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아기 수첩 3개를 들고 소아과 가기..
해외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병원이다. 아프면 답도 없다. 하물며, 아이와 함께하는 해외 살이란?
그야말로 긴장 속의 나날들이다. 나는 아이 키우는 것이 처음인 초보 엄마인데 내 나라에서 아기를 키워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다가 예상치 못한 병치레가 생기면 어쩔 줄 몰라했을 텐데, 이건 해외 중에서도 가장 적응하기 힘들다는 도시 중의 하나인 파리에 돌쟁이를 데리고 왔으니 긴장의 나날들이 끊임없었다. 파리가 외국인들에게 적응하기 힘든 이유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영어 사용자 비율이 낮은 편이고,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국민들이라 타민족에게 우월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프랑스어를 꿋꿋이 고집하며, 인종차별도 심한 편이다. 또한, 이민자 및 난민들이 많아서 치안이 썩 좋지 않다.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시청에서 Cartnet de Santé라는 아기 수첩이란 것을 발급받은 일이다. 소아과에 가면 의사가 이 아기 수첩을 달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기 건강 수첩이다. 필수 접종 내역 및 진료 기록이 담겨 있는 수첩인데, 나는 3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출산하고, 홍콩에서 1년 정도 키우다가 파리로 왔기 때문에 3개 언어로 쓰인 아기 수첩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접종을 챙겨 맞히느라 힘들었던 나날들이 담긴 눈물 젖은 이 수첩은 집안의 가보로 가져갈 생각이다. 이 수첩 3개 펼쳐놓고 있으면 그때 일들이 또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뭔가 내가 대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아기를 지켰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파리에 와서 한국과 홍콩 아기 수첩을 챙겨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소아과에 찾아갔다. 빨간색 큰 대문이 인상적인 소아과였다. 프랑스 의료 시스템은 민영화는 아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이 Carte Vitale이라는 건강 보험에 가입해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 가족의 경우는 회사에서 별도의 사보험에 가입시켜줘서 따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는 모든 것이 예약제인 나라이다. 식당, 미용실, 병원 등 모든 것이 예약제라 예약 없이는 방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랑데부(Rendez-vous, 예약)라는 단어를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자주 듣는다. 그럼 어떻게 예약을 하는가? 온라인 예약을 주로 하는데, (전화도 잘 안 받을뿐더러, 간호사도 없이 의사가 접수, 진료, 계산까지 하는 개인 병원이 대부분이다.) Doctolib 또는 Mondocteur라는 예약 사이트에 접속해서 온라인 예약을 하고 병원에 가는 방식이다. 거의 모든 의사가 가입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이 이 온라인 예약 사이트를 통해 진료 예약을 하기 때문에 예약 시스템은 편리하게 잘 되어 있다.
종합병원이라 일컫는 큰 병원을 L'hôpital이라고 하고, 개인 병원은 Cabinet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개인 병원이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이든 상점이든 간판을 눈에 띄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고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것에 반해 프랑스는 간판이라는 것이 잘 없다. 1853-1870년, 파리는 나폴레옹의 지시 하에 건축가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대대적으로 개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파리 시 전체를 균형감 있게 매우고 있는 오스만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6~7층으로 높이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청동 및 철제로 된 발코니, 청회색 아연 지붕, 베이지 색의 외관으로 이뤄진 파리 건축물을 오스만 스타일 양식이라 일컫는다. 이러듯, 통일감 있는 파리시 건축물은 관광객들에게는 크나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이곳이 파리인지 아닌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건물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매우 중요시하는 파리에는 간판도 함부로 달 수가 없다. 외관의 통일감을 해치기 때문이다. 병원을 잘 찾을 수 없어도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이 독특한 민족은 편리함, 효율성보다는 익숙함,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피가 흐르는 민족이라 볼 수 있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다가 그 주소 즈음에 다다랐을 때, 눈을 크게 뜨고 건물 입구에 조그마하게 쓰인 병원 이름을 확인해야 한다. 누가 누가 더 못 찼게 하는 경쟁이라도 하듯 검은 바탕 또는 갈색 바탕에 조그맣게 진료 과목, 의사명, 전화번호를 써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개인 병원에 병원 이름 하나 없다. 의사 이름이 곧 병원명이다. 개인병원 중에 병원 이름이 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그렇게 겨우 알아내어 찾아간 소아과는 오스만 스타일의 집이었다. '이곳은 병원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병원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일반 가정집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응접실이 나온다. 가정집 거실이다. 거실에 소파를 몇 개 가져다 놓았다. 병원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였다. 잡지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병원 관련 책자들도 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의사가 직접 나와서 진료실로 들어오란다. 좁은 골목길 같은 복도를 지나니 방이 하나 나온다. 간호사도 없이 의사 혼자서 응대하고 진료하고 멀티플레이어다. 할머니 의사 선생님은 다행히도 친절한 편이었다. 영어가 가능하셔서 영어로 진료를 보았다. 방안에는 쾌쾌한 냄새가 났으며 아늑한 가정집 같았다. 병원이라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기 몸무게를 잴 테니 옷을 벗기란다. 체중계는 우리나라 80~90년대 목욕탕에서 볼 듯한 바늘 저울이다. 삐걱대는 키재기 도구도 한국서는 상상도 못 할 물건이다. 여기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도시 파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순간들이다. 간단한 질문 및 검사를 하고는 아기 수첩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병원비는 35유로 나왔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 나는데 보통 35~45유로이다. 이는 건강 보험이 아직 적용이 안된 금액이다.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면 사보험으로 전액 환급받을 수 있다.)
나는 이곳만 이런 줄 알았는데 그 후 3년간 이곳저곳 다녀본 결과, 대부분의 개인 병원이 이렇게 오스만 스타일 가정집에 차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가 진료를 한다 뿐이지 영판 일반 가정집이다. 아마도 의사는 진료 방에서 진료를 보고, 다른 방은 거주하는 것 같았다. 의사가 혼자서 접수, 응대, 진료, 수납까지 다 하였다. 1인 4 역이다. (어째서 간호사 1명도 안 두는 것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진료를 다 보고 나서 의사가 잔돈이 없으니 돈을 딱 맞춰서 달라고 말할 때, 내가 지갑 속에서 찰랑찰랑 거리며 동전을 뒤적거리는 그 몇 초간의 정적이 아직까지도 나는 적응이 안된다. 습관이 안된 나는 진료 봐준 의사에게 돈을 줄 때가 가장 어색하다. 근데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지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그냥 의사도 일하고 자신이 일한 대가를 돈 받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의사라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근엄하게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의사 선생님을 만날 때면 대게 무서운 이미지, 근엄한 이미지, (물론 내가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치과 의사 선생님처럼 매우 자상하고 동네 아저씨 같은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들이었던 것 같다.
그간 3년 반 동안 소아과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른은 약국에서 산 일반 감기약을 먹고 며칠 푹 쉬면 되지만 아기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말도 전혀 안 통하는 이 낯선 땅에서 엄마로서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거나, 기침이 오래간다거나, 콧물이 계속 흐르거나, 몸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설사를 계속하면 지체 없이 온라인 예약을 한 뒤 소아과에 갔다. 예약을 해도 당일 바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안 좋다 싶으면 일단 예약부터 빨리 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