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Nov 22. 2021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이진민 작가님의 두 번째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내게 아주 시기적절하게 다가온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반 정도 미술관과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가 올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파리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이 문을 열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문화생활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마음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미술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도 철학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게 필요한 책이었다. 


이진민 작가님의 친필 싸인.. 정말 다정한 진민 님.. 무려 이 책은 작가님께서 선물로 독일에서 보내주셨다..ㅠㅠ


이진민 작가님은 C-Program 해외특파원 멤버로서 (실물로 뵌 적은 아직 없으나)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 쓴 책이란 대중에게 하는 소리가 아닌 바로 내 귓가에 대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철학과 미술에 대해 잘 알진 못하기 때문에 술술 읽히기 보다는 한 글자 한 글자 생각하며, 때론 인터넷에 철학자 및 화가 이름, 작품 등을 검색해보기도 하며 책을 읽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쭉쭉 읽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미술과 철학에 가까워지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109페이지에 파울 클레의 <짐 진 아이들> 그림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캐리어와 신용카드. 둘 다 사각형으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육 관련 뉴스 또는 유튜브 방송을 볼 때면 한국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경쟁 및 고충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나의 학창 시절만 해도 그랬다. 공부, 대학, 경쟁, 입시... 요즘 아이들은 이것이 더 심화된 상황에 놓여있단 생각이 든다. 다시 그림을 본다. 가느다란 두 다리로 겹쳐진 수많은 사각형을 힘겹게 이고 지고 걸어간다. 쾡한 두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그들이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이리도 힘겹다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 아이를 떠올려본다. 아직은 만 5살로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있다. 공부라는 세계에 들어가면서 아이 스스로 경쟁이란 것을 자의든 타의든 경험하게 될 것이고,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엄마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라도, 엄마라도, 집에서라도... 아이가 마음 편안하게 쉬고, 내게 마음껏 기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좌) 루브르 연간회원 가입하니 집으로 보내주는 키즈 미술 잡지 Le petit Léonard 12월 호. 이달의 아티스트는 바로 파울 클레!

(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퀴즈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림 제목을 맞춰보게 한다. 고양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커다란 초록색 두 눈을 잘 살펴보세요. 그림 제목에서 빠진 단어를 맞춰보세요. 단, 생선도 사탕도 아닙니다.  

파울 클레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런 우연이 있나! 파울 클레에 대해 읽고 있는데, 파울클레를 또 만나다니!


클림트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스타프 클림트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빈센트 반 고흐와 구스타프 클림트이다. 그는 자화상을 잘 그리지 않은 화가 중 한 명으로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보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신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작품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자신감이란... 마치 글쓰는 작가가 나는 이런 사람이고 저런 사람이다라고 책에 설명하지 않아도, 내 글을 통해 독자가 작가의 성향 및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정말 멋진 말이다!


유럽에서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했다. 2020년 2월이었다. 여행 갔다 오고 나니 프랑스에서는 3월부터 락다운을 시행했다. 빈 여행은 잊을 수 없다. 사연 많은 빈 여행인데, 난생처음 비행기를 놓쳤다. 단 5분 차이로...ㅜ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이른 아침 비행기표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아이 잘못은 없다. 부모가 이리저리 늑장 부리다 이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거금 100만 원을 더 보태어 암스테르담 경유에, 밤 도착에, 너무 흔들려서 이렇게 온가족이 죽는구나 싶었던 작은 KLM 항공기를 탔다. (이것 밖에 대안이 없었다...) 직행에, 낮 도착에, 에어프랑스를 놓치고...ㅠ


이렇게 어렵사리 간 여행이라 빈에 있는 동안 "놓치지 않을거예요" 광고 문구처럼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 벨베데레 궁전에 도착해서 클림트의 <키스>를 보았을 때 황금빛으로 물든 그림은 황홀했다. 몽환적인 그의 화풍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제체시온에서 <베토벤 프리즈>를 보았을 때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입구에서 헤드폰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서 벽의 윗부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는데, 그 공간이 온전히 나를 위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 클림트에 매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민 님의 책에서 클림트 그림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철학, 의학, 법학과 관련된 그림 설명을 듣고 다시 그림을 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며칠 전 아이가 학교에서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며칠전 학교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정말 교실 안밖으로 아이들이 그린 <생명의 나무>가 일렬로 전시되어 있었다. 진민 님 책에 이어, 프랑스 유치원 미술 수업에 등장한 또 한 번의 클림트와의 조우. 


그림 설명: 구스타프 클림트의 정신이 담긴 가을 나무. Painted by WJ


진민 작가님은 미국 유학 당시 미술관을 드나들며, 그림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듣기도 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하고 친해지고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순전히 그림을 보는 것이 좋아서 미술관을 드나들고, 이렇게 책을 쓸 정도의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데에서 나도 미술 비전공자로서 한 줄기 희망을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곳저곳 나름대로 꽤 다녀보았지만 무작정 다닌다고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 직시...ㅜ)


진민 님의 책을 계기로 나는 미술과 철학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그림을 어렵지 않게 그냥 재미있게 계속 보러 다녀 볼 생각이다. 진민 님이 하신 말씀처럼

"제가 하려는 것은 놀이입니다. 시각을 통해 생각하는 놀이. 미술을 도구 삼아 생각하는 놀이. 그림으로 철학을 맛보는 놀이. 미술사적 논의나 배경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그저 미술작품들을 철학적으로 느끼고 생각해보는 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놀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과 철학 양쪽 모두를 편히 느끼게 하고 사유의 근육을 튼튼하게 키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에서 편하게 저 스스로도 놀이처럼 시작한 글입니다. 정답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내 생각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펼쳐보는 건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메시지도 꼭 덧붙이고 싶었고요."


그렇다. 미술은 철학은 재미있는 놀이다. 여기에 정답이 없다. 프랑스에 와서 느낀 것은 정답이 없는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 연필로 사선 긋기 연습 등 늘 정해진대로 규율대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곳 프랑스에는 정답이 없다. 미술작품을 볼 때 자신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자신이 본대로 느낀대로... 있는 그대로 그림을 받아들였다. (나도 어릴 적 이렇게 미술을 처음 접했다면 지금 좀 달라졌을라나...) 루이뷔통 미술 키즈 아뜰리에에 아이와 자주 참여하는데 정답이 없는 미술 교육을 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어서 이와 관련된 글을 브런치에 쓰기도 했다. 


진민 님의 첫 책인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에서도 작가님의 육아 철학에 많은 공감을 하였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번 책에서도 작가님의 미술과 철학을 바라보는 삶의 자세에 많은 공감을 하였다. 이제 책을 덮고, 미술관에 또 가보자. 알던 모르던 그냥 놀이터에 놀러 가듯 그림을 보러 가보자. 아, 이 책을 들고 미술관에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끌리마따시옹 공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