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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Oct 15. 2022

3. 이상한 나를 움직이는 이상한 힘

[출간 전 연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자신은 사실 ‘빠순이’ 출신이라고, 화면 속 여성 연예인이 해맑은 얼굴로 말한다. 빠순이란 90년대 전후에 많이 쓰이던 속어로, 보통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을 일컬었다. 어감에서 느껴지듯 다소 비하적인 뉘앙스가 담겼지만, 원래 본인에게는 본인을 낮춰 말할 권리가 있는 법. 빠순이를 자처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비하가 아닌 겸손과 위트가 묻어났다. “OO 그룹의 ×× 오빠를 좋아했어요. 학창시절 내내 콘서트와 음악방송을 죽어라 쫓아다녔죠.” 그 발언에 주변의 패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적 관리를 했냐고 누군가 묻자, 그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콘서트에서 ××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거든요. 오빠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성적이 올랐어요.” 재치 있는 답변에 MC와 패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모니터 앞에서 그들과 함께 웃으며,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대견함과 존경심과 부러움이 한데 섞인 복잡한 감정이 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연예인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타박도 받았을 텐데 끝까지 좋아하는 일을 좇은 소녀의 뚝심이 대견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히 팬심을 고백하는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무엇보다, 그가 십 대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추진력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아이돌 가수의 말을 듣고 공부를 했다는 그의 멘트를 사람들이 어디까지 진담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는 동시에 충분히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많은 상황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커다란 에너지니까. 직접 공부를 가르치거나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어도, 그의 ‘오빠’는 학구열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좋은 학교에 가라는 선생님의 훈계보다, 좋은 직업을 가지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보다, 동경하는 연예인의 격려 한마디가 그에게는 더 큰 추진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힘을 발견했을 때 사람은 행동한다. 우리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하래. 그러니까 열심히 할 거야.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주문인가?     


그 연예인보다 성적이 안 좋았던 이유를 변명하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학창시절에 그만큼 큰 추진력을 갖지 못했다. 졸업한 후에도 한참 동안 그랬다. 남들이 하라는 일은 적당히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대충 안 하고, 입으로는 늘 투덜댔지만 사실은 어떤 일도 전력으로 밀어붙인 적이 없었다. 그런 삶은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행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있어서 편했다. 부모님이 가라는 학교에 가고, 선배들이 추천하는 진로를 택하고,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니 행복해지는 데 실패한 것이 어떻게 내 탓이랴?     


그 실패의 규모가 그저 그랬다면 나 또한 적당히 순응하고 때때로 핑계도 대며 걷던 길을 계속 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 심긴 불행의 씨앗은 생각보다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새싹 때는 대수롭지 않지만 무시하고 방치하면 결국 별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거대해지는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처럼,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며 결국 백수 신분과 바닥난 통장이라는 현실적이고 절대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발견한 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절박한 마음이 잠자는 추진력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끌어낸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그 힘과 마주한 순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찾은 ‘빠순이’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고, 절대 할 수 없으리라 믿었던 일이 별안간 할 만하게 느껴졌다. 개인 SNS도 운영하지 않던 내가 온갖 플랫폼에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손실이 두려워 주식투자조차 하지 않던 내가 무려 출판사를 차리며 사업을 시작한 것은 모두 그 힘을 발견한 이후였다.     


굳이 그 연예인과 나의 차이점을 꼽자면, 그의 에너지가 ‘오빠’라는 멋진 히어로였던 반면 내 에너지는 ‘조직생활’이나 ‘백수’, ‘생활고’ 같은 인생의 빌런들이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몰랐지만, 나는 영웅보다 악당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절박한 순간 주인공 자리를 꿰찬 빌런들은 ‘연봉’이나 ‘승진’ 같은 히어로들이 끝까지 움직이지 못했던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회사에 안 다니려면 밖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해. 그러니까 찾아낼 거야.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엄청나게 강력한 삶의 주문을, 나는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자신의 추진력을 몰랐던 시절의 나는, 마치 연료를 잘못 넣은 자동차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시동을 걸 수 없었다. 멈춰 있는 차를 움직이겠다고 억지로 밀어붙이며 살아왔으니, 그동안 같은 길을 가면서도 남들보다 힘들었던 이유를 문득 알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연료가 들어오자, 쭉 잠들어 있던(그래서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엔진이 눈을 떴다. 엔진이 돌아가자 생각은 빨라지고 망설임은 줄어들었다.     




그 엔진을 돌린 연료이자 내 삶을 움직인 추진력이 ‘싫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겁나게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 그나마 덜 싫은 일들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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