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집단

by 김메리

신규공무원 교육에 갔다. 80여 명이 모였는데, 여자가 60여 명이다. 10여 명씩 조를 짜서 서로 MBTI를 물어봤는데 I가 8명이고 E가 2명이다. 조장은 E가 되었는데 다른 조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조들 상황도 비슷하였다.

겨우 80여 명 모인 걸로 판단할 수 없지만, 공무원 집단은 여자가 많고 I가 많은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공무원 동기들 중 같은 자치구끼리 모였을 때도 나 포함 11명 중 여자는 9명이었고 11명 전부 I였다.

2박 3일은 합숙교육, 이후 2주간은 구청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느 날 강사가 의욕 없는 분위기를 읽고서는 강의를 멈추고 말했다.


"여러분들 임용된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너무 공무원스럽게(?) 앉아 있어요."


그러면서 다들 숨겨진 개성이 있을 텐데 벌써 공무원스러워졌다며, 공무원들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든다고 이어 말했다. 공무원스러운 게 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강사 입장에서는 단체로 강의실에서 강사 말에 대답도 잘 안 하고 조용히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나는 조별 과제 때문에 조끼리 토의할 때 다들 자기 의견을 망설임 없이 내는 모습을 보고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의욕이 없는 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단지 교육 와 있어도 일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된다. 사수가 이런 시간 또 없을 거라고 즐기다 오라고 했지만, 내 일을 대신해 주고 있는 대직자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사무실에 돌아갈 생각 하면 답답하다.

교육조차도 시험 치고 과제하는 게 나한테는 버겁다. 와중에 조별 과제 하는데 내가 서기 하겠다고 나섰다. 조장, 서기, 발표자는 가산점을 주는데, 그조차 모르고 그냥 서기라는 걸 해보고 싶어서 한다 했는데, ppt를 만들어 와야 했다. 주말에 걱정 한가득 안고 도서관에서 과제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 미뤘다가 개학 전날 울며불며했던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이놈의 벼락치기 인생.

얼마 전에는 누가 나를 좁은 공간에 가두어서 답답해하는 꿈을 꾸었다.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는 바람에 영영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였다. 문화재 발굴할 때도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비교 대상이 그 일뿐이라 나도 모르게 비교하나 보다.

그냥 머리 쓰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만드는 일 하고 싶다. 쿠팡, 공장에서는 공무원 시험 떨어지고 일해 봤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 머리 쓸 일은 아예 없었지만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붕어빵 장사 하고 싶다. 고객들을 마주해야 하겠지만 민원인 상대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초코맛 붕어빵 만들어서 팔고 싶다. 팥맛, 초코맛, 팥초코맛 이렇게 팔고 싶다. 초코맛 붕어빵에 누텔라잼 미친 듯이 넣어야지. 나 같은 초코 마니아는 좋아할 것이다. 초코붕어빵 맛집으로 소문나고 싶다. 누텔라잼 때문에 붕어빵이 터지지 않도록 굽는 기술이 필요할 거 같다. 아니면 페이스트리 만들어 팔고 싶다. 초코맛 페이스트리 맛있겠다.

일본 살 때 시장에서 100엔 고로케를 오후 1시까지만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나도 그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데 붕어빵 장사도 힘들겠지? 그래도 하고 싶다.

교육 때 인생 그래프를 그렸는데, 다들 과거는 굴곡지게, 미래는 상향하는 선을 그렸다. 나만 공무원 그만두고 붕어빵 장사를 하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만 하향하는 선을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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