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다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39살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40살에 발령받았다. 돌이켜보니 첫 발령지가 편한 곳이었다. 일단 민원 업무가 아니라는 것 자체만으로 편한 곳이었다.
지금 부서는 딱딱하고 스몰토크도 거의 없다. 그에 반해 첫 발령지는 공채공무원보다 시선제*, 공무직*이 많았고, 남자 직원보다 여자 직원이 많아서 스몰토크도 많이 하였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이 편한 곳이라는 아주 큰 착각을 했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에 면접만으로 채용, 5년 계약.
*공무직 - 국가나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따라서 공무원법이 아닌 근로기준법 적용.
처음 발령받은 부서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까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보니 그녀는 욕쟁이 할머니 같은 사람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왜인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스몰토크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굳이 묻지 않아도 자신의 인생사를 한 번씩 얘기하고는 하였다. 자연스레 그녀가 할머니에게서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일하면서 학비, 동생들 용돈을 스스로 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살다 와서 서울 말투가 섞인 대구 사투리를 썼다.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내 말을 부정하기에 경상도 호소인이라고 많이 놀렸다.
그러다 두 번째 부서로 발령 났다. 나는 원래 내성적이라 초등학교 때 새 학기가 시작되는 걸 싫어했었는데,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 봄일 정도였다. 그래서 새로운 부서에 가서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얼마나 설레요."
그런가? 뭔가 그녀를 멀리하려 했는데 그녀에게 스며든 거 같다.
두 번째 부서는 민원대였다. 공무원은 생각보다 책임감이 강해야 하는 일이었고 살면서 사람 대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민원대 일이 쉽지 않았다. 그전에는 문화재연구원에서 유적지 발굴조사하는 일을 했었다. 몸이 힘들긴 했어도 사람들한테 기가 빨릴 일은 없었다.
그리고 시험이 경쟁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 안에서 경쟁을 하는 것도, 내 성격에는 버거웠다. 그래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붕어빵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이* 했었는데, 아주 가끔 예전 부서의 그녀와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그런 얘기도 하였다.
*마이 - '많이'의 경상도 사투리
"일 못해서 남들한테 피해 주는 거 같아요."
"피해 좀 주면 어때요."
오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구나. 사실 일은 서툴지만 나의 강점은 인사를 잘하고 밝다는 점이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입에서 인사가 자동으로 나가는 걸 어떡해(?).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쨌든 그 때문에 40살에 귀엽다는 소리도 듣고. 그래. 이 캐릭터대로 나가야지. 나는 귀여우니까(?).
새해가 되었다. 그녀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봤는데 답장이 왔다.
"새해에는 더욱더 뻔뻔하고 의젓한 공무원이 되시길 바랄게요!"
오 뻔뻔하다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계속 뻔뻔하게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