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서 재일교포 마을인 우토로 마을을 방문했다. 방송을 통해 이 마을에 대해 알게 된 후, 회사에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고 오사카로 갔다. 오사카에서 JR을 타고 교토에 도착한 후 교토 지하철을 타고 이세다쵸역에 내렸다. 역 내의 지도를 들여다보니 우토로 마을이라 적힌 곳이 있었고, 지도상의 방향으로 올라가서 걸어가다 보니 방송에서 보았던 길이 나왔다.
마을이 tv 화면으로 봤던 것보다 더 작게 느껴졌고 방송에서 설명했듯이 정말로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떤 일본인 남자 두 명도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둘은 한국 방송이 일본에도 전해져서 이 마을에 찾아와 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내 멋대로 추측했을 뿐이다.
조용한 마을길을 걷다 보니 마을회관인 에루화에 도착했고, 방송에서 보았던 김수현 대표님이 나오셨다. 아주 잠시 한국어로 할지 일본어로 할지 망설이다가 일단 일본어로 인사를 드리고 마을회관을 구경해도 될지 여쭤보았다. 마을을 둘러보던 일본인 남자 두 명도 내 뒤에 멈춰 서서 나와 대표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질문을 마치자 뒤에 서 있던 두 사람도 잠깐만 보고 가도 되냐고 말을 보태었다. 그 순간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표님의 조금 불편해하는 표정을 보았다. 아무래도 나뿐만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이 찾아왔을 수도 있겠다, 그런 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을 회관엔 들어가 보지 않고 츠루하시에서 사 온 율무차세트만 전해드렸다.
그리고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일본인 남자들도 보이지 않고 골목길에 혼자 남았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어 나가던 중 혼자 의자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방송에서 봤던 ‘강경남’ 할머니셨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할머니 뭐 하세요?” 하고 다가갔다.
“나니모세헨’(何もせへん, 아무것도 안해)”
오사카 사투리였다. 일부러 일본어로 대답하신 거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니 귀찮으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일본어로 그러시냐고 하며 할머니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할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 일본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도 했는데 할머니께서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할머니께서는 일본에 건너왔을 때 오사카에서 결혼해서 사셨다고 한다. 그런데 태평양전쟁(1941)이 일어나고 주변 이곳저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일이 발생하자 전쟁 중에도 안전한 지역이었던 교토로 이주해 오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방송에서 나왔듯이 8살에 일본으로 건너오셨다는데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하셨다. 할머니께서 오사카 사투리로 얘기하실 때는 나도 오사카 사투리로 얘기하고, 경상도 사투리로 얘기하실 때는 나도 경상도 사투리로 얘기했다. 나중에는 한국어도, 일본어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사실은 둘 다 못 하는 데도 말이다!
이야기하던 중에 할머니 손이 건조해서 갈라져 있는 게 보였다. 마침 가방에 뜯지도 않은 새 핸드크림이 있어서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께서 이게 뭐냐고 하시기에 설명을 해드렸더니 안 받으려 하시다가 나도 똑같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며, 할머니께 드리고 싶다고 하자 받으셨다.
그리고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다.
“오느라 욕봤다!”
할머니도, 나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끌고 다니시는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걸어 나가셨다. 나도 같이 걸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할머니께서 담배를 한 대 피우시며 예전엔 마을에 하수시설이 없어서 비가 오면 항상 침수되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갑자기 일본어로 노래를 하셨다. 나는 나중에 핸드폰 메모장에 곡조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사를 기억나는 만큼만 적어두었다.
‘카제니 타오레타 키와 타치아가라나이’(風に倒れた木は立ち上がらない, 바람에 쓰러진 나무는 일어설 수 없다.)
마을 회관 앞에서 떠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셨다.
2019.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동영상 뉴스로 우토로 마을의 집들을 헐고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을 봤다. 그리고 강경남 할머니께서 인터뷰 하시는 모습이 짤막하게 나왔다. 좋은 소식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아파트로 이사 가면 지금의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되니 자주 못 보게 될 거라는 얘길 하고 계셨다.
2020. 6.
할머니를 또 찾아뵙고 싶었지만, 코로나라서 오사카에 못 가고 있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새해 인사 겸 연하장, 한과, 곰 인형을 우토로 마을에 택배로 부쳤다. 곰 인형은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내가 가지고 하나는 할머니께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우토로 마을이 공사 중이라 택배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다가 아름다운 재단에 문의를 했는데,그곳에서 김수현 대표님의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나는 대표님께 내 사정을 써서 메일로 보냈고 답장이 왔다. 대표님께서는 할머니께서 누가 보냈는지 알면 더 기뻐하실 것 같다며내 사진도 함께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내 사진도 추가해서 택배를 다시 보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나를 기억 못 하셨겠지만 대표님으로부터 택배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2020. 11. 27.
또 어느 날 문득 할머니께서 잘 계신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는데 며칠 전(2020. 11. 21.)에 돌아가셨다는 기사였다. 코로나라서 일본으로 조문을 갈 수 없었기에 김수현 대표님께 위로 메일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