옷들은 나날이 늘어났다. 2단 행거도 빽빽해지자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던 5단짜리 서랍장과 선반을 주워왔다. 머지않아 그 수납장도 나의 옷들과 소지품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도 늘 입을 옷이 없었다. 아침이면 뭘 입어야 할지 행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고, 다 입은 옷을 굳이 벗어젖히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불상사도 자주 일어났다.
나의 수집 병은 옷에 그치지 않았다. 색깔별로 모은 하이힐과 플랫슈즈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며 세일할 때마다 사들인 로드샵 메이크업 제품들, 예쁜 것 같으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넣고 보았던 다이소표 주방 용품들과 인테리어 소품들. 그중에서도 옷과 막상막하로 수집병을 자랑하던 것은 바로 ‘책’이었다.
나는 심심하면 손에 책을 드는 책벌레였고, 취미는 서점에 드나들며 책을 사는 것이었다. 매달 다 읽지도 못한 많은 책이 쌓여갔다. 읽는 양이 책 구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책들을 구입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집에 아직 읽지 못한 새 책들이 잔뜩 있지만, 언제나 새 책을 구입하는데에서 만족을 느꼈다.
자취방에는 먼지가 많았다. 아무리 책상과 선반을 자주 닦아도 늘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고, 기관지가 약한 친구가 이따금 놀러 올 적에는 매번 재채기하기 일쑤였다. 부끄럽지만 그땐 이유를 몰랐다. 대책 없이 사 모으는 수백 벌의 옷들과 수십 권의 책들 때문에 내가 먼지 속에 갇혀 지내는 줄을. 그렇게 텅 비어있던 작은 원룸은 어느새 벽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건들로 가득 찼다. 불과 이 집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갑자기 무너졌다.
행거에 걸려있던 옷가지들이 모두 앞으로 쏟아졌다. 서둘러 행거 기둥을 붙잡고 다시 세우려는데 걸려있는 옷들의 무게에 눌려 행거는 폭삭 내려앉아버렸다. 땀범벅이 되어가며 옷가지들을 걷어내고 행거를 세우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가진 옷 무게를 느꼈다. 내 몸은 물론 행거도 감당하지 못하는 옷의 무게. 옷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너진 행거 주변으로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보면서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엔 잘 입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손이 안 가는 옷, 단추가 떨어지거나 얼룩이 안 지워지는 옷 등 갖가지 이유로 입지 않는 옷이 많았다. 심지어 오늘 처음 보는듯한 옷도 있었다.
행거 사건을 계기로 나는 자취방에서 지내면서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날이 잦아졌다. 내가 가진 물건들의 부피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에 앉아 나의 자취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 시선으로 쫓은 나의 자취방은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온갖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선반 뒤쪽과, 서랍 안 쪽, 저 박스와 이 박스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나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내가 가진 물건들의 양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무언가 변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는 것이었다.
10년 차 미니멀리스트의 성장 미니멀리즘 에세이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