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조직이 딱딱하다고 느꼈지만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중 정말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옆에서 같은 민원대 근무하는 사수였는데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렇지만 그녀가 나보다 더 언니 같고 어른같이 느껴진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담대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모르는 업무가 나와도 민원인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여러 부서에 전화해 가며 해결해 나간다. 민원인들, 주로 어르신들이 와서 소리 지르거나 땡깡 부릴 때 그녀가 같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녀는 배려심이 있다. 동료가 실수했을 때 사람들 듣는 데서 큰소리로 화내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알려주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당연히 후자다. 언젠가 내가 다른 직원에게 보고할 일이 있었을 때 내게 조용히 메신저로 알려주었다.
종종 민원인들이 서류를 떼고 수수료를 결제할 때 기계에 카드 잔액이 없다는 문구가 뜨면서 결제가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가 민원인에게 다른 카드 없냐고 하며 기계 문제로 돌리는 걸 보았다.
그녀의 담대함, 차분함, 배려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독서인 것 같다. 그녀가 일하는 틈틈이 업무에 필요한 편람을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것을 보았다. 그 책이 꾸준히 바뀌는 것도 보았기에 독서량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그녀와 목소리가 닮았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씨인 줄 알았다."
"둘이 비슷하노."
"○○주임님 아니었어요? 목소리가 비슷하지?"
나는 목소리가 낮은 편이라 내 목소리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으니 내 목소리가 좋아졌다. 그녀는 업무 전화를 할 때도 목소리가 씩씩해서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서류에 도장 같은 걸 찍을 때도 삐뚤지 않게 똑바로 찍는다. 별 거 아닌 건데 사람을 좋게 보니 그런 작은 행동도 좋게 보인다. 나도 괜히 도장 찍을 때 신경 써서 예쁘게 찍으려 하였다. 그녀의 태도를 닮고 싶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작은 행동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옆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녀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동료 직원이든 민원인이든 무언가 물어봤을 때 항상 친절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도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기혼자인데, 배우자는 다른 부서 직원이다. 그녀의 배우자가 잠시 우리 부서에 들렀을 때 본 적 있는데, 그도 선한 인상에 부부가 비슷한 결의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 부러웠다.
내가 남자라도 이런 여자와 결혼하고 싶을 거 같다는 생각,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가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가끔 그녀가 연가 쓸 때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노력 끝에 아이를 가졌다고 하였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 초과근무를 하려고 사무실에 남아 있었는데, 평소에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그녀도 웬일인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그녀가 퇴근 전 내게 조용히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확인해 보니 핸드크림이었다. 예전에 그녀가 사용하던 핸드크림 향이 좋아서 물어본 적 있었다. 그걸 기억하고 내게 선물로 준 것이다.
나도 모르게 괜히 눈물이 찔끔 나려 했다. 주책맞게시리. 그래서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나이 드니 눈물이 많아지나 봐요. 주책이네, 주책이야."
그녀도 괜히 나 때문에 울컥한 거 같았는데, 등을 돌린 채로 이대로 인사하고 헤어지자는 내 말에 같이 웃었다.
둘만 남은 사무실이라 조심스럽게 태명이 뭐냐고 물어봤다. 출산예정일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인데 태명을 지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였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정을 안 주려 했다고 한다.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출산 후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선뜻 그래도 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을 토대로 인생에서 친구는 한 명도 없어도 된다, 회사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녀와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조직 생활이 쉽지 않은데 그 와중에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