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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4. 2020

토요일 오전에는 스타벅스

파리 15구 스타벅스에서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소르본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계신 나의 첫 프랑스어 선생님과의 첫 불어 수업이 있는 날.

토요일 10시, 15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다. 파리 15구는 한국인들이 많은 거주하는 동네인데 16구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집에서 15구 스타벅스까지 걸어간다. 시간은 걸어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토요일 오전 10시 수업인데 나는 9시쯤 집을 나선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서서 유일하게 주어지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천천히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집에서 스타벅스 가는 길에는 그흐넬(Grenelle)이라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널 때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 이유는 바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에펠탑이 하나도 가리는 것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떡하니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 아래서 라는 시의 주인공인 미라보 다리가 쫙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 다리 밑으로는 센 강이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색깔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약 2분간의 시간은 내게 한 주간 육아로 인한 피로를 싹 풀어준다. 이 그흐넬 다리가 15구와 16구를 잊는다. 이 다리만 건너면 다른 동네로 진입하게 된다. 이 다리의 진입 초입에는 라디오 프랑스 방송국이 있고, 다리 끝에는 라디오 방송국 부스같이 생긴 푸른색의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르 꼬르동 블루가 바로 나타난다. 르 꼬르동 블루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요리학교이다. 전 세계 곳곳에 분교가 있는데 한국에도 있다. 바로 서울 남영동에 위치한 숙명여대에 분교가 들어가 있다. 겨우 프랑스어 기초 배우러 가는 길에도 내게는 참 많은 생각과 재충전의 시간을 준다. 

드디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스타벅스 안에는 대부분이 동양인이다.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인다. 15구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 서양인들도 물론 있으나 동양인들이 늘 더 많이 있다. 내가 관찰한 결과, 스타벅스에는 동양인들이 많고, 일반 프렌치 카페에는 서양인들이 많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서울에 살았을 당시만 해도 테헤란로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어 건물 하나 걸러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었다. 스타벅스 천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금은 다르게 변해있을 수 있다.) 이 곳 프랑스에는 한국처럼 스타벅스가 많지 않다. 구글 지도 검색을 하면 스타벅스는 한국처럼 빼곡하지 않고 듬성듬성 있다. 내가 사는 16구에 2020년 현재 검색한 기준으로 스타벅스가 단 1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15구에는 6개 있다. 상상이 가는가. 강남구, 중구와 같은 하나의 구에 해당하는 하나의 구에 스타벅스가 단 1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물론 파리는 서울의 6분의 1 크기이기 때문에 서울의 구 보다는 파리의 구가 면적이 작기는 하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 생가 내부 모습.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들과, 거실 벽면을 가득 메운 모네의 작품들을 보며, 파리에서의 삶에 다시 한번 기운을 내어본다.

평일 낮 말동무인 아이와 저녁 말동무 신랑 외에는 만나서 얘기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 사람을 만나 얘기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총 2시간의 수업 동안 난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너무 집중해서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2시간이었기 때문에 단 1초도 허투루 쓰기 싫은 마음이 들었고, 나를 인종 차별하던 프랑스인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나는 어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에 대해 큰 두려움이 없었고, 언어는 다르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은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초반에는 누구나 외국어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세세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적인 큰 틀을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최대한 문장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수업 시간에 배운 단어 또는 문장을 그때그때 외워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업에 임했다. 물론 집에 도착하면 그날 배운 것의 반 이상은 다 잊어버린다. 그래도 수업 때 집중하고 안 하고, 외우고 안 외우고는 차이가 크다. 다음날 또 보며 외우고, 매일 반복해서 외우고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외국어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2주쯤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혹시 프랑스어를 조금 배우셨나요?" 내게 묻는다. "아니요. 선생님한테 배우는 게 처음인데요." "어학에 감각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주부는 못 봤어요." 선생님 한마디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육아에 지쳐있고, 나 자신을 잃어만 가고 있던 차에 듣는 칭찬은 내 귀에 너무나도 달콤한 꿀이요, 오랜만에 자존감을 한 단계 상승시켜주는 동력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학부 때 중국어를 전공했어요. 그래서인지 외국어를 처음 접할 때 비교적 두려움은 없는 편인 거 같아요. 중국어도 하나도 모른 상태로 대학에서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계속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귀가 트이고, 입이 열리더라고요. 불어도 지금은 하나도 모르지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귀와 입이 트일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선생님은 처음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이런 자세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주었다. 

토요일 오전, 스타벅스 가는 날이 즐겁다. 토요일 2시간이 5일간 육아의 힘듦을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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