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메리 Sep 06. 2018

한 달 동안의 아주 사치스러운 백수 생활

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퇴사 다음날에는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젯밤 미처 끄고 자지 못한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이었다.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온몸으로 와 닿았지만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던가 후회가 밀려온다던가 하는, 내가 조심스레 예상했던 기분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한 가운데 묘하게 허무한, 마치 위장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한 공허감이 맴돌 뿐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계절이 초여름이었던지라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주변은 이미 환했다.


나는 우선 샤워를 했다. 행여 지각이라도 할까봐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후다닥 물을 끼얹던 어제와 달리, 시간을 충분히 들여가며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었다. 조금 늦잠이라도 잔 날엔 머리 말릴 시간이 없어 축축한 머리채를 늘어뜨린 채 전철역으로 달려가던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드라이어와 선풍기를 동시에 틀어놓고 머리카락이 끝까지 보송해지도록 꼼꼼히 말린 뒤, 로션과 선크림을 두드려가며 바르고 좋아하는 청바지와 가장 편한 티셔츠를 찾아 입었다.


현관을 나선 나는 지하철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정장 차림의 인파를 거스르며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게 15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동네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나는 소시지 에그 머핀과 해시포테이토와 커피로 구성된 3,500원짜리 모닝세트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계절에 맞게 아이스커피를 선택했지만, 이내 팔뚝에 소름이 돋을 만큼 세게 돌아가는 에어컨의 존재를 깨닫고 따뜻한 커피로 주문을 바꿨다. 2~3분쯤 걸려서 나온 쟁반에는 퇴사 후 첫 아침식사가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나는 한산한 매장 안에서도 가장 햇빛이 잘 드는 테이블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패스트푸드점 로고가 찍힌 머핀 포장지와 갓 튀겨 아직 모서리마다 기름이 지글대는 해시포테이토는 여름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커피가 담긴 뜨거운 종이컵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그 컵을 잡은 내 손가락은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머핀의 포장지를 벗긴 뒤 해시포테이토와 커피를 번갈아 먹고 마셔가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눈을 떴을 때 느껴졌던, 위장이 사라진 것 같던 허무함은 우습게도 패스트푸드점 모닝세트 하나로 쉽게 채워졌다. 마음도 뱃속도 든든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더 이상 회사에 묶여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이제 나는 우중충한 기분을 감춘 채 좋은 아침이라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안녕한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의 안녕을 물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 대가로 매달 25일 들어오던 월급을 포기한 기분은 뭐랄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퇴사 후 약 3개월 뒤에 개강하는 아홉 달 코스의 출판번역 아카데미에 등록을 해 둔 상태였고, 한 달 뒤부터 아카데미 개강 직전까지는 영어 학원의 두 달짜리 집중 강좌를 수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퇴사 후 한 달 동안은 특별한 일정이나 계획이 없었다. 처음에는 장기 여행을 떠날까도 생각해 봤지만, 수입 한 푼 없는 상황에서 목돈을 쓰는 것이 찜찜해서 우선은 뒤로 미뤄뒀다.


기왕 퇴사까지 했으면서 여행도 포기하고 집에 처박혀서 시간을 보내기가 아깝지 않았냐고?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돈도 거의 쓰지 않고 보낸 퇴사 후 그 한 달은 지금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선 책장에 꽂힌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던 책들을 실컷 읽었다. 독서 따위는 할 시간이 없었던 직장인 시절 그저 사놓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던 책들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하고 집에서 20분 거리의 마트까지 걸어가 장을 본 뒤 직접 만들어 먹었다. 어떤 날은 면부터 육수까지 직접 치대고 썰고 우려서 칼국수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밀가루를 손으로 반죽하고 몇 번에 걸쳐 발효를 해 가며 하루를 꼬박 투자해 빵 굽기에 도전했다. 처음 시도하는 요리에 성공하면 성공한대로(이야, 서메리, 칼국수집 차려도 되겠는데?), 또 실패하면 실패한대로(음... 빵은 그냥 빵집에서 사먹자) 이 모든 기억들은 소소하게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가끔씩 약속이 잡힌 날에는 운동화를 신고 지도 앱을 켠 뒤 약속 장소까지 걸어 갔다. 집에서 도보 1시간 반 정도 거리인 망원동이나 한남동 정도는 망설임 없이 걷기를 택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내가 가장 아까워하던 자원은 바로 시간, 그 중에서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운전면허가 없던 나는 늘 버스와 전철, 택시 중에서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는 교통수단을 택했고, 행여 그 선택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가는 내내 세상을 잃은 듯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효율 따위는 접어두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이동 방법을 택한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두 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지금껏 수없이 지나쳤으면서도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거리의 풍경을 새삼 깨달았을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쫓기듯 살면서 내가 원했던 행복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고, 저렴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주 사치스러운 행복.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하늘만 봐도 즐겁고 바람만 불어도 설레던 한 달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대부분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채웠던 휴식기의 초, 중반과 달리 후반부에는 거의 지인들을 만나며 지냈다. 휴학 한 번 없이 누구보다 일찍 회사원이 되었던 나의 퇴사 소식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충격적인 뉴스였던 모양인지, 그다지 알리고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내가 5년차로 회사를 그만 둔 이십 대 후반에 동갑내기 친구들은 대부분 1~2년차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다 같은 ‘직딩’ 처지가 되었지만, 사실 내가 맨 처음 취직을 했을 때만 해도 친구들은 대부분 학생이었기에 나는 졸지에 한동안 밥을 사거나 취업 관련 경험을 전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인생 선배 노릇을 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때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 직장인이 된 이 시점에, 나는 거꾸로 다시 백수가 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뜸 프리랜서에 도전하겠다니, 걱정부터 호기심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이 시기에 가장 좋았던 것은 밥을 원 없이 얻어먹고 다녔다는 점이다. 5년 전에 기약 없이 쏘고 다녔던 취업 턱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보상받은 것이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백수가 된 나를 불러 아낌없이 밥을 사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더 늦기 전에 당장 회사로 돌아가라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해준 친구가 있는가 하면, 혹시 모르니 가입해 두라며 본인이 학창시절 이용했던 단기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가르쳐준 친구도 있었다(그 사이트에는 그날 당장 가입했고, 프리랜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까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최후의 보루로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내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응원해준 친구들도 많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진심인 그 마음들을 받으면서, 나는 이렇게 얻어먹은 밥에 또 다시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졌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이전 06화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퇴사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