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by 머쉬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을 배웠다.

관성의 법칙: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움직이려고 하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멈춰 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있으려고 하는 성질이다.

이러한 속성은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자꾸 새로운 일을 도전했던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찾게 되고

그 어떤 변화도 원치 않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는 삶을 사는 그 어떤 새로운 도전을 원하지 않는 속성이다.


직장인도 이 관성의 법칙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새롭게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과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새롭게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은 회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재테크도 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직장인은 회사 내에서만 하던 방식에서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고 싶어 하고 내일도 마땅히 오늘처럼 살기를 기대하며 똑같은 삶에 만족해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관성의 법칙은 일종의 흐름을 따라가는 힘이다.

즉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다는 것은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즉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마치 강물을 따라 배가 떠내려가듯이 말이다.

어떤 힘을 쓸 필요도 없다.

그저 강물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강물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면 어떤 내 힘도 들이지 않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지만 거기에 내 의지는 없다. 그저 강물 따라 내가 따라가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최근 들어 이런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관성에 따라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최근에 세이노님의 책을 일던 중 이런 말이 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자기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 사는 삶이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여도 매일매일 똑같이 산다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놀고 만을 반복적으로 할 때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워런 버핏이나 찰리 멍거 그리고 우리나라 나이 많은 대기업 회장님들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한편으로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즐거웠다.

사업이나 투자에 있어 새롭게 도전하고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귀차니즘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해서 뭐 하려고?

벌 만큼 벌었잖아.

이제 그만 쉬어.

그냥 하던 거나 잘 지켜.

새롭게 하지 말고

이런 생각들로 가득하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관성적으로 멈추려고 하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편안 것 같지만 정신건강을 굉장히 불안하게 하고 뭔가 공허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나에게는 편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는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계속해서 도전하고 움직이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멈춰있으면 편안할 것 같지만 더 불안함을 느끼는 성향인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좌충우돌 움직였던 사람인지라 멈추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강물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하루하루를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반대로 강물에 순응해서 떠내려 올 때가 있다고 한다.

그때는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떠내려올 때뿐이라는 것이다.


숙명적으로 인간도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물고기와 운명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쉿게 살고 싶은 - 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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