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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Mar 27. 2020

브리타 정수기

인생은 필터를 통과하는 물

요즘 코로나로 인해 뜨거운 물을 자주 마시게 되었다.  뜨거운 물을 마셔서 몸의 온도를 높이고, 목을 촉촉하게 해 주면 좋다고 해서 집에만 있기에 물을 자주 마실 수 있는 환경과 함께 이러한 뚜렷한 목적 의식이 서로 만나서 따뜻한 물 자주 마시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는 정수기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우리집은 브리타 필터 물통을 쓴다. 필터는 제 역할을 다하면 새로 갈아껴야 한다. 주전자 같이 생긴 물통에 물을 가득 받으면 필터를 거쳐 지나간 물이 아주 조금씩 필터 밑으로 떨어진다. 빨리 물을 마시고 싶은데 그 똑. 똑.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만 쳐다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언제 물을 마시냐며 정수기 하나 없는 프랑스를 괜히 한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은 물을 가득 받아놓고 옆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몇 자 안 읽은 것 같은데, 몇 자 안 썼는데 물을 마셔볼까 하고 브리타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느새 그 많던 물이 다 필터 밑으로 내려와 있다. 방금도 내가 물을 가득 받아 놓고는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어떤 글이 올라왔나 보려고 접속을 하고, 글 하나를 발견하며, 한번 읽어볼까? 하며 잠깐 눈을 브리타로 돌린 순간 물이 알맞게 다 걸러져 내려와 있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이 경이로운(?) 순간의 감동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쓰기로 방향을 돌렸다. 방금 느낀 따끈한 내 감정을 이 곳 브런치에 쓰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일의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만 조급해진다. 카톡 또는 문자 메세지 보냈는데 답장이 안오면 그것만 쳐다보며 기다린 경험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는가.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그것에 매달려서 종일 바라보고, 걱정하고, 초조해한다. 그래서 내가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못하고 하루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결국 어떻게 되겠지.. 하는 내려놓는 마음으로 대신 나의 당장의 일에 집중해보자. 현재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에 집중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걱정하고, 빨리 해결이 돼야만 하는 그 일이 내가 신경 쓰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은 사이에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인간관계도 그렇하다. 내가 매일 걱정하고 신경 쓴다고 바로 해결될 관계가 아니라면, 그냥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놔두는 것도 좋다. 전전긍긍하며, 빨리 해결돼야 한다기보다는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가득 찬 물이 필터를 다 통과하여 내려와 있듯이 실타래 같이 엉킨 인간관계도 시간이라는 필터를 거쳐 언젠가 다 풀려있을 것이다. 꽉 막힌 것 같은 일들도 시간의 필터를 거쳐 다 내려와서는 잔잔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여, 

정수기 필터를 찔끔 찔끔 통과하고 있는 물이 언제 다 내려올까.. 쳐다보며 기다리지 말고, 

당장 오늘 하루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자.

그러면, 어느새 내가 따라 마시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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