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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n 10. 2022

라 센 뮤지컬

트리오의 멋진 재즈 연주

라 센 뮤지컬(La Seine Musicale)이라는 공연장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17년 6월 30일 조성진 씨가 이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이었다. 그 후, 센 강 위에 떠 있는 새 둥지같이 생긴 이 공연장을 지날 때마다 이곳이 궁금했다. 날이 좋은 4월 말, 우리 가족은 이곳에 차를 타고 갔다. 근처 주차를 해놓고, 우진이와 함께 공연장 주변을 걸어봤다. 공연장 앞은 넓었고, 식사 또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옆에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로댕의 조각상이 있었다. 조각상 이름이 멋지다. 라 데팡스(La Défense, 1879)라는 제목처럼 조각상은 어떤 무엇엔가 저항하는 듯한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의 저항정신이 느껴졌다. 더 올라가니 언덕이 나왔다. 평지 파리만 보다가 이런 언덕에 올라오니 기분이 남달랐다. 저 멀리 에펠탑도 보이고, 세느강도 보였다. 그 옆은 뫼동(Meudon)이란 동네인데 언덕 위에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뷰 하나는 끝내주는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77세의 나이로 어거스트 로댕이 바로 이 뫼동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래서 이 로댕의 작품을 이곳에 설치한 것이었다. 로댕은 뫼동에서 말년에 작품을 계속 이어갔고, 1879년 라 데팡스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로댕의 기운을 느껴보며 이 주변을 걸었다. 


(좌) 라 데팡스라는 제목의 조각상, 로댕 작품 (중) 작품 설명. 로댕은 뫼동에서 인생을 마지막을 보냈다. (우) 높이 올라오니 뒤로 센 강과 동네가 보인다 by 모니카


한 달 정도 후, 라 센 뮤지컬에 가보고 싶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실내를 구경하고 싶었다. 날이 좋은 6월 7일, 마침 공연이 있었다. 매달 첫 번째 화요일마다 무료 공연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알았다. 1년 동안의 프로그램이 쫙 나와있었다. 안 그래도 공연을 알아보던 차였는데 가봐야겠다 싶었다. 물론 이 날도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생리통이 심한 편이다. 하필 겹쳐서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이 공연은 한 달에 한번 있는 데다, 평일 낮이라는 것을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 내어 갔다. 주말에는 아이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고, 평일 저녁에는 아이가 있어서 힘들기 때문에, 평일 낮에 음악회가 있다는 것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또한, 가는 길이 편하면 고민을 덜했겠지만,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트램을 갈아타야 이곳에 갈 수 있었다. 어디든지 교통이 편리한 것이 최고인 것 같다. 아무래도 라 센 뮤지컬은 외곽에 있다 보니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트램이란 것도 처음 타봤다. 트램을 타니 밖이 보이며, 마치 시골길을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안전에 늘 신경을 쓰는지라 트램을 타면서도 긴장을 했다.  


목적지 역에 내려서 걸어가는데 공익 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가 손자를 안으면서 "그래, 내 손자는 트랜스야" 친구끼리 안으면서 "그래, 내 룸메이트는 레즈비언이야"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있다. '편협함에 직면하자,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광고는 프랑스 공중보건 공익 광고다. 할머니도 친구도 서로 웃으면서 상대를 안아주고 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을, 우리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이렇게 국가가 나서고 있다. 물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고, 이에 거부감을 갖는 종교인들도 분명 있다. 나는 동성애 이슈를 두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의 차이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에 관한 나의 의견을 굳이 말하라고 하면 나는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너는 다르니까 배제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그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광고는 비단 동성애 이슈를 다루는 것에 확장해서 국가 전체가 인종, 국적, 종교 등으로 확대되어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분위기를 조금은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좌) 센 강 위 라 센 뮤지컬 (중) 벽에 건축가 및 건축 년도가 새겨져 있다 (우) 트램에 있는 공익 광고가 인상적이다 by 모니카


막상 가보니 공연장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였다. 야외 공연이었다. 실내를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주로 음악 관련 공연은 저녁에 많이 하는 편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나는 저녁 연주회를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미술관, 박물관은 낮에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공연 및 음악회는 저녁이 많다. 12시 반 시작인데 20분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 및 중장년층들이 많았다. 간혹 젊은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 이유는 친정 엄마가 아코디언을 하셔서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코디언 연주자 바로 앞에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봤다. 라 센 뮤지컬 건축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볼로뉴 빌랑쿠르의 Ile Seguin이라는 섬에 건설된 라 센 뮤지컬. 2017년 4월에 개장한 이곳은 독특한 복합 단지이다. 콘서트, 전시회, 산책로, 레스토랑, 상점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Olivier Haber 총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모든 청중에게 열려 있고, 야심 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 건축물은 시게루 반과 장 드 가스틴이 설계했다. 1000 m2 이상의 태양광 패널로 장식된 대형 돛이 나무 그물망 주위를 회전하며 태양의 경로를 따른다. 


(좌) 뫼동 (우)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라 센 뮤지컬 공연장. 우주선 같기도 하고, 새빛둥둥섬 같기도 하다 by 모니카


시게루 반(Shigeru Ban), 일본인 건축가이며,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1957년 생인 그는 목재 또는 종이를 소재로 하여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활용 가능한 종이 카드보드지를 이용해서 건축물을 만들기도 한다. 그는 혁신적인 재료 사용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의 주요 건축물로는 메츠 퐁피두센터, 대만 페이퍼 돔, 고베 성당, 뉴질랜드 성당 등이 있다. 뉴질랜드에 있는 이 성당은 카드보드로 만들었다. 대만 페이퍼 돔은 말 그대로 방수 종이로 만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페이퍼 돔을 직접 보고 싶다. 종이로, 카드보드로 건축물을 만든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종이로, 보드지로 집을 만들고, 비행기를 만든다. 나는 한창 재활용 재품을 모아 두고 이것으로 각종 만들기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계란판을 한가득 쌓아두고, 시리얼 및 과자 포장지를 모으고, 병뚜껑,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 요거트 통, 생수병 등 온갖 것을 다 모아서 함께 오리고 붙이고 세우고 물감으로 덧칠했다. 심지어 계란판이 풀로는 단단하게 잘 붙지 않자 실로 옷을 꿰매듯 계란판을 다 꿰매서 이어 붙이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환경을 생각하고, 경제를 생각하자는 의도에서였는데, 시게루 반이라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종이와 카드 보드지로 건축물을 만들고, 프리츠커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아이들이 하는 재활용품으로 만들기 하는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자칫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만한 무수한 재활용품이 멋진 작품으로 거듭나고, 재 탄생되는 순간은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이다. 쉽게 생각했던 놀이가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고, 창조성을 개발하는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휴지심으로 만들기를 하는 것이나 시게루 반이 종이로 집을 짓는 것이 뭐가 큰 차이가 있는가? 단지 차이라면 일반 아이들이 한 것과 수많은 상을 받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했다는 차이인가?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이는 바로 어릴 적 이러한 만들기를 통한 놀이 활동에서부터 작게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게루 반도 어릴 적에는 종이를 비롯한 각종 재료를 가지고 이리저리 오리고 붙이고 잇기를 하는 등 장난스럽게 건축 놀이를 했을 것이다. 그런 놀이가 상상력과 창조력을 불러일으켰고 훗날 세계적인 건축가가 됐다. 지난 6월 6일 프랑스도 휴일이라서 우진이와 함께 루브르에 갔다. 키즈 아뜰리에 공간인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우진이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건축에 관심을 보였다. 모형을 가지고 피라미드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루이뷔통 재단 건축물 모양을 따라 만들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건축물을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아이의 모습을 관찰했다. 건축가도 참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고, 멋진 공간을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쉴 수 있는 그런 예술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은 참 멋진 것 같다. 


12시 30분, 공연이 시작됐다. Noé Clerc Trio라는 이름을 가진 트리오 밴드는 각자 자신의 악기를 손에 잡았다. 총 8곡 정도 한 것 같다. 한국은 아코디언 하면 주로 피아노 건반이다. 하지만 이곳 프랑스는 건반보다는 버튼이 주를 이룬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난다. 피아노 건반보다 버튼의 개수가 더 많으며 더 어렵다고 들었다. 아코디어니스트 이름이 바로 Noe Clerc이었다. 25세 청년으로 조성진 씨가 졸업한 파리 고등음악원을 졸업했다. 전공은 재즈와 작곡이었다. 아코디언 학과가 따로 있기보다는 주로 피아노, 재즈, 작곡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코디언으로 전향하는 것 같다. 한국에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반도네온이라는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의 매력에 빠져서 반도네오니스트로 활동하는 고상지라는 연주자가 있다. 여기도 꼭 음악 전공이 아니라도 아코디언 악기 매력에 빠져서 배워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코디언의 음색은 파리와 잘 어울리는 편이긴 하다. 파리 거리를 걷고 있으면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린다. 영화에도 아코디언은 주로 등장하는데, 파리와 어쨌든 잘 어울리는 그런 음색을 가진 악기다. 친정 엄마는 나이 들어서 어떻게 아코디언의 매력에 빠지신 걸까. 요즘 엄마는 피아노 외 주로 아코디언과 시간을 많이 보내신다. 아코디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가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고, 대학교에서 아코디언 강의를 하시기도 하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신다. 엄마도 피아노를 전공하신 뒤, 아코디언을 뒤늦게 배워서 활동하게 된 케이스이다. 엄마의 열정과 체력이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성향이 다르게 때문에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좌) 센 강과 푸른 하늘 (중) 트리오 재즈 연주 (우) 트램에 있는 뫼동 소개 포스터 by 모니카


드럼을 치는 연주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음악에 정말 심취한 듯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그에게 드럼이란 가장 행복을 주는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그런 황홀하고 행복한 표정을 봤다.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드럼과 하나 된 그런 사람이었다. 세 명은 40분 정도 연주하는 내내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웃기도 하며, 미소 짓는 등 아주 깊이 교감하고 있었다. 음악으로 서로가 하나 되고, 소통하고 있었다. 세명은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음악으로 하나 된 그들이 멋져 보였다. 40분 내내 세 명의 연주자의 표정, 눈빛을 계속 봤는데 진정으로 삶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고, 자신의 음악 인생을 사랑하는 듯 보였다. 다음날 8일에 고티에 카퓌송의 첼로 리허설과 연주를 봤는데 연주자들은 조금은 딱딱하거나 때론 심각한 표정들이 있었다. 리허설 때 카퓌송이 학생들이 서로 눈을 쳐다보지 않자, '서로 눈을 쳐다봐. 호흡을 맞춰"라며 하모니를 강조했다. 그 전 주에는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현악 삼중주 연주를 들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서로 자신의 악기 연주에 심취했고, 간혹 서로 쳐다보며 호흡을 맞췄다.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은 피나는 연습 끝에 무대 위에서 조금은 경직된 표정들이 있는 반면, 이번 트리오의 재즈 공연은 자유 그 자체였다. 자신의 표정을 숨기지 않고,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표정을 마음껏 지어 보였다. 몸짓과 손짓도 자유로웠고, 서로 간의 눈 맞춤도 너무 자연스러웠다. 진짜 즐거워보였고,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런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색함도 없고, 눈치보는 것도 없이 음악을 연주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부러웠다. 연주가 끝나고, 라 센 뮤지컬을 조금 돌아봤다. 공연자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공연장도 보고 싶다. 다시 트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좌, 중) 매달 첫 번째 화요일마다 하는 공연 프로그램 (우) 입구에 커다란 엄지 손가락 조각상이 있다 by 모니카



트리오 연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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