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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쉬 May 22. 2023

재개발

부동산 투자를 처음 시작하면서, 아니 처음 경매를 시작하면서 나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낙찰받아서 바로 팔면서 단기간에 몇천만 원의 수익을 순식간에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낙찰받기도 어렵지만 이를 바도 매도해서 차익을 실현한다는 보통 고수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투자를 시작하고 3~4년이 지난 뒤에 알았다.


어떻게든지 낙찰받으면 바로 팔아서 순식간에 2~3천만 원은 손쉽게 벌 거야

하는 마음은 헛된 꿈이었다. 적어도 부동산에 크게 소질이 있지 않은 나에게는....



경매를 시작하고 1여 년을 패찰을 하면서 어떻게든지 낙찰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씩 나의 입찰가는 높아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뉴타운 재개발 빌라를 덜컥 3채를 낙찰받는다.

그것도 3개 물건이 40명씩 이상 들어왔는데 2등과의 차이가 2천만 원의 큰 차이로 3개를 모두 받아 버린다.



경매장에서는 수근 되는 소리가 난다.

저렇게 높게 받으려면 왜 경매로 받는 거야

그냥 부동산에서 사지.

그렇게 나는 각각의 물건에 대해 40명 이상의 입찰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낙찰자가 된다.


그리고 이후부터 새벽에 자연스럽게 미라클 모닝이 시작된다.

내 수중에 현금 8천만 원밖에 없는데 6억 5천만 원을 어떻게 잔금을 칠 수 있을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나를 보고 장모님이 무슨 걱정이 있냐며? 걱정하시는데

나는 그냥 잠이 안 와서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경매장에서 받은 대출 찌라시 아줌마에게 전화를 돌린다.

대부분 80프로 정도 대출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85%이다.


몇일을 수소문 끝에 대구 단위농협 조합에서 해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어렵게 잔금을 치른다.

당시 대출 이자 7.5%

얼추 이자만 300만 원 정도를 매달 내야 한다.

당시에 내 월급이 350만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리스크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이 구역에 이만한 소형 빌라에 저렴한 물건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사장님 제가 빌라를 낙찰받았는데


이 정도면 팔리겠죠?

글쎄요...

일단 내놓고 가세요..

나는 인근 부동산 20곳에 매물을 내놓는다.


그런데

.

.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안되겠다 싶어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퇴근 후 인근 전봇대에 매일같이 붙이고 다닌다.

.

.

.

안 팔린다.

아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리먼 사태가 터지고 2년이 흘렀지만 빌라 시장은 빙하기이다.

당시에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연일 신문지상에 쏟아져 나온다.

정말


내가 하우스 푸어가 되었다.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

주택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연일 세입자로부터 전화가 온다.

천장에서 물이 새요.

곰팡이 때문에 살수 없어요.

그렇게 세입자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잠자다 세입자로부터 전화가 오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런 세월을 12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며칠 전에 세입자가 이사를 갔다.

그리고 이주 공가 스티커를 문에 붙였다.

이 빌라 건물에 참 사연이 많다.

첫 낙찰받고 셀프 인테리어를 밤늦게까지 했다.

인근이 현충원이라 녹지 공원이 있어 좋지만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검고 큰 모기들이 많았다.

숲이 바로 있는 것이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이 빌라를 낙찰받고 알게 됐다.


아랫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이 분도 이사를 가셨다. 워낙 좋은신 분이셔서 친해졌다.

원래 집주인으로 이 건물을 남편이 지으셨다고 하는데 사업이 안되서 빚을 크게 졌고 경매를 당했고 내가 낙찰을 받았다.


그리고 이 원주인 할머니에게 거의 마진 없이 팔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분은 이 빌라로 인해 30평형 아파트를 입주권을 받게 되었다.

그러시면서 너무 싸게 본인에게 판것에 대해 나에게 오히려 미안해 했다.



모두 다 이주를 한 상태라 건물이 텅 비어 있다.

거리에는 이사를 하고 남은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다.

저 멀리 명수대 현대 아파트가 보인다.

아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돌아다니는 기분이 묘하다.


정말로 아무도 없다.

모두 다 이사를 갔다.






10여 년의 애증의 물건이 이제는 정이 들었다.

엄청난 언덕을 매번 이사 때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내가 왜 이 물건을 낙찰 받았을까?

한숨을 쉰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 동네도 앞으로 못본다고 생각하니 동네를 둘러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집들이 이사를 갔다.

30여 년 전만 해도 새집을 지었을 때는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봉천동에서 오랫동안 살아 봐서 잘 안다.

당시에 우리도 다가구 집을 부모님이 지으셨다.

처음에는 새집이라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30여 년이 넘으면서 이렇게 철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미쳐 이사를 가지 않은 사람이 트럭에 짐을 싣고 있다.

길가에는 이사로 버리고 간 쓰레기로 수북이 쌓여 있다.



이사를 나가시는 분이 마지막으로 집을 잠그는 것으로 보인다.

새 아파트에 사는 기대도 크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집이 없어진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할까


나의 빌라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표정에 눈물이 글썽 거린다.

무슨 일 있어요? 할머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이 집을 돌아가신 남편이랑 젊었을 때 지었는데 막상 부순다고 하니까 자꾸 눈물이 나네.

남편이랑 내가 정말 애지 중지 지은 집인데..

그래도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 좋잖아요.

몰라. 새 아파트, 난 그냥 이집이 좋아.

그냥 마음이 심난해.

우리 앞집 사는 할머니도 매일 같이 울더라고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니까.

평생 살아온 집을 부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이분들은 평생을 여기서 살아오신 분이다.

30~40년의 삶과 애환이 깃든 곳이다.

나처럼 투자자로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그분들처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보유한 물건이라.



이 동네를 조금 더 거닐어 보고 싶었다.


짊을 싫고 이사를 떠나는 트럭이 지나간다.



나 같은 마음이려나 중년의 남자가 여기저기 둘러본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저 돌담을 쌓았을까?



처음 이 집을 지었을 때는 저 향나무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만 해도 올 때마다 길에 주차된 차가 많았었는데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혼자 감정에 젖어 나의 애증의 물건의 동네를 둘러본 후 대로로 나왔다.

아마도 연말이나 내년이면 철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입주는 2027년 정도 예상을 해본다.

매입을 하고 17년 만에 서울 한강변에 새 아파트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빌라 투자를 통해 긴긴 시간 동안 희로애락의 모든 것을 다 느꼈다.

침체기 고금리 투자, 구축 빌라의 관리의 어려움, 원망, 애증..



투자의 진짜 어려움도 느꼈지만 무엇보다 큰 수익도 이 빌라를 통해 얻을 수가 있었다.

누구는 빌라 투자가 쉽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쉽지 않은 물건이었고, 시간이었다.




                                                 머쉿게 살고 싶은 - 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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