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
파리로 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서 배우면 되지,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쉽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영어와 중국어를 처음에는 전혀 몰랐지만 외국인들과 겁 없이 직접 부딪혀 보기도 하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 외국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은 중국과 달랐다. 내가 경험한 중국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처음 가 본 우한은 깡 시골이었고, 우한 주민들에게도 다른 나라 언어를 하는 외국인 대학생들이 신기했는지 우리를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교환학생으로 간 남경의 대학생들도 한국인인 나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물론 학생 신분이고 같은 학교 동급생이라 소속감이 크니 당연한 얘기지만, 최소한 적대적인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한국 문화를 궁금해했고, 특히 그 당시 한국 드라마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대화 주제가 끊이지 않았고, 나의 잘못된 중국어를 일일이 교정해주었다. 시드니 여름 캠프에서 만난 호주 중학생 친구들도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하지만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었고, 발음을 하나하나 고쳐주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듯 나에게 외국인이란 어려운 사람들이 아닌 따뜻한 사람이었다. 난 외국인이 좋았다. 나와 달라서 좋았고, 그냥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이곳 파리에서는 나의 이런 기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상황들이 매일 같이 터졌다.
프랑스인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빵. 우리나라의 김밥집처럼 이곳은 빵집이 너무나도 많다. 내 눈에 바게트는 김밥처럼 보인다. 바게트 한 줄이 마치 김밥 한 줄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나는 김밥 대신 바게트를 사 먹으려고 빵집에 들어갔다.
"One baguette, please." 빵집 주인은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프랑스는 식당이든 가게든 손님이 왕이다는 주의가 아니다. 손님에게 친절과 상냥은 기대하면 안 된다.
나는 손가락으로 빵을 가리켰다. 내가 동양인이고,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로 말한 것을 알면서도 빵값을 프랑스어로 말한다. 표정은 아주 시크하다. "트후아 즈호 캬트흐방 디즈 뇌프 썽팀!" 이건 대체 어느 나라 말이더냐.. 3유로 99 센트라는 이 짧은 단어가 이리도 길게 들릴 수 있단 말이냐. 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있어도 얄짤 없었다. 빵집 주인은 다시 한번 프랑스어로 단호하게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모차에 있는 아이는 보채기 시작했다. 내 뒤에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점점 길어졌다. 점원도,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마에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갑에 있는 동전들을 손바닥에 다 쏟아부었다. 점원은 동전만 쏙쏙 빼간다. 그리고는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없다. 그새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유모차 끌고 나가는 나를 다들 한 번씩 쳐다본다.
'아... 빵 하나 먹는 게 이렇게 큰 수고가 필요한 일이었나.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는 게 딱 이런 것이구나.' 아이에게 바게트를 조금씩 떼어주면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겁나고 힘들어서 아무리 먼 거리도 늘 유모차를 끌고 걸어 다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온몸에 젖은 땀과 함께 긴장감이 싹 풀어지면서 소파에 털석 주저앉았다. 뭐 그리 대단한 것도 하지 않았는데, 고작 빵 하나 사고, 유모차 끌고 집에 온 것뿐인데도 온몸이 쑤시고 목, 어깨가 결렸다. 늘 결리는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두통도 잦았다. 프랑스인들 특유의 그 시크한 무표정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고, 나는 프랑스어가 점점 두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