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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18. 2022

지구가 메마르지 않도록 수업을 쨀게요.  

지구는 나의 집

작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이 한창일 때, 기후 관련 주제로 뉴스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파리 기후 아카데미란 곳을 소개하는 주제로 기후 관련 뉴스 기사를 작성했는데,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거리가 조금 있다 보니 시기를 놓쳐서 가지 못했다. 그 후, 그 근처 갈 일이 있어서 기후 아카데미에 들렀지만, 그때가 2021년 12월 30일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놨었다.  


어제 생 폴 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쇼아 기념관(Mémorial de la Shoah)에서 한창 전시 중인 '나치 속 게이와 레즈비언(Homosexuels et lesbiennes dans l'Europe nazie)'를 보러 갔다. 다 보고 생폴 역에서 마레 지구 쪽으로 걷다가 우연히 기후 아카데미를 지나가게 됐다. 마침 시간이 조금 남아서 내부를 보고 싶어 들어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구 파리 4구 시청 건물을 기후 아카데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 안뜰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벤치를 설치했고, 곳곳에 지구 환경에 관한 그림이 걸려있었다. 이곳은 젊은 청소년 및 청년들이 기후 관련 워크숍을 하며, 아뜰리에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요일 오후 이곳 작업실에서는 10대 학생들 15명 정도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각종 재활용품으로 각종 가구를 만들고 있었다. 방해가 될까 싶어서 잠깐 보고는 조용히 나왔다. 천장이 높은 복도를 천천히 걷는데, 한쪽 벽면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문구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중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그림 한 장을 발견했다. 때로는 사진 한 장이 어떤 수려한 글보다도 울림을 크게 주기도 한다.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바로 아래 이 사진인데, 청명한 파란색과 초록색, 흰색으로 뒤덮인 지구가 쭈굴쭈굴 건조한 사막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물도 다 말랐다. 왼쪽은 싱그러운 아이의 피부, 오른쪽은 90대 쪼글쪼글한 노인의 피부였다. 사람이 자연의 섭리대로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쪼그라들며 메마르고 건조해지듯이, 지구도 생명체의 하나로 저렇게 쪼글쪼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66년 모습이란다. 44년 남았다. 그때 내가 살아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살아있다면 어떤 지구에서 살고 있을까? 그때 우리 아이는 40대인데, 저런 모습의 지구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사진만큼이다 문구도 정말 기가 막히다. 이 글을 쓴 아이는 누굴까? 이 아이 덕분에 나도 프랑스어 관용표현 하나 배웠다. 지구가 메마르는 것과 수업을 건너뛰는 것이 크게 인과 관계는 없는 듯 보이나, 그만큼 학생은 결연한 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굳이 인과 관계를 찾아보자면 수업을 할 때 전기가 나가고,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 있으니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각종 플라스틱이며 교재들이 사용되고, 간식을 먹으면 포장지가 생기고 등등... 하나하나 따져보면 끝이 없긴 하다.




Je sèche les cours pour que ma planete ne sèche pas! 
나는 행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업을 쨉니다!

학생의 강력한 의지를 대변해서, 수업을 '건너뛴다'는 표현보다 '째겠다'는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해서 나는 번역했다. Sèche는 마른, 건조한(dry)이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인데, 수업을 듣지 않고 건너뛴다는 관용 표현으로도 쓰인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원을 찾아보니, 옛날에 잉크를 사용하던 시절, 학교 책상에는 잉크병이 부착되어 있었다. 수업이 없는 동안에는 잉크가 말라가는 것에서 비롯된 표현이었다. 재미있는 어원이다. 


기후 아카데미 복도에 벽면에 붙어있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문장들이 참으로 기발하고 재미있고 신선하며 의미심장하다. by 모니카 


이 외에도 학생들의 기발한 표현이 눈에 많이 띄었다.  

* Je vote pour la planète : 나는 행성에 투표한다

* Sauvez l'eau, buvez de la biere : 물을 절약하고, 맥주를 마시자

* Je veux que mes enfants connaissent d'autres pommes que celles de leurs Iphones : 아이들이 아이폰에 있는 사과 말고 다른 사과를 알면 좋겠다. 

* Pas de nature, pas de future : 자연 없이는 미래도 없다. (발음하면 빠 드 나뛰흐, 빠 드 퓌뛰흐 인데, 빠 드로 시작해서 뛰흐로 끝나는 어감을 통일시켰다)

* Olaf a déja fondu!!! : 울라프는 이미 녹았어요!!! (그림이 재밌다)

* To bio or not to bio! : 유기농이냐 유기농이 아니냐! (햄릿에 나오는 대사 패러디)


(좌) 안뜰 (중) 기후 아카데미 건물 입구 전경 (우) 나폴레옹 3세 때 지어진 바론  오스만 스타일 건축 양식 by 모니카


기후 위기 관련한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소설, 서적 등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치판에도 기후 위기 관련한 이슈를 많이 내세워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그만큼 기후 위기, 환경, 녹색 등이 주요 키워드인 세상이다. 


아이가 지구는 내 집이라고 자주 말한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느 날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이 세계 모두가 너의 집이라고 아이이게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당시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너의 삶을 마음껏 펼치고, 지구 곳곳을 누비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가 큰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은, 세계는, 지구는 너의 집이라고 종종 말한곤 했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진짜 지구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내가 살아갈 내 집인 지구가 아프지 않기 위해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 선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부터 우리는 출발했다. 음식을 남기면 쓰레기가 되어 지구가 아프다고 말해주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는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배가 부른데 억지로 먹이지는 않았다. 쓰레기가 지구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지구가 아파서라고 말해주니 아이는 더욱 지구를 아프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웬만하면 음식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포장지는 재활용했다. 휴지심, 생수병, 시리얼 박스, 요구르트병 등 상품 포장용기로 만들기 놀이를 해서 가지고 놀다가 시간이 지나 버리곤 했다. 환경 보호에도 일조하고, 돈도 안들고 일석이조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만 내 집이 아니라, 길을 가는 거리도, 학교도, 상점도, 공원도 모두 내 집이다. 내 집만 살뜰히 청소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또 다른 내 집인 지구도 깨끗하게 보살피려는 마음도 함께 가져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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