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Apr 12. 2022

프랑스의 필리피노

필리핀 스타일 생일 파티

작년 11월 어느 날 우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우리 반에 여자 아이가 새로 왔어. 근데 이름이 C야!"

"이름이 C라고? (명품 브랜드 이름과 같다) 설마!"

"진짜야."

다음날 우진이를 픽업하면서 누가 C인지 물어봤다. 생김새가 중국인 또는 한국인 같이 생겼다. 이름이 뭐냐고 살며시 물어보니 정말 C란다. 어느 날, 아침 길을 가다가 C와 그 옆에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있길래, C엄마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서로 인사했고, 필리핀 출신임을 알게 됐다. 필리핀 사람들은 생김새가 두 종류로 나뉘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에 누가 봐도 필리핀 사람처럼 생긴 경우가 있고, 한국 또는 중국인처럼 생긴 경우가 있다. 엄마는 필리핀 사람처럼 생겼고, 아이는 한국 또는 중국인처럼 생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필리핀과 조금 인연이 있다. 이전에 직장을 다녔을 때, 아세안(ASEAN) 국가 관련 일을 했는데 (ASEAN은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이뤄진 연합 국제기구) 필리핀 마닐라에 여러 번 출장을 갔다. 주로 현지 외교관 및 공무원과 일을 하면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미팅을 하며, 업체 사장님들과 산업시찰을 했다. 필리핀 경제 상황, 현지 모습과 사람들을 조금 알 수 있었다. 비교적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받으며 일을 했지만, 일을 끝내고 저녁 자유 시간에 잠깐 현지를 둘러보거나,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그곳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아세안 국가 중 싱가포르, 부르나이 같은 국가는 잘 사는 나라에 들어간다(싱가포르의 경우, 자기들이 여기 들어가 있는 것에 불만인 경우도 있다). 반면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 같은 곳은 빈부 격차가 심하고, 그만큼 부정부패도 심하다. 돈으로 해결되는 게 많다고 그 당시 들었다. 고위 관료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자녀들도 해외 유학 보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 많이 가난하다. 필리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은 해외 각국으로 많이 나가서 청소, 베이비시터 등의 일을 한다. 홍콩, 싱가포르에 가장 많이 있고, 그다음으로 미국, 유럽 곳곳에 퍼져나가 있다. 이곳 프랑스에도 아이들 픽업하러 오는 보모들을 보면 거의 필리핀 사람들이다. 남미, 동유럽도 있긴 하지만, 동남아 출신들이 많이 보인다. 동남아 중에서도 필리핀이 가장 많다. 필리핀 커뮤니티가 크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상부상조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돕고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에서도 그들끼리 뭉치고, 주말이면 길거리에 돗자리 깔고 자기들끼리 주말을 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C엄마 A는 10년 넘게 이곳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다. A는 나를 처음 만난 날부터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저는 청소일을 하고 있어요. 남편은 집안 대소사를 모두 자신의 형과 엄마(그녀에게는 시엄마)와 의논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따로 살아요” 첫 만남이 강력했다. 그녀는 다른 필리핀 사람들과는 달리 처음 본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과감 없이 털어놓았다. 대게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끼리만 뭉쳐지내는 편이다. 그녀는 아침 등굣길에서 나를 만나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아빠 없이 혼자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집세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재 청소해주는 집주인 하녀 방에서 산다고 했다. 월세는 내지 않고서... 여기는 원룸같이 생긴 방이 오스만 건물 1.5층에 있다.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1.5층.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 1.5층이 있었는데 주로 주인집 청소일을 해주는 청소부들이 묶고 있었다. 인턴쉽 하러 지방에서 파리에 온 학생들도 간혹 있기도 했다. 다행히 월세는 안 낸다고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청소를 시킨다고 했다. 저녁 늦은 시간에도 일이 생기면 콜을 해서 오게 한다는 것이다. 집세 안 나가고, 월급 주니 어쩔 수 없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중에 알게 됐지만, 생각보다 그녀의 삶이 복잡했다. 그녀가 "내 삶이 마치 소설 같죠?"라고 말하는데, 정말 소설을 써도 될 것 같았다.


작년 12월 초, A에게 주말에 루이뷔통 재단에서 하는 미술 아뜰리에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멤버십 카드가 있기 때문에 A와 두 자녀 모두 무료라고 했다. A는 매우 좋아했다. 그녀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은 절대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기 아이들만큼은 자신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며, 자기는 고생해도 괜찮으니 아이가 여기서 학교에 다니고, 좋은 교육을 받으며, 대학까지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부모 마음이 다 똑같다. 자기 자식만큼은 자기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내 자식은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커서 괜찮은 직업을 갖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날 그녀는 시종일관 그림과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종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야외 테라스로 걸음을 옮겨서 에펠탑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내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작년 11월, 처음 그녀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넥플릭스 <Maid>가 오버랩됐다. 덕분에 그 드라마를 끝까지 순식간에 시청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리즈인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주인공이 악착같이 힘든 청소일을 해내고, 틈틈이 글을 써서 작가가 된 이야기다. 여주인공을 볼 때마다 A가 떠올랐다. A를 볼 때마다 여주인공이 떠올랐다. 나는 작년 11월에는 EBS 기사를 좀 많이 작성했다. 대게 한 달에 1~2편 정도 썼는데, 그 달에만 7편을 썼다. 집안 살림하며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A를 생각하면, 앉아서 글을 쓰는 게 뭐가 힘들어... 스스로 다독이면서 글을 썼다.


2022년 새해가 밝았고, 새해 아침 등굣길에서 만난 그녀는 연휴 기간 내내 일을 했다고,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내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12월 24일과 31일도 일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주인집에 딸려 사는 게 너무 스트레스라며, 돈이 들더라도 아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집을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느 날, 집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괜찮은 원룸을 구했다고 했다. 나는 축하한다고 했고, 그녀는 이제 아이들과 함께 조용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주변 환경이 좋은 새 집 근처에 유치원이 있는데, 아무래도 기존 유치원까지 아침마다 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며, 3월 초에 전학을 간다고 했다. 곧 생일이 다가오는데 우진이를 꼭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C와 A는 이곳을 떠났다.


4 10, 프랑스 대선이 있는 , 나와 우진이는 선물을 들고, C로 향했다. 작은 원룸 스튜디오였다. 4명의 필리피노가 음식을 하고 있었다. 대모 격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진두지휘하고 계신 듯했다.  밑으로 3명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대모는 여기서 20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 와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그녀의 얼굴에 이미 많은 삶이 들어가 있는  보였다.  외에도 기본적으로 10 정도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필리피노들이었다. 각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한국 드라마 너무 좋아한다고 말한다. 특히, 현빈과 손예진 얘기는 거의 빼먹지 않는다. '사랑의 불시착 너무 재밌다. 둘이 너무 선남선녀다. 둘이 사귄다고 해서 놀랬다. 최근 결혼해서  놀랬다.' 등등...  필리피노는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한국 드라마는  인기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려놨는데, 종류가 이미 15가지 정도였다. 좁은 집에서 많이도 준비했다. A가 이전에 말하기를 프랑스 스타일 생일 파티 아니고, 필리핀 스타일 생일 파티를 할 거라고 미리 말했다. 자기들은 생일에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서 나눠먹는다고 했다. 프랑스는 아이들 생일 파티에 가면 먹는 것은 케이크, 음료, 젤리 정도로 가볍게 준비하고 주로 액티비티 위주로 진행된다. 미술관 관람, 인형극 관람, 페이스 페인팅, 마술 관람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한다. 반면 필리핀, 중국... 이쪽 국가로 가면 생일은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서 같이 나눠먹는 문화다. 이것을 보면서 못 사는 가정일수록 먹는 것에 돈을 더 많이 쓰는 앵겔 지수가 생각났다. 물론 못 산다고 먹는 것 위주의 생일 파티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화가 다른 것이다. 중국도 손님 대접할 때는 음식을 남길 정도 충분히 많이 준비하는 게 손님 접대를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아무튼 15가지가 다인 줄 알았는데, 그릇이 비워지니 또 새로운 음식이 나오고, 또 새로운 음식이 나오고 끝이 없었다.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나는 건가. 음식 종류가 20가지가 정도 된 것 같다. 입에 안 맞는 음식도 있었고, 다행히 입에 맞는 음식도 있었다. 중국에서 즐겨 먹던 대나무 잎에 찹쌀을 넣어 쪄서 먹는 쫑즈가 나왔다. 나는 중국에서 쫑즈 많이 먹었다고 했더니, 다들 그렇냐고 필리핀에도 이런 음식이 있다고 했다. 자기들은 이것을 디저트로 먹는다고 했다. 디저트인데 찹쌀이다. 필리핀 음식은 중국 및 베트남 음식이 약간 혼재된 느낌이었다. 쌀이 주식이었다. 쌀로 만든 케이크, 약밥도 있었고, 쫑즈도 찹쌀... 대부분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이었다.


(좌) 모두 집에서 만든 필리핀 음식들 (중) 쌀로 만든 케익, 쌀로 만든 약밥, 떡도 집에서 다 만들었단다 (우) 새우가 많이 들어간 매운 요리 by 모니카


손님들이   명씩 도착하는데, 나와 우진이 빼고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남성  명은 프랑스인으로 보였는데, 같이  필리핀 여성과 커플 사이인  같았다.) 서로가 이미 이곳에서 10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인 듯했다.  세어보니 어른  14, 아이  8, 도합 22명이었다. 다행히 1층(프랑스식으로 0층)이라 앞 뜰을 활용할 수 있어서 1/3은 야외 소파에 앉았다. 중간 즈음에 C 아빠가 잠깐 왔다. A 예상치 못했는지 순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C 아빠는 선물을 주고, 잠깐 있다가 금방 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들 C 아빠도  알고 있는  보였다. 반은 앉고, 반은 서서 음식을 먹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그들은 이런 것이 익숙한지 내내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워했다. 필리핀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이렇게 필리핀 사람들과 필리핀 가정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감정이 복잡다단했다. A 처음  내게 자신의 치부라면 치부를  보이고, 자신의 삶을 보여줬다. 어쩌면 내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그녀 얘기를  들어줘서 나를 편하게 생각한  같다. 기존 학교에서 초대한 친구는 우진이   명뿐이었다. 나는 필리핀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들도 조금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곳   프랑스까지 와서 궂은일 하면서 여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렇게 상황에 맞춰 서로 돕고 울고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좌) 필리핀 디저트라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다. 맛은 중국 쫑즈와 비슷하다. (중) 생선을 대나무잎에 싸서 구웠다. 생선 안에 뭘 많이 넣었는데 입에 도무지 안맞았다. by 모니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C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향해 탄생을 축하해주는 이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보이는 게 쑥스러운지 애써 감추려고 했다. 만 6세가 되는 C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C가 오늘 많이 행복한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녀도 분명 아빠 엄마 관계, 가족사 등등 알고 있을 테다. 평소 C를 볼 때마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있고, 자기를 위해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려고 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오늘 하루를 위해 엄청나게 준비한 것도 다 알고 있다. 집안 곳곳에 수많은 풍선으로 데코레이션 하고, 20가지 음식을 손수 준비하고,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도록 미술 키트도 따로 준비해놓고, 주인공이니 만큼 예쁜 공주옷을 입히고,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는 뜻임을 알 것이다. C의 붉어진 눈시울 안에 6년 동안 아이가 보고 느끼고 경험했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이웃, 친지들이 C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 한편으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A도 오늘 하루 행복해 보였다. 하나뿐인 딸 생일을 축하해주러 사람들이 모였고, C가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연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었다. 아마도 필리핀에 계시는 자신의 부모님께 보여드리려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진으로 영상으로 그렇게 담고 있었다.    


(좌) 초밥도 집에서 만들었다 (중) 색깔 넣어 떡도 만들었다 (우) 약밥 맛이다. 필리핀은 쌀로 만든 요리가 많은 것 같다. by 모니카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유치원의 중국어 수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