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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11. 2021

프랑스살이 제 2라운드

프랑스에서 이사하기

2020 10월, 주재원 생활은 막을 내렸고, 프랑스살이 제 2라운드 시작.

내가 프랑스에서 계속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 현실화 되었다. 주재원 종료와 함께 주재원 혜택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집도 차도 지원이 끊긴다. 즉, 우리가 살 집을 찾아 나서야 하고, 월세도 꼬박꼬박 우리 지갑에서 나간다. 2020년 6월부터 꾸준하게 집을 알아보았다. 매물을 약 20개가량 보았다. 프랑스는 집들이 평균 100년 정도라서 건물이 낡았다. 낡은 집들을 보기도 했고, 안에 내부 수리를 깨끗이 다 해놓은 집들도 꽤 보았다. 겉은 오스만 스타일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집들도 있었다. 지하철과 가깝고, 주변 환경이 좋은 집도 있었고, 에펠탑이 보이는 집도 있었다. 반면, 파리 외곽인 베르사유, 꼬부브아라는 동네도 가보았다. 파리 외곽에는 파리 오스만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한국식 또는 홍콩식 아파트가 많았다. 다양한 집들을 둘러본 결과, 우리와 운명적으로 만난 동네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

 

뇌이쉬르센은 파리 서쪽 끝에 위치한 파리 근교 위성도시다. 엄밀히 말하면 파리는 아니다. 집 바로 옆에 볼로뉴 숲이 있는데, 볼로뉴 숲이  파리 16구에 속하니까 정확히 볼로뉴 숲을 기준으로 파리와 뇌이쉬르센이 행정적으로 나뉜다. 하지만 파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파리와 접근성은 매우 좋다. 이 동네는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뇌이쉬르센이라는 동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아파트는 1970년대 지어진 건물이지만 우리가 입주하기 전, 5개월 동안 집 내부 수리를 싹 다 했기 때문에 내부가 모두 새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새것 좋아하는 뼛속까지 한국인! 200년 된 나무 뼈대가 천장에 드러나 있으면 역사와 전통이 깃든 집이라고 해서 집값이 올라가간다. 프랑스인들은 오래된 것, 역사가 깃든 것, 전통적인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집안이 낡고 헤져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집을 선호하고 집값도 더 올라간다(조승연 작가의 <시크하다>책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가족에게 그런 것 따윈 없다. 우선 깨끗하고 봐야 한다. 새것이 좋다(홍콩에 살때도 새집 발견하고 바로 이사 했다). 

부촌이다 보니 거리도 깨끗하다. 사람들도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분명 기분 탓이겠지만...) 이 동네에는 정치인, 배우 등 유명 인사들이 많이 산다는데 길에서 한 번쯤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해본다. 그리고 이 동네 하이라이트! 집 바로 옆에 Mare Saint James라는 큰 호수가 있다. 호수에 백조, 청둥오리, 각종 물새들이 서식한다. 호수 끄트머리에는 하얀 돛단배 모양의 루이뷔통 재단이 보인다. 이 호숫가에 서서 광활하고 잔잔한 호숫가 위로 둥둥 떠있는 거대한 돛단배를 그리고 있는 건축가 게리의 모습을 나도 그려본다.


11월 이삿날.

다행히 회사에서 이사 비용을 지원받았다. 프랑스는 인건비가 비싼 편이다. 열쇠수리공, 배관공, 수리공 등 기술자를 부르면 다 돈이다. 열쇠 뭉치를 집 안에 놔두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문 따는 아저씨를 불렀는데 100만 원은 기본이라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500만원까지 부른다는 사기꾼도 있다). 그래서 열쇠는 절대로 집안에 놔두고 나오면 안 되는 노이로제에 걸리기 쉬운 프랑스. 이사 업체 비용도 대략 300~400만 원은 잡아야 한다. 그래서 큰 짐이 없으면 직접 운반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우리 물건들을 일일이 만지는 것이 싫어서 옷과 신발은 전부 우리 부부가 직접 다 옮겼다. 종종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뭐, 이미 파리 처음 도착해서 귀중품 도난은 한번 겪었다) 귀중품은 죄다 차 안에 놔뒀다. 각종 귀금속, 현금, 문서, 명품 등등...


이삿날 아침, 장정 4명이 올라왔다.

"봉쥬!"

인사를 나누는데, '오 마이 갓!'

명찰에 적힌 이름이... 모하메드

2020년 11월, 프랑스는 이슬람과 유럽 국가 간의 종교 전쟁 중이었다. 이슬람인들이 프랑스 파리 근교, 니스, 리옹 등지에서 무고한 시민의 목을 베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테러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테러로 간주하고 경찰들이 수사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슬람인들이 중국인을 공격하라는 메시지가 나돌고 있고, 중국인처럼 보이는 우리 한국인들도 오돌오돌 오돌뼈처럼 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키는 190 정도에 덩치는 한 덩치 하고, 턱에는 검은 수염이 가득한 이슬람 장정들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중국인으로 알고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지?'

어제 미리 준비한 음료수 8개를 먼저 들이밀었다(잘 좀 봐줍쇼... 굽신굽신).

무서워서 괜스레 같이 이삿짐을 도와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나는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직원처럼 어느새 접시를 하나둘씩 박스에 넣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보스로 보이는 모하메드가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나는 한국인이에요... 중국인 아니에요..."

마스크 위로 보이는 큰 두 눈에서 살짝 미소 짓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나는 매우 경청하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서로 말을 트기 시작하면서 그는 나에게 간혹 가다 농담도 툭툭 던졌다.

휴...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때, 그가 우리 집 성모 마리아 상을 보더니, "예수?" 이렇게 묻는다. 신랑은 눈치 없이 예수 아니고, 성모 마리아라면서 굳이 정정하였다.

‘어이구... 지금 무슬림 모하메드 씨 앞에서 굳이 우리가 천주교 임을 밝혀야 했나?!'

나는 그의 옆구리를 세게 쿡 찔렀다.


4시간 정도 이삿짐을 다 싸고, 우리는 함께 이사할 새집으로 갔다. 이삿짐을 새집으로 이동할 때는 사다리차를 이용했다. 유럽은 엘리베이터, 복도 계단 등이 협소해서 주로 발코니를 통해 짐을 많이 이동한다. 사다리차를 통해 무지막지하게 큰 삼성 냉장고가 올라올 때는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자칫 잘못해서 냉장고가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초전박살이 날터이기에 내 심장은 콩닥콩닥했다.  사다리로 짐을 옮기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 이사는 무사히 끝이 났다.  너무너무 다행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집을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서 집 계약 등등 우리 두 부부가 다 했다. 둘은 뿌듯했다. 이삿날은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는데, 우리는 아쉬운 대로 피자 2판을 먹었다. 이제 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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