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세요
새해를 맞이해서 지난주 크리스티안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연초에 방문하려 했으나, 그 당시 코로나가 심한 편이라서 찾아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서로 전화와 이메일로 새해 인사를 나눴다. 파리 16구에 살 때 위층에 사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분들이 없었다면 파리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싶다. 다행히 영어가 유창하셔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고, 우리 집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통역해주시고, 해결해주셨다. 두 분은 영국과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신 경험이 있다. 그래서 연세에 배해 영어가 유창하고, 열린 사고를 가지고 계셨다.
파리 생활 초기, 프랑스어 한마디 못해서 할머니는 늘 내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시려고 했다. 그런데 말을 아예 한마디도 못하니 서로 대화가 거의 안 됐다. 지금 할머니가 이웃으로 계신다면 이제는 서로 프리토킹하며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쉽게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와서 그럴 수가 없다. 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 문 밑으로 쪽지를 귀엽게 밀어 넣으셨다.
"모니카, 지금 나는 시간 되니까,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해요. 대화 가능하니까"
나는 그 당시, 육아로 매일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서 대화할 힘도 안 났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육아만으로도 금새 지쳐버렸다. 할머니를 집에 오시라고 해서 함께 있기도 했는데,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하면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고 체력은 더욱 고갈됐다. 답답해지자 그냥 영어로 대화하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이곳에 살려면 프랑스어를 해야된다고 강조하셨다. 내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시려고 열의를 보이셨다. 가지고 계신 프랑스어 교재를 몇 권 주시기도 하고, 책을 펼쳐놓고 내게 가르쳐 주시려고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내 프랑스어 공부에 관심을 보이고 곁에서 물심양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도 또 없다. 하지만 내곁에는 만 1살 된 아기가 있다보니 그게 그리 말처럼 쉽지 않았다.
두 분은 자녀가 2명 있는데, 한 명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알자스에 산다고 했다. 집에 가면 손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하며 보여주셨다. 한 번은 녹차 티백을 드린 적 있는데, 한국어를 처음 본다며 매우 신기하게 생겼다며 녹차 티백 포장지를 집에 데코레이션 해놓기도 하셨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던 적이 생각난다.
노부부가 함께 성당도 같이 다니고, 식사도 같이 잘하시고 보기 좋았다. 이사할 때도 두 분은 이곳 새 집에 함께 와서 집을 봐주시기도 했다. 계약할 때 문제는 없는지 체크도 해주셨다. 지금 이사 온 집 주변에는 젊은 가족이 많이 산다. 다들 자녀 케어하랴 일하랴 분주하다.
그간 이메일로 근황을 주고 받다가 오랜만에 집에 방문했는데, 두 분은 여전히 건강히 잘 지내셨다. 보르도 레드 와인만 마시는 두 분께, 봉막쉐 식품점에서 보르도 레드 와인과 쿠키 한 상자를 선물로 드렸다. 이전에 왜 보르도 레드 와인만 드시는지 여쭤봤는데, 이것만 두통이 안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후로 보르도 레드 와인을 선호하게 됐다.
옛날 살던 동네를 걸으니 우진이 만 1살 때가 떠올랐다. 유모차에 태워서 자주 가던 공원, 빵집, 성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말도 안 통하고, 생활도 적응하지 못한 채, 아이를 홀로 키우느라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거리 곳곳에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지나고 나니, 그 또한 다 추억이 됐다. 이제 좀 아이가 컸다고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할머니와 기 할아버지는 우진이가 그새 많이 컸다며 신기해하셨다. 우진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대신 이곳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그런 아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할머니가 3명, 할아버지가 3명 있어. 처음에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놀랬던 적도 있다. 이유를 듣게 된 뒤로는 "그래 너한테는 총 6명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라고 답했다.
우진이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가족이 많아." 이 말을 들을 때면 사실 마음이 찡하다. 엄마 아빠 외 가족들을 만나서 어울릴 수가 없다 보니, 일부러라도 이렇게 말을 하면서 위로하는 것처럼 들렸다. 다른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형제자매도 있고, 친척도 있어 보이는데...
방학이 다가오면 친구들끼리 어디 가냐, 뭐하냐 그런 대화를 하는 것 같다. 6주마다 한번 꼴로 다가오는 프랑스의 방학... 우진이는 "엄마, 우리는 한국 안가?"라고 묻는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립다. 친척과 사촌들도 그립다.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도 그런 얘기를 하면, 아이가 겉으로는 밝아도 속으로는 외롭겠다는 생각도 든다.
크리스티안 할머니와 기 할아버지 댁에서 우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집안을 살펴보기도 하며, 소파에 앉아보기도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나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크리스티안 할머니는 내게 그동안 프랑스어는 많이 늘었는지? 우진이는 유치원 생활 잘 적응하는지? 동네는 분위기가 어떤지?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두 분이 2년 넘는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도 아직까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셔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전화 또는 이메일로 간간히 안부를 물으며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