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ouleur en Fugue 전시회
루이뷔통 재단에서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됐다. 아르노 회장으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에는 전시회에 나를 초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눈에 띄는 글자 strictement personnelle이 묘하게 다가왔다. 직역하면 철저하게 개인적인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한마디로 VIP 멤버들만 초대한다는 그런 의미였다. 본격적인 전시는 5월 4일부터 시작하는데, 하루 전날 회원들만 초대해서 편안하게 전시를 미리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었다. 5월 3일, 마침 방학이라 우진이는 집에 있어서 나와 함께 둘이 가기로 했다. 작년 9월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이 오픈할 때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연간 회원권에도 종류가 있는데, 아이가 있어서 가족 회원권을 끊었다. 가까워서 아이와 자주 갈 생각이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연간 회원권에 비하면,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다. 가족 회원권은 연간 40만 원 정도 하는데 사기업 재단이다 보니 국립 미술관보다는 비싸다. 그래도 좋았다. 코로나도 여전히 신경 쓰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 가까이, 관광객 많이 없는 집 근처 동네에서 아이와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
특별 초대권이라 왠지 기분이 좋았다. 연간 회원권을 끊은 회원들은 다들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회원권 종류가 다양한데, 많이 비싼 회원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미술 애호가들일까? 예술 관련 종사자들일까? 대체 어떤 사람들이 오늘 올지 궁금했다. 나는 이날 아이와 둘이 같이 가기로 했다. 원래 신랑도 무척 가고 싶어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갔다. 초대장을 들고 아이와 함께 볼로뉴 숲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평소 방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명품백도 꺼내 들었다. 파리에서 명품백 함부로 들고 다녔다간 소매치기당하기 쉬워서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아이와 나는 옷차림에 나름 신경을 써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5월 4일부터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기 하루 전, 특별 초대받은 사람들만 오늘 여기 이곳에 모였다. 미술관은 평소와 달리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연스레 됐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왔나 살펴보니, 주로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많았다. 주로 할머니분들이 많았고, 할머니들이 친구분들과 함께 왔다. 할머니들이 멤버십을 끊어서 미술을 관람하러 오시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들의 옷차림새를 유심히 살펴봤다. 곱게 우아하게 차려입은 프랑스 할머니들. 편한 신발을 신으신 할머니도 계셨고, 구두를 신은 할머니도 계셨다. 주로 액세서리는 대부분 하고 있었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등등... 액세서리도 어떤 것을 주로 착용했는지 살펴봤다. 골드, 실버가 많았다. 이 외, 미술 관련 종사자 또는 미술 애호가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젊은 사람들이었다. 미술관 관계자들도 몇몇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전시실을 확인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아이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더 자세히 그림을 살펴보고 분위기를 관찰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추상적인 미술이 재미가 없는지 자꾸 나가자고 했다. 그래, 너한테는 재미없을 수 있겠다. 빨리 나가서 개미를 관찰하고 싶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아이와 함께 온 엄마를 딱 한 명 봤다. 방학이라 같이 왔나 보다.
5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해놨다. 설치 미술이자 현대 미술이었다. 이번 전시는 5명의 각기 다른 배경과 세대를 가진 국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추상화된 어휘를 통해 회화 매체의 전통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보여줬다. 그림은 네모난 화판이 아닌 고정된 캔버스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바닥, 벽, 천장을 가로질러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켜 새로운 자유를 표현했다. 색의 확장에 대한 변형, 또한 이번 작품들은 건축한 프랭크 게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즉, 그림과 공간 또는 건축과의 긴밀한 관계를 관람객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작가는 Megan Rooney(1985년 남아프리카 태생, 현재 런던에서 살며 작업 중), Sam Gillam(1933년 미국 태생, 현재 워싱턴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 Steven Parrino(1958-2005, 뉴욕), Niele Toroni(1937년 스위스 태생, 파리에서 살며 작업 중), Katharina Griss(1961년 독일 태생, 현재 독일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작업 중)이다.
천을 마구 구겨놓고 은색 테이프로 꽁꽁 싸맸다. 미술관 바닥 한가운데 이런 것을 여러 개 놔뒀다. 그렇고는 예술이다라며 사람들이 심오한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다. 다 유명한 사람들이고, 작품에 의미가 있을 테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만, 나의 솔직한 감상은 이것도 예술인가 싶었다. 마구 페인팅한 것이 대단한 작품이고, 테이프로 칭칭 감은 것이 심오한 작품이며, 하얀 백지에 네모를 몇 개 그려놓고 이것이 미술이다. 이렇게 한다면 나도 하겠다. 우리 우진이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미술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다. 갤러리 한 공간 전체를 각종 다양한 색깔로 마구 칠한 작품도 있었다. 벽면 및 바닥, 심지어 천장에도 모두 색깔을 흩뿌려놨다. 밟아도 되는지 몰라서 머뭇대다,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길래 나도 살금살금 지나갔다. 어렵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냥 본다. 하염없이 그냥 본다. 어쩌면 이런 난해하고 심플하면서도 추상적인 미술이 우리 삶과 맞닿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삶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때론 난해하고, 때론 심플하며, 때론 추상적이고, 때론 피식 웃음이 나며, 때론 심각해지는... 그래서 예술과 삶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인가?
현재 이 전시는 5월 4일부터 18일까지 단 2주만 하고, 그 후에 또 다른 전시와 함께 5월 18일부터 8월 29일까지 한다. 이 전시는 2층에서만 하고 있다. 지하부터 0층, 1층 전시실은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전시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문을 꼭 닫아놨다. 지루해하는 아이를 더는 둘 수 없어서 함께 밖으로 나왔다. 볼로뉴 숲 개미를 찾아서 가져온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줬다. 개미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영차영차 개미집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한창 관찰했다. 운 좋게도 호숫가 터줏대감 백조 한 쌍의 새끼 4마리를 만났다. 갓 새끼를 나은 것일까? 호숫가가 아닌 풀밭에 올라와서 닭이 알을 낳듯 그런 자세로 한참을 앉아 있는데 그 옆에 보니 아기 백조 4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했다. 아이한테는 재미없는 미술관보다 이런 개미 보고, 백조 보는 것이 훨씬 재미가 있겠다 싶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