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표현의 자유
에펠탑 앞 푸른 공원 샹드 막스 끝자락에서는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파리 도서 축제가 열렸다. 2021년 이전에는 파리 도서(Livre Paris)라고 불렸고, 올해부터 파리 도서 축제(Festival du Livre de Paris)라고 '축제'라는 단어가 새롭게 추가됐다. 파리 도서전, 파리 국제도서전, 파리 도서 박람회 라고 번역하면 더욱 자연스럽지만 현장은 책으로 독서로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도서 축제라고 쓰고 싶다. 1981년 SNE(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 국립 출판 연맹)이 조직한 책과 글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행사다. 이 행사는 크고 작은 출판사와 도서 관련 종사자 모두를 환영하며, 전문가 및 일반 대중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다. 참가는 사전 예약해야 하며 무료다.
올봄, 40년 전 파리 도서전이 최초로 개최됐던 그랑팔레에서 개최됐다. 그랑 팔레는 보수 공사로 잠시 문을 닫은 상태이며 대신 그랑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가 임시로 건축됐다. 여기서 에페메르는 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건축가 장 미셸 윌모트(Jean Michel Wilmotte)가 샹드 막스 공원에 이 임시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는 1948년 4월 2일 수아송(Soissons)에서 태어난 프랑스 건축가, 도시계획가 및 디자이너이다. 나무 프레임과 생태학적 건축 기법으로 지어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찬사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회, 쇼,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때, 이곳에서 유도, 레슬링, 휠체어 럭비, 장애인 유도 경기를 개최할 예정이기도 하다. Plateau Joffre에 위치한 이곳은 에펠탑과 군사학교 사이에 위치했으며 20미터 높이다. 44개의 기념비적인 아치가 단 3개월만에 현장에서 조립됐다. 건물 구조는 모듈식으로 설계됐고, 2024년 올림픽 후 철거될 예정이다. 모듈식, 지속가능한 재료 사용 및 구조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환경적 요구와 일치하는 프로젝트이다. 건축에 사용된 목재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되는 숲에서 가져온 PEFC 라벨이 붙은 것이다. 1,956톤 가량의 CO2가 프레임에 흡수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을 둘러싼 이중 외피는 음향, 열, 환기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덜 사용한다. 외부에서 볼 수 있는 투명 텍스타일은 석유 기반 폴리머가 아닌 미네랄 기반으로 만들어, 유리에 비해 제조 시 에너지를 90%를 적게 생성한다. 또한 완전히 재활용 가능하다.
이번 도서 축제는 2년 만에 돌아왔다. 올해는 SNE의 자회사인 Paris Livre Événements에서 주최했다. 이 행사는 출판계의 풍요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는 시간이다. 올해는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 가족을 위한 워크숍, 예술 공연, 콘서트 등 새로운 프로그램이 주요 특징으로 자리했다.
나는 지난 주말 다소 빡빡한 일정 + 실내 마스크 미착용 + 옷을 얇게 입어서 추위를 탄 삼종 세트 덕분에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 행사에 가고 싶어서 일주일 전부터 예약했지만, 지난 주말부터 몸이 계속 좋지 않자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행사 다음날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몸을 사리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금요일 아침 상태가 좋아져서 날씨도 좋고 파리 봄날도 즐길 겸 가기로 했다. 볼로뉴 숲 안으로 들어가니 온 사방이 초록초록이었다. 볼로뉴 숲을 그대로 통과하는 바로 파리 16구가 나왔다. 봄날, 옛날 살던 동네를 걷고 있으니 초창기 아기 키울 때가 생각났다. 하넬라그 공원, 각종 상점, 마트, 고깃집, 생선집, 쇼핑몰 등 곳곳에는 유모차를 밀고 힘겹게 걸어 다녔던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파씨 거리에 위치한 라 그랑드 에피세리 드 파리에 들어가서 다음날 여행 가는 곳에서 만나는 지인에게 줄 소금, 식초, 과자 등의 선물을 샀다. 오랜만에 반짝 반짝이는 센 강을 보고 있으니 눈이 부셨다. 입구에는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규모에 놀라고, 많은 인파에 또 한 번 놀랬다. 겨우 회복했는데 다시 아플까 봐 마스크를 단단히 코에 눌렀다. 먼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도록. 크게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서 진행하고 있었다.
첫째, 인문과학, 자연, 미술, 과학, 실용서 섹션인 '세계을 상상하다(Imager le monde)'
둘째, 소설, 에세이 등 섹션인 '세상에 대해 말하다(Raconter le monde)'
셋째, 청소년, 만화, 동화 등 섹션인 '세상에 살아가다(Habiter le monde)'
이렇게 크게 세 개의 테마로 나눠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각 섹션과 관련해서는 문학 카페(Café littéraire)라는 이름을 붙여서 문학가들과 일반 시민들과 자유로운 담화 형식의 세미나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로 빽빽하게 다 들어차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세미나 부스 벽면에는 금, 토, 일 시간대별로 세미나 주제 및 시간표가 빽빽하게 적혀있었는데, 나도 듣고 싶은 주제가 많았다. 이미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략 300여 개의 출판사가 참여했다. 각 부스마다 출판사들의 자신들이 출간한 책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3일 동안 저자와의 만남도 시간대별로 있었다. 나는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몇몇 유명한 사람들 빼고는, 프랑스 수많은 저자들에 잘 모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프랑스인 작가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 픽업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오전에 조금만 더 일찍 나설걸... 그리고 주말에는 여행을 가기 때문에 다시 올 수 없었다. 일정이 없었다면 토, 일 다시 왔을 텐데...
올해 '축제'라는 단어를 새롭게 첨가한 것처럼 이곳은 말 그대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책으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한편에는 인도 문학에 대한 담론과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매해 해외 국가를 선정해서 그 나라 문학에 대해 소개하는데 올해는 인도였다. 또 다른 한편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세미나가 펼쳐지고 있었다. Café Imager 에서는 오후 2시 프로그램으로 '이건 내 성별이 아니야(C'est pas mon genre)'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제목 아래에는 '무엇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합니까? 소녀가 될 것인가, 소년이 될 것인가?'라고 적혀있었다. 청소년들의 자아 정체성, 성별, 성에 관한 주제였다. 내부를 살펴보니, 13세~15세 정도로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단체로 선생님과 함께 온 듯 보였다. 무지개 마스크를 한 학생, 무지개 문신을 한 학생, 무지개 가방을 들고 있는 학생, 빨간 머리 학생 등 중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대담해 보였다. 한국의 중고등학생들과 비교하면 이곳 중고등학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차림 및 패션이 상당히 과감한 편이다. 몇몇 아이들은 하품하며 지루해했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평소 관심이 많은 학생은 매우 집중해서 세미나를 듣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카페테리아에서 산 샌드위치 먹으면서 깔깔대며 웃는 학생들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젊음, 청춘, 책, 독서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마구 돌아다녔다. 나는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는 종종 읽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좀 더 많이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 치거나 공부한다고, 대학생때는 친구들과 노느라, 직장때는 일에 치여서 책을 많이 못읽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핑계다.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몰랐기 때문이다. 책은 시간 나서 읽는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도 재미있으면 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독서 인생이 시작된 것은 프랑스 살이가 시작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시간이 갈수록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마다 책은 내게 크나큰 위로를 안겨주었고, 내 마음의 안식처였다. 책을 통해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위로를 받고, 즐거움도 얻었다. 내게 있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친구와도 같다.
이번 파리 도서 축제를 통해, 프랑스인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독자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면서 독자들과 자유롭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에 그림을 직접 그려주는 작가도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라디오 프랑스 방송국에서 나와서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하며, 개성 넘치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거침없이 나누는 이곳이 진정한 자유국가가 아닌가 싶었다. 과거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문인들을 학살하고 숙청시켰던 과거가 있다. 지금도 중국은 페이스북과 같은 서방 SNS를 국가가 감시하고 차단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국가다. 이곳에서 가깝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중국 상하이로 이주했는데, 와츠앱으로 갑자기 한동안 연락이 끊겼고, 한참 후 그녀는 위챗으로 여기선 와츠앱이 잘 안된다고 했다. 국가가 외부 세계와 차단하려 들고, 검열하는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없는 편인 중국이다. 반면 이곳 프랑스는 자유를 외치는 국가답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사상을 나누고, 의견을 말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 아래, 구름이 살짝 걸린 에펠탑을 바라본다. 그 앞으로 초록색 끝없는 잔디밭과 일렬로 가지런히 늘어선 쭉 뻗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자유로운 국가에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 한번 느끼면서 파란색, 초록색, 분홍색으로 뒤범벅된 파리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