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쉬 May 17. 2023

결혼식


회사에 존경하는 선배가 한 분 있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나이가 50중반이 넘으시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년퇴임을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고 계신다. 잘나가실 때는 후배들 술자리에 항상 술을 사셨다. 내가 이렇게 잘나가는 것도 다 너희들 덕분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후배로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잘 나갈 수 없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젊은 사람으로 바뀌면 나머지 조직장들도 자연스럽게 실력과 상관없이 젊은 사람으로 대체된다.

그것이 직장생활이다.

이 선배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조직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회사를 다니신다. 한때는 자나갈실 때는 직장에 올인하셨다. 그러면서 부동산 투자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 항상 술마실때는 우리도 일본처럼 부동산이 떨어질 것이라고만 하시면서 집 사는 것을 절대 반대 하셨다. 하지만 최근에 부동산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셨고  부동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끔씩 아침에 글을 쓰고 있으면 커피를 한잔하자고 이야기하시면서 부동산 자문을 하곤 하셨다.


그러던 분이 어느 날 자리에 오셔서 따님이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하셨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몇 해 전에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렇게 세월 빠르네

네 꼭 갈게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스케줄에 일정을 체크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그 선배 따님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장은 강남에서 유명한 호텔이었다.

호텔이라서 그런지 실내는 굉장히 화려했고 웅장했다.

식대도 비싸며 함께 나오는 와인도 한 병에 기십만원 정도 한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엄청 비싸 보였다. 이런 데서 결혼식을 올리면 최소 억 단위로 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도 직업이 좋다고 한다.


식장에 들어오는 커플들을 보니 마냥 행복해 보였다.

식사를 하면서 함께 앉아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참 빨리 가네요.

자연스럽게 본인들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15년 정도 이상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이다.


넌 강남 한강변 호텔에서 했잖아..

그랬나? 그때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래도 너의 부모님이 재력이 되잖아..

에이 무슨 소리야. 나 그거 나중에 아버지한테 다 갚는 너라고 죽는 줄 알았어.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이야기한다.


나는 명동에 있는 00호텔에서 했지...

그때 돈 많이 들었어.. 하객이 많이 왔는데도 예식비가 많이 들어서 한동안 갚느니라고 힘들었어..

정말이야.


머쉬 너는 어디서 했더라....


나 또한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에 우리 부부도 직장 초년생으로 어렵게 결혼식을 올렸다. 가진 돈도 없었다.

아내와 나는 최대한 검소하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최대한 저렴한 예식장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어떻게든지 저렴하지만 그래도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최근에 우리 결혼식에 관해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요즘 결혼식 가보면 너무 멋있고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하는데 우리는 되게 되게 짠돌이처럼 했어.

당시에 내 친구들은 다 호텔에서 했는데 우리는 지지리도 궁상이야.

다 당신 때문이야. 그놈의 부동산 투자가 뭔지. 당신 꼬임에 넘어가 그렇게 10년을 고생했잖아.

다들 신혼생활은 어떻게든지 아파트에서 시작하는데 우리는 봉천동 그 바위 15평 빌라에서 시작했잖아.

참 그렇고 보면 우리는 진짜 없이 시작했다.

두 아이들도 어떻게 그런 달동네에서 키웠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우리 둘 다 젊었잖아.

다 자기가 내가 하자고 하는 데로 잘 따라와 줘서 고맙지.


솔직히 동료나 친구들은 다들 아파트에서 시작했잖아.

결혼식도 다들 호텔에서 했고 다들 부모님들이 어느 정도 잘 살고 계셔서 그게 가능했잖아.

하지만 너나 나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고 무리해서 결혼식이라도 화려하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솔직히 형편도 안됐잖아. 그래도 자기가 내 의견을 따라줘서 고마웠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룬 것은 다 자기 덕분이지.

안 그래?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을 아내에게 돌렸다.

아내는 피식 웃었다.


솔직히 지금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잖아.

대단히 좋은 동네, 좋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펑펑 쓰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우리가 부자가 된 줄을...

재산은 늘었다고 하는데 생활은 여전히 비슷하잖아.

자기도 여전히 똑같이 짠돌이고

그런데 그건 있는 것 같아.

노후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되잖아.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젊었을 때 했던 선택이 나쁘지 않아 보여.

내 친구들을 보면 시작은 굉장히 화려하게 시작을 했지만 지금 보면 여전히 직장에 얽매여 있고 다들 회사 그만두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하거든.

그런 면에서 다들 나를 부러워하기는 해.

과거 아내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옆에 앉아 있는 동기들도 당시에 엄청난 멋진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15년이 지난 이 친구들의 삶을 보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한 친구는 25평 아파트에서 대출을 갚으며 살고 있고 한 친구는 여전히 주택 소유 없이 강남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화려하고 멋지게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작게 시작해서 점점 자산을 늘려나가면서 부유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디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이 사랑스러운 커플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머쉿게 살고 싶은 - 머쉬

매거진의 이전글 재개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