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리 Nov 30. 2023

터키공항에서 노숙했다

2023. 11. 12.


  인천에서 터키를 경유해서 몰타로 가는 비행기를 끊었는데 비행기가 연착해서 환승을 못했다. 터키 공항 내의 고객센터로 가서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섰다. 내 뒤에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줄을 섰는데 둘 다 한국인이었다. 고객센터 앞에서 물을 나눠주길래 '돈을 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 서 있는 그 둘도 그 얘길 하며 그냥 주는 물이라고 하기에 내가 "그냥 주는 거예요?"라고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자분이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몰타요."
  "저희도요."
  "여행으로요?"
  "어학연수요."
  "저도요."

  알고 보니 그 둘도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셋 다 같은 상황이라 내 차례가 됐을 때 셋이 세뚜로 직원에게 갔다. 직원이 우리에게 새 티켓을 주었지만 다음날 아침 비행기였고 호텔까지 예약해주지는 않았기에  셋이서 공항에서 노숙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비행기도 스탠바이 티켓이라 못 타고 새 티켓을 다시 받았는데 저녁 비행기였다. 거의 이틀간 씻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한 채로 공항에서 노숙했다. 유학원 원장이 알려준 대로 에어리펀에 보상 신청을 했는데 터키항공이 연착이 잦다고 한다.




  종종 내가 나이 들었음을 느낀. 지텔프 시험 치러 가서 주민번호 9짜리들 사이에서 8짜리를 찾았을 때도, 공무원 면접 학원 가서 나보다 최소 10살은 어려 보이는 사람들과 발표 연습을 할 때도,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느꼈었다. 공항에서 만난 둘 중 남자분이 내게 물었다.

"살이에요?"
"85."
"살이에요?"
"01이요."
"02요."


  그래도 01남자애가 자기가 군대에서 만난 85년생들은 아저씨들이었는데, 나는 자기 또래인 줄 알았다고 어려보인다고 얘기해 줘서 기분이 조금 좋았다.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공항 의자에 셋이 자리 잡고 꾸벅꾸벅 졸다가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하였다. 그래도 공항에서 혼자 노숙하는 것보다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각자 무거운 배낭과 보조가방까지 있었기에 자리를 뜰 때 번갈아 짐을 봐주었다. 혼자였으면 짐 때문에 화장실 한번 가기도 힘들었을 텐데!

  01남자애가 공항 노숙이 군대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와중에도 공항 내부를 배회하며 오락실을 발견하고는 농구도 했다.(내가 이김) 셋이서 지금 상황이 화는 나지만 나중엔 기억이 미화되어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며 헛웃음 지었다.

  다시는 터키항공 이용 안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