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처럼 느리게 천천히 집밖을 나오기 시작하다
2017년 9월 한 달은 집안 정리의 시간들이었다. 모유 수유하는 아기도 있고 짐도 많아서 쉬엄쉬엄하다 보니 근 한 달이 소요되었다. 2017년 9월은 이곳이 파리인지 서울인지 모를 정도였다. 날씨는 매우 좋아 카페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붙어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운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파리를 구경하고 싶었다. 비록 힘든 일을 초반에 호되게 겪었지만, 단 3년이란 시간 동안 파리에 있을 수 있는데 이렇게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10월이 되니 푸른 나무들에서 붉게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선 우리 동네와 가까운 하넬라그 공원(Jardins de Ranelagh)에 가보았다. 이 공원은 라 뮤에트(La Muette) 지하철 역 근처에 위치한 약 6헥타르에 이르는 꽤나 큰 규모의 공원이다. 뮤에트는 영어 뮤트(Mute) 즉, 음소거라는 뜻인데, 지하철역 이름처럼 공원은 커다란 규모에 비해 조용하고 평온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공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1860년에 영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하넬라그 경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주변에는 우리가 익히 뉴스에서 자주 들어본 OECD 본사가 있고,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끌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립 미술관인 마르모땅(Marmottan) 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대사관들이 쭉 에워싸고 있다. 꽤나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삼각형의 이 공원을 에워싸고 있다. 주변 거주자 및 직장인들의 쉼터이자 샌드위치 하나 가지고 나와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할 수도 있는 파리 16구 시민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모래를 만지고, 미끄럼틀을 타며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두 곳 설치되어 있고, 알트 갸흐데히라고 불리는 하루 3~4시간 정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 탁아소는 실내 공간은 없는 야외 탁아소이다. 야외 놀이터인데 선생님 2~3명이 아이 노는 것을 봐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인 이 공원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하루의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교적인 성향인 17개월 아들은 놀이터에서 만나는 또래 아기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만 1세~만 3세까지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는 못하는 아기들이 낮에 놀이터에 많이 있었다. 각 아이마다 베이비시터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 흑인, 남미 계열, 동남아 계열이었다. 피부색을 보고 베이비 시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실제 엄마가 데리고 나온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프랑스는 기혼 여성들이 대부분 출산 후 바로 일을 한다고 한다. 베이비 시터와 엄마와의 차이점은 단지 피부색으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고서도 알 수 있다. 최악의 베이비 시터는 아이가 무엇을 하든 잘 살피지 않고 핸드폰만 본다. 보통은 아이도 봤다가 핸드폰도 봤다가 하는데 어떤 베이비 시터는 시종일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보거, 이어폰을 꽂고 통화를 한다.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사랑 가득한 눈으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웃는다. 아이와 교감 중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놀고 싶고 만지고 싶어서 다가가면 베이비 시터들은 반응을 해주지 않는다. 괜히 너랑 엮이기 싫다는 표정이다. 내가 아시안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우리 아이와 놀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다가갔더니 베이비시터는 자기네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나도 금세 기분이 나빠져서 ‘흥, 우리 아이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 잘 놀아.’
그러면서 나는 아이와 둘이서 놀았다. 사실 이 개월 수가 되면 또래 친구들이랑도 어울리고 싶어 하는데 주변에 한국인들도 많이 없고, 놀이터에 나가면 현지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으니 마음 한켠이 짠하기도 했다.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사설 학원을 발견했다. 만 1부터 만 3살까지 아이들의 수업이 가능한데, 음악과 체육 수업으로 나뉘어 있었다. 둘 다 하고 싶었지만, 음악 교실 한자리 남았다고 하여 그거라도 재빨리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번에 40분 수업인데 소리에 친숙하게 끔 해주는 수업이었다. 여러 도구들을 가지고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고,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부르는 커리큘럼이었다. 고작 일주일에 40분이지만 이것도 언감생심이었다. 스케줄이라는 게 있고, 아이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고, 사교적이라서 음악교실 가는 시간을 너무나도 기다렸다. 재미있는 것은 3개월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만나는데도 서로 간에 사적인 얘기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3개월 동안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엄마들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동양인이라서 인종차별받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이라 더욱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프랑스인 엄마들끼리도 별로 말이 없었다.
한국 같으면 만난 첫날부터 "어디서 오셨어요?" "아이는 몇 살이에요?" "잠은 잘 자나요?" 그리고 수업 끝날 때쯤, "카톡 어떻게 돼요?"로 끝냈을 것 같았다. 여기는 개인적인 질문을 서로가 하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에 대해 궁금한 것도 별로 없는지 묻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냥 수업에 들어와서 아이와 교감하고, 놀이에 집중하고, 선생님 지시를 잘 듣고, 그렇게 수업에 충실하고는 바이 바이 한마디 정도만 하고는 유유히 유모차를 끌고 각자 돌아간다. 이것이 나의 첫 컬처 쇼크였다. 나같이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은 조금 힘들었다. 한 달 정도 지나 서로가 익숙한 얼굴이 되면, 수업 끝나고 커피 한잔 같이 하자면서 서로 대화를 나눌 법도 한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새로운 사람과 쉽게 사귀는 문화가 아닌 듯했다. 이런 사람들은 그럼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의아했다. 수업 끝나면 늘 아이와 근처 하넬라그 공원에 가서 더 놀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갈수록 힘이 들어만 갔다. 사내 아이라 에너지는 넘치고, 워낙 사교적이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받아주니.. 어쩔 수 없다.
하넬라그 공원을 빠져나와 라 뮤에트 역으로 향하면 빠씨(Passy)라는 번화가가 나온다. 브랜드 상점들이 죽 늘어선 큰 대로가 나오는데 아이가 있어 멀리 나갈 수도 대중교통도 탈 수 없는 나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구경하고 싶을 때는 이 곳 빠씨 거리에 온다. 빠씨 플라자도 있는데 이 소규모 쇼핑센터 안에 유니클로, 액세서라이즈, 자라 홈, 라 그헝 레크헤(La Grand Recre), 모노프리 등이 들어서 있다. 꼭 구매하지 않더라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육아의 기분 전환이 되었다. 그런데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동남아 베이비 시터로 여긴다. 아이가 버젓이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낮시간에 동양인이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면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프랑스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출산 후 3개월 이내 복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눈초리가 불편해서 오래 다니지 못하고 집으로 서둘러 들어오기 일쑤였다. 물론 체력이 안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이가 보채면 너무 당황스럽고 진이 빠져서 쇼핑이고 뭐고 그냥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달팽이가 자기 집을 나와 천천히 기어 다니듯 그렇게 나도 우리 동네를 한 발짝 두 발짝 내밀며 구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