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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쉬 Dec 19. 2023

휴가

까라지다...

미뤄두었던 여름휴가를 연말이 돼서 쓰게 되었다.

마지막 휴가를  무엇을 할까? 고민고민을 했다. 해외여행을 갈까? 아니면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먹을까?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한 해 동안 바쁘게 지냈으니 이번 휴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최대한 혼자 편하게 지내보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이번 휴가는 일상의 부지런함을 다 내려놓고 그냥 평소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자.

그럼 일단 일찍 잠들지 않고 티브이를 보자.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하지 말자.

그리고 당연히 책 읽기도 하지 말자.

물론 아침에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하지 말자.

운동도 하지 말자.

그리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하루 종일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 보고 점심때 내가 좋아하는 술을 먹고 그리고 잠자다가 배고프면 또 맛있는 것 먹고 또 술 한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생각보다 재미있겠는걸?

나는 잔뜩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휴가가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날 이 없으니까 늦게까지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와이프가 아빠 왜 안자?

무슨 일 있어? 10시 반이면 자는 사람이 12시가 넘었는데 안 자네.

아빠 휴가야

아빠도 휴가를 즐기려고.

음 그래?

아이들과 아내는 내심 좋아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아내는 야행성이다.

보통 1시가 넘어야 잠을 잔다. 반면에 나는 10시가 넘으면 슬슬 잠잘 준비를 했기에 평소에 나를 할배로 부를 만큼 노인네 취급했다. 같이 밤에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를 원했지만 나는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하는 중압감이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잠을 청했다.

지금은 그런 습관이 오래되다 보니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10시만 되면 졸리다.

그런 아빠가 잠을 안 자고 있으니 신기해한다.


같이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기 위해 온 가족이 티브이 앞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워있다.

아이들과 아내는 요즘 새로 나온 '스위트 홈'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 습관대로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조금 참아 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빠는 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안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 맞다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늦잠 자기로 했지 다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이 너무 똘망 똘망 해진다.

아니야 더 자야 돼. 다짐을 하지만 내 의식은 너무나 뚜렷해졌다.

하는 수없이 침대를 나와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 하던 대로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니야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지.

그리고 소파에 누웠다. 여전히 잠이 안 온다. 나는 평소 유튜브에서 책을 읽어주는 채널을 켜놓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채 한 시간도 안 돼서 잠에서 깼다.

더 자야 하는데 뭘 하지? 막상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지 않으니까 뭔가 허전하기 시작했다.

티브이를 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일어나서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으니까 의아해했다.

평소 같으면 한참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을 텐데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살짝 눈치가 보였다.

그리고 나의 작업실로 같다.

그리고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면서 그렇게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돼서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했다. 그리고 평소 사놓은 와인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낮잠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니 다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싱크대를 뒤지니까 라면이 나왔다. 그리고 잽싸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반주와 함께 ..

그렇게 혼자 놀고 있으니 해가 저물었다.

음 이것이 진정 휴가지. 나는 만족해했다.

나는 그렇게 2~3일이 지나갔다. 서서히 이 삶이 익숙해지면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빈둥빈둥 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면서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자고 싶은 것 들로 휴가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책 읽기도, 글쓰기도, 운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몸은 편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렇게 휴가 같은 삶을 좋을 것 같았지만 불안감이 서서히 엄습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폐인 되겠는데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자고

편안한 삶, 도파민에 취한 삶, 뇌가 원하는 삶을 살면 왠지 오래 못 살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게 되었다.

그렇게 휴가를  도파민을 추구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막상 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출근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몸과 뇌는 이런 루틴에 살짝 적응했기 때문이다.


휴가는 끝나가고 출근하는 다음날이 되었다.

나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하지만 내 뇌와 몸은 이 알람을 거부하고 있었다.

더 자. 너 휴가 때 좋았잖아. 하루만 그냥 휴가처럼 더 보내, 아니 휴가를 하루 더 내

이런 유혹들이 순간적으로 내 뇌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일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일어났다.

그리고 물 한 잔을 마셨다. 하는 둥 마는 둥 15분 운동을 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평소 하던 데로 책 읽기와 필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해서 25층 계단 오르기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탕비실에 가서 차가운 아이스커피와 뜨거운 물을 한잔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고 있다.

휴가를 가기 전에는 그렇게 혼자 휴가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지낸 시간은 글쎄 편안함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일찍 자고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고

평소처럼 책을 읽고

평소처럼  글을 쓰고

평소처럼  운동을 하는 것이


그 어떤 편안한 휴가보다 바쁘게 지내는 일상이 더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일깨워주는 나름 의미 있는 휴가였다.



                                        머쉿게 살고 싶은 - 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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