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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0. 2022

프랑스 유치원의 중국어 수업

어릴적부터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교육이 필요하다

3월 어느 날, 아이는 시 잘레 엉 신~ 시 잘레 엉 신~ 을 집에서 흥얼거렸다. Si j'allais en Chine 직역하면 내가 중국에 간다면~이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정말 이런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중국에 여행 가면 어디 어디를 가보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아이와 함께 노래 가사를 한 소절 한 소절 따라 부르면서 프랑스어 공부도 되고, 중국에 대해 공부도 하고 여러모로 좋았다.

 

프랑스 유치원에서는 중국어 노래,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교실 곳곳에 중국 관련 책이 많다. by 모니카


요즘 유치원에서 중국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각도에서 다방면으로 그 주제를 학습하는 교육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주제가 중국이면, 중국 관련 노래, 중국어 쓰기, 중국 관련 그림 그리기, 만들기 하기, 중국 문화, 중국 위치 등 다양하게 학습한다. 물론 만 5세 아이 수준에 맞춰서.


아이를 픽업하면서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요즘 우진이가 중국에 대해 배운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나라에 대해, 특히 아시아 국가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해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프랑스 유치원은 선생님 재량에 따라 수업을 이끌어간다. 교장 선생님의 개입이 많이 없다. 그만큼 담임 선생님의 교육 철학 및 가치관이 그 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나는 우진이 담임 선생님이 인종의 다양성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유치원에서는 영어를 하지 않는데, 이번 선생님은 금요일마다 영어도 가르쳐주신다. 

"내일은 판다 노래를 할 거예요."라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옆에 있던 우진이는 "엄마, 우리 집에 판다 인형 있잖아. 그거 학교에 가지고 가자."라고 했고, 선생님은 좋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다음 날, 판다 인형을 가지고 유치원에 갔다. 친구들이 모두 판다 인형을 안아보고 싶다며 몰려들었고, 우진이는 그런 게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조금만 주목을 받아도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보다. 내가 주인공이 된 그런 기분을. 그날 이후 우리 둘은 매일 Si j'allais en Chine 노래를 불렀고, 다 외워서 마주 보며 불렀다. 아이를 픽업하면서, 다음 주에는 중국어로 된 생일 축하 노래를 할 거라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께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니까, 선생님은 나보고 그럼 아이들에게 중국어 노래를 직접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중국어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글자를 스케치북에 썼다. 발음도 표기하고, 성조도 함께 표기했다. 각 한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한자 밑에 프랑스어로 적었다. 중국어에는 4개 성조가 있는데, 이 성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단히 설명하기로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어려운 것을 하기보다는 생일 축하합니다 가사를 따라 부르고, 4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4월 7일 목요일 아침, 전날  저녁 우진이와 함께 준비한 스케치북을 가지고, 아이와 손잡고 함께 유치원으로 향했다유치원 내부 복도는 온통 벚꽃 그림으로  가득했다. 그림 아래에는 중국의 벚꽃이라고 적혀있었다. 반 아이들은 내 손에 든 중국어 한자를 보더니 몇몇 아이들은 한자를 노트에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V가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지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한자를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따라 쓰기 시작했다. 만 5세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너무 반듯하게 잘 따라 적었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선생님은 중국어 생일 축하 노래 CD를 틀어서 아이들에게 먼저 들어보게 했다. 그다음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설명했다. 이 글자는 이런 뜻이고, 이렇게 발음하며, 4성 높낮이에 대해 알려줬다. 내가 보기에 담임 선생님이 중국어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4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선생님은 재미있다며 적극적으로 따라 했다. 아이들도 재밌다며 웃으며 내 발음을 따라 했다. '쭈 니 셩르 콰이르어~ 쭈 니 셩르 꽈이르어~' 아이들은 금방 배웠다. 몇 번 알려주니 금방 쉽게 따라했다. 프랑스 유치원 교실 안은 중국어 노래로 가득 울려퍼졌다. 옆 반 선생님도 와서 구경했다. 오선지 위 도레미파솔을 바탕으로 성조를 설명하니 다들 이해가 쉬운 모양이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정신없이 파도 치는 듯한 중국어 억양이 마치 노래처럼 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만든 자료를 놔두고 가도 되냐고 물으셨고 나는 물론이라며 흔쾌히 드렸다.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더 드리고 싶다. 중국어 공부했던 것을 이렇게 프랑스 유치원에서 써먹는구나 싶었다. 비록 간단한 단어와 문장이지만 보람찼다. 


집에서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든 중국어 자료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간단히 생일 노래를 가르쳐줬다. 교실에서 한 켠에서 발견한 사랑 by 모니카 


작년 만 4세 반에서 한국 수업에 이어 이번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한 요즘,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에는 다른 나라가 있고, 자신과 다르게 생긴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조금 다른 색 피부를 가진 아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나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직 어려서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종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어릴 적부터 알려줘야 한다. 


두 번째는 우진이를 위해서다. 나는 아이에게 외국어를 공부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따로 앉아서 같이 공부한 적도 별로 없다. 그저 엄마가 잘 하진 못하더라도 몸소 다양한 언어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엄마도 잘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이런 모습들이 아이에게는 알게 모르게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진이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엄마도 잘은 못 해. 그래서 계속 배우고 공부하는 거야. 프랑스어는 네가 나보다 더 잘하니까 엄마를 좀 가르쳐주라. 나 프랑스어 잘 못하잖아. 내 발음이 이상하면 네가 나를 좀 고쳐주라."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엄마보다 뭔가 내가 하나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고, 이는 곧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이 눈에는 자기보다 커 보이는 엄마 아빠가 뭔가 대단해 보이고, 원더우먼이고 슈퍼맨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도 부족한 점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아이한테 이거는 엄마 아빠보다 네가 훨씬 잘한다고 해주면 아이는 의기양양해지면서, 더욱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이는 프랑스처럼 영어, 중국어도 엄마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나도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프랑스어도 처음에는 엄마보다 못했지만 이제 엄마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쳐 줄 때, 우진이는 엄마가 유치원에 와서 자기 친구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있다는 그 기분이 좋은지 수업 내내 괜스레 으쓱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우월감, 과시욕, 뭐 그런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보다 잘 낫다가 아니다. 만 5세 아이도 우리 가족은 다른 많은 프랑스 가족과 다르게 생기고,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당당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뭔가를 알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아이한테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나는 우진이 유치원에서 한국어, 영어, 중국어 수업을 간단하게 했다. 내가 외국어를 결코 잘해서가 아니다. 몇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와 인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아시아 엄마와 아이가 프랑스 사회에서 작지만 뭔가를 주도적으로 해나가며, 이런 모습들이 우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 등을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이라는 동네에서 소수 민족이라면 소수 민족이다. 주변에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도 거의 없다. 흑인도 많지 않다. 거의 백인 위주 동네다. 그런 가운데 이렇게라도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존재감을 보이는 게 아이의 자존감, 존재감, 정체성, 자신감, 자기 주도성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분 정도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중국어로 감사하다는 어떻게 말하냐고 해서 화이트보드에 한자를 적었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일제히 내게 “씨에씨에!”라고 소리쳤다. 나도 화답한다. “씨에 씨에! 짜이 찌 앤!” 


한 아이가 내가 가지고 간 중국어 노래 교재를 가져가더니 혼자 조용히 한자를 따라 썼다. 보니까 너무 잘 썼다.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서예를 한 흔적도 발견 by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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