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들이 글을 쓰며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나눈 곳
파리에 유명한 카페 두 곳이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찾던 카페가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두 곳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생제르망에 있는 이곳을 언급할 수 있다. 그만큼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서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두 곳 모두 가까이 있다. 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 다른 한 곳은 카페 레 되 마고(Cafe les deux magots)이다. 19세기, 파리에서 내놓라는 지성인들이 이곳 카페에 모여들어 철학과 사상을 나누고, 토론하며 각자 자유롭게 지성을 마구 펼쳤다.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기욤 아폴리네르, 롱랑 바르트, 알베르 카뮈, 앙드레 지드, 랭보, 피카소, 생 택쥐페리, 알퐁스 도데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모여들었다. 팬데믹 전, 카페 드 플로르에 신랑과 같이 갔었다. 카페 레 되 마고에 가려고 하니 팬데믹이 불어닥쳤고, 한동안 문을 닫아서 못 갔다. 마침 조승연 씨의 유튜브에도 소개되기도 했고, 관광객들이 닥치기(?) 전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번 기회에 찾아갔다.
Les Deux Magots는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지역에 있는 유명한 카페다. 한때 파리의 유명 문학가 및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은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됐다. 역사적 명성은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시몬느 드 보브아르(Simone de Beauvoir)및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같은 지식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와 같은 젊은 작가의 후원에서 출발했다. 다른 후원자에는 Albert Camus, Pablo Picasso, James Joyce, Bertolt Brecht, Julia Child 및 미국 작가 James Baldwin, Chester Himes 및 Richard Wright가 있다. 되 마고 문학상은 1933년부터 매년 프랑스 소설에 수여되고 있다. 카페에는 마고라는 간행물을 진열해놓았다.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무료 치고는 내용이 매우 알차다. 발행인은 카페 주인인 카트린 느이다.
마고(Magot)는 ‘극동에서 온 땅딸막한 입상’을 의미한다. 원래 23 Rue de Buci 근처에 있는 직물 및 참신한 상점에 속해 있었다. 이 가게는 실크 란제리를 판매했으며 Les Deux Magots de la Chine이라는 제목의 당시 인기 있는 연극(1800년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두 개의 동상은 방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중국의 "만다린" 또는 "마술사"(철학적 관점에 따라 "연금술사"로도 해석 가능)를 나타낸다. 1873년, 사업체는 Saint-Germain-des-Prés 광장의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1884년에는 카페와 주류 판매업체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오귀스트 불레(Auguste Boulay)는 파산 직전인 1914년에 400,000프랑에 이 사업을 샀다. 현재 매니저인 카트린느 마 띠바(Catherine Mathivat)는 그의 증손녀이다.
1885년에 오픈한 이 카페는 식사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많이 비싸다. 샌드위치 한 개에 27유로 한다. 물론 샌드위치 하나만 덜렁 나오는 게 아니고, 사이드로 음식이 곁들여지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찾아간 그날은 4월 28일 목요일이었고, 봄 날씨를 만끽하겠다고 손님들 전부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실내에는 딱 두 개 테이블만 손님이 앉아있었다. 이런 횡재가 다 있나. 팬데믹 전, 이곳을 지나칠 때면 내부도 외부도 모두 사람들로 꽉꽉 차있었다. 비어있는 날이 없었다. 아직 팬데믹 전만큼의 관광객이 오지는 않기 때문에 내부는 썰렁했다. 벽에 붙어있는 액자 속 인물들을 천천히 가까이서 응시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 액자들이 테이블 옆에 바짝 붙어있기 때문에 손님이 앉아 있다면 가까이 가서 보는 것은 실례가 된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나는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봤다. 너무 영광스러웠다. 우선 지하 화장실부터 가봤다. 대게 이런 곳은 화장실도 가봐야 한다. 화장실 가는 길도 사진이 있거나, 그 당시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진열해놓는 경우가 많다. 내려가는 계단이 매우 협소하다. 카페 내부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지하 화장실 앞에 각종 아이템과 기념품을 진열해놓았다. 화장실도 작은 편이다. 사람들은 화장실 가는 복도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와인, 컵, 잡지책 등을 찍었다. 르 마그라는 카페 자체 발행 간행물도 가져갈 수 있다.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매우 알차고 풍성하다. 시즌별로 발행되는 잡지다.
테이블마다 사람이 없어서 액자를 매우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피카소와 그의 연인 도라 마르(Dora Maar)가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둘은 이곳에서 자주 만나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도라 마르는 프랑스 사진가, 화가, 시인이다. 그녀는 피카소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그 옆에는 시몬 드 보브아르 사진이 걸려있다. 액자가 걸려있는 딱 그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다. 배경이 지금 현재 카페 레 되 마고와 똑같다. 카페는 사진과 흡사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관리하고 보수하고 신경을 썼을까. 사실 이 카페는 이 문인들의 사진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멀리서 이 비싼 커피를 사 먹으면서 이곳에 오는 걸까? 바로 유명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자취를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어딘가에 박혀 있을 법한 그들이 내뿜은 숨결과 놔두고 간 먼지 티끌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그만큼 역사와 역사적 인물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가 문화예술 역사 보존에 힘을 쏟는 이유다. 흑백 사진 속 뒷 배경의 전등,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흰색 원기둥, 테이블, 유리창 등 모든 것이 똑같다. 나도 한번 앉아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느껴본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최근 '반지성'이라는 단어가 화제다. 윤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반지성주의'라고 했고, 그 후, 문 전 대통령이 '반지성'을 언급했으며, 그 후 또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반지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반지성의 반대말은 지성이다. 지성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지성은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라고 나온다. 지성인이란 지성을 지닌 사람 또는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데 있다고 하는 인간관이라고 나온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럼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은 누구인가?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인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가로 유명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은 당대 큰 화제를 모았다. 2022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그 당시 이 커플 결혼 스타일은 파격적이다.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며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도화되기를 원치 않는다며 노벨 문학상도 거절했다. 그가 볼 때 인간은 사물과 달리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필은 쓰는 도구이며, 컵은 물을 마시는 도구다. 이처럼 사물은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본질이 있으나, 인간은 어떠한 본질이 정해져있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로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정해진 본질이 아니기에 인간은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본질이 규정되지 않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쓰임새를 사물과 달리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즉,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인간은 본질을 뛰어넘는 존재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남긴 명언 중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에 있는 C(Choice)이다라고 했는데, 탄생과 죽음 사이에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생각하면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 선택은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이끌어나가야 실존을 증명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프랑스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나는 객관적으로 내 삶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과거 내 삶을 되돌아보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러므로 나는 실존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부모님 기대에 맞춰, 타인의 시선에 따라, 친구들과 비교하며... 남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한국 사회가 그런 구조에 놓인 것인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며, 부모님 기대에 맞춰...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 시선, 기대 등에 맞춰 살았던 적이 있다. 모든 순간이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순간 타인과 사회가 말하는 기준 등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뚝 떨어져서 때로는 고독과 외로움을 마주해야 하지만, 이방인으로서 이 고독과 친해지고, 외로움에 익숙해지며, 진짜 나를 발견하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힘들고 고군분투중이지만 자유로워지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내 의지대로 삶을 일궈나가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등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살아가고 싶다. 물론 가족과 의논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타인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지만 점점 자유로워지려고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도 내 아이만큼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한다. 만 6살이지만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부모가 이끌어나가고 선택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습관을 어릴적부터 길러주고 싶다. 아이가 커서 자신이 하고 싶은것,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면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