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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Nov 30. 2023

콩국

  콩국을 처음 먹어본 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어렸을 때였다. 주말 새벽 부모님과 함께 콩국집에 갔었다. 콩국이란 두유 색깔따뜻한 콩국물에 찹쌀도넛과 밀가루도넛을 듬성듬성 자른 것을 넣고 설탕, 소금을 넣어 먹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총각 때 택시 운전 일을 하셨었는데 그때는 가게가 없었고 새벽에 리어카가 와서 콩국을 팔았다고 한다. 새벽 장사였기 때문에 카바이드*물을 넣어 나오는 연기에 불을 붙여 리어카를 밝게 비추고 연탄불이 달린 리어카에서 콩국을 데워 팔았다고 한다. 그러면 새벽에 일 하시는 분들(주로 택시 운전 기사)이 와서 아침 식사로 드셨다고 한다.

*물과 반응하면 아세틸렌 가스를 발생시키는 물질. 탄화 칼슘의 상품명이다. 화학식은 CaC2. 나는 아버지께 설명을 듣고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했을 뿐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지금은 콩국집이 24시간 운영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콩국집은 새벽부터 아침 8시까지만 장사를 했기 때문에 콩국을 사 먹으려면 새벽 일찍 가야 했다. 나는 부모님 따라 갔다가 콩국에 맛들인 이후로 주말에 새벽 일찍 일어나면 부모님께 콩국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콩국집 메뉴는 콩국이랑 토스트 두개였다. 콩국집에서 파는 토스트는 계란부침이랑 얇은 햄, 다진 양배추에 첩, 마요네즈를 버무린 것이 들어가 있는데 콩국이랑 꿀조합(꿀組合)다. 토스트를 시키면 아주머니께서 4등분으로 잘라서 주시기 때문에 부모님이랑 가면 콩국 세 그릇에 토스트 하나 시켜서 먹었다.


콩국이랑 토스트


  대학을 진주로 가니 경남,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무도 콩국을 몰랐다. 내가 콩국을 얘기했을 때 다들 콩국수를 말하는 거냐며 콩국수는 시원한 음식이라고 하였다. 콩국수 말고 콩국... 콩국은 따뜻한 음식이라꼬...

  괜히 외로움을 느끼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내가 아는 콩국이 전국 어디에도 없고 대구,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만 남아있는 음식이었다. 처음 진주에 왔을 때 경남사투리에 이질감을 느꼈었는데 음식도 다르구나.

  그런데 콩국을 모르는 건 대구 사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울 아부지 덕분에 콩국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콩국집에 중학교 친구도 데려가고 고등학교 친구도 데려가고 전라도 사람인 전남친도 데려가고 경북 사람인 회사동료들도 데려갔다. 무슨 콩국 전파사도 아니고...


  콩국이 대구에만 있는 이유를 어쩌다 알게 된 일이 있었는데 대만 여행을 갔을 때였다. 대만에서 일본 워홀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생활했던 대만 친구를 만나 그 친구 집에 머물렀었다. 그녀와 어느 가게에 들렀는데 콩국이 나왔다. 대만에서 콩국을 봐서 신기하긴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먹었더니 나를 보던 친구가 말했다.


  "이거 먹을 줄 아네?"


  그제서야 한국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고 얘기했다. 비슷하긴 했지만 대만의 콩국과 한국의 콩국은 달랐다. 대만 콩국은 설탕이 덜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더 강하고 한국 콩국은 달달한 맛이 더 강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대만 콩국은 베지밀A, 한국 콩국은 베지밀B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대만에서 콩국을 먹은 이후로 콩국에 대해 더 알아보니 화교들이 대구로 와서 전파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콩국이 대구, 경상도 일부 지역에만 있었구나.


대만식 콩국


  얼마 전 엄마께서 콩국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난리가 났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콩국집에 유재석이 다녀갔다고 한다.


  "한동안 콩국 먹으러 가겠다. 엄마도 가지 마시소."


  그런데 엄마는 나와 성격이 다르다. 사람 많은 데서 줄서는 걸 개의치 않아 하시는 분이다. 며칠 후 줄을 서서 사왔다며 포장된 콩국과 토스트를 사들고 오셨다.

  너무 마시쩌... 언제 먹어도 맛있다.




  나중에 방송을 보니 유재석은 콩국만 먹고 토스트는 시켜 먹지 않았다. 같이 먹어야 꿀조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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