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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3. 2020

프랑스 생활필수품, 구글 번역기

아기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들..

프랑스에는 생후 3개월부터 만 3세까지의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크레슈(Crèche)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주로 직장여성들이 자신의 아이를 이곳에 많이 맡긴다. 이 곳에 맡기기 싫으면 베이비 시터를 고용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정부 산하 보육 기관을 매우 신뢰하는 편이라서 이 곳에 들어가려면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래서 프랑스 엄마들은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다음날이면 시청에 가서 신청을 한다고 한다.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립도 있고, 개인이 하는 사립도 있다. 공립은 각 개인별 수입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 만약 수입이 없는 학생 부부라면 심지어 한 푼도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다. 반면 연봉이 2억 이상인 고소득층이라도 최대 비용은 상한선을 제한해 두었고, 2018년 기준으로 시간당 4.29유로였다. 내가 알아본 사립은 5일 전일반 기준으로 대략 비용이 월 250~300만 원 정도 하였다.  


나는 파리에 오고 난 뒤에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16구 시청에 신청을 하러 갔다. 신청 후 족히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이미 들었던 터라 지금 신청을 해놔야 1년 후에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랴 부랴 시청으로 유모차를 끌고 갔다. 우리 집에서 시청까지는 버스로 10분, 걸어서 30분, 유모차 끌고 걸으면 1시간이다.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 유모차를 밀고 가려면 혼자 걸어가는 것의 배가 걸린다. 특히 시청 가는 길목에 오르막이 있어서 더욱 몸이 힘이 든다. 그래도 아직은 대중교통을 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탄다는 것은 무리며, 버스도 유모차를 들고 올리는데 겁이 났다. 무엇보다 도난 사건의 후유증이 꽤나 커서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라고도 볼 수 있는 동양 여성이 그것도 아기를 데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교통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매치기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시청에 도착했다. 내가 그동안 시청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파리의 시청. 시청이 무슨 르네상스풍의 호텔 같기도 하고, 뮤지엄 같기도 하고 이곳에서 매일 행정 업무를 보는 직원들은 기분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1층에 위치한 가족 육아 담당이라고 쓰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겁 없이 한 행동은 애플리케이션 앱에서 다운로드한 구글 번역기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곳에 적으면 알아서 프랑스어로 번역해주니 핸드폰을 그 직원 눈 앞에 들이밀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듯 한 표정이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못 알아듣는다는 제스처를 취하니 내 핸드폰에다가 하고 싶은 말을 프랑스어로 쓴다. 나는 번역이 된 글들을 읽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구글 번역기도 번역을 100%로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이상한 말로 오역이 되기도 한다. 말이 길어지고, 복잡해지자 구글 번역기는 이것을 감당해내지 못하게 되었다. 좌절감을 또 한 번 맛본다. 한국이었다면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이 일을 프랑스어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 수가... 게다가 아기는 지겹다고 보채기 시작한다. 울기 시작하니 직원들한테 눈치가 보여서 이곳을 얼른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나가려니, 나한테 종이 뭉텡이를 건네준다. 얼른 받아 들고 으리으리한 시청을 구경할 정신도 마음도 없이 그 길로 집으로 향했다. 


로댕 미술관 정원에 있는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 처럼 파리에서는 정말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끔, 고뇌하게 끔 만드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1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하니 온몸은 땀으로 샤워한 듯했고,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대로 쓰러졌다. '너무 힘들다.'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기를 챙기고, 씻기고, 먹여야 하는데 그럴 에너지도 하나 없었다. '35년 넘는 인생 동안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외국인 만나는 게 힘든 적이 없었던 나였는데, 파리라는 곳에서, 프랑스인 앞에서 작아지고 소심 해지는 나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알던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 조금 있다가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하고, 우선 아기부터 챙겼다. 같이 씻고 나서 얼른 식사를 차려서 아기부터 먹였다. 그런 다음 나도 허기를 채운 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데 행정 직원이 내게 준 서류 뭉치들을 구글 번역기를 옆에 놓고 읽었다. 레슈 신청을 위한 준비 사항 및 서류들에 관한 항목들이 주르르 나열되어 있었다. 준비 사항은 10가지 정도였는데, 서류의 나라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프랑스는 모든 행정 업무는 전자가 아닌 서류로 처리한다. 그 이유는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보니 역사 보존 및 기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서류로 늘 보관하고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생활 전반에 뿌리 깊게 베여있다.  


신랑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신랑은 나를 위로해주면서 해외살이가 만만치 않다며 얼른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래, 이 모든 어려움의 발단은 언어였어.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프랑스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파리 살이가 결코 힘들지 않을 것이야. 그간 해외 살이가 전혀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어.' 


나는 마치 지금 내가 돌보고 있는 우리 아이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았다. 옆에서 내가 챙겨주고 돌봐줘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인 이 아기처럼 나도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에 내가 놓여있음을 알았다. 구글 번역기가 있어야 물건도 겨우 살 수 있고, 도저히 혼자서는 생활이 안된다. 그날 당장 온갖 웹사이트, 카페, 블로그를 뒤져서 프랑스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지인을 통해 잘 가르친다는 불어 선생님을 소개받았고,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불어 수업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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