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트 갸흐드히(Halte Garderie)
이 야호! 2월부터 알트 갸흐드히(Halte Garderie)에 다니게 되었다. (줄여서 알트라고 하겠다.)
작년 시청에 가서 아이를 크레슈에 보내고 싶다는 신청서를 제출할 때, 직원이 하루에 3~4시간 정도 일주일에 2~3번 정도 다닐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라도 자리가 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었다. 크레슈 경쟁률이 너무 세서 기본 1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이곳을 보통 많이들 거쳐간다고 하였다. 나는 작년 가을에 시청을 다녀온 후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크레슈 자리 났는지에 대해 전화 문의를 하였다. 들은 바에 의하며 간절하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시청에서도 조금 더 신경 써준다는 얘기가 있어서 나도 의지를 불태웠다. 새해도 맞이하여 시청에 직접 찾아갔다. 언어도 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서 아무 도움 없이 홀로 아이 키우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호소하였더니 시청 산하 공립 알트에 현재 한 자리가 있는데 하겠냐고 묻는 것이다. 만약 전화로 하였다면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고, 자리도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두발로 직접 뛰는 것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손짓 발짓해가며, 말도 안 되는 동양인이 유모차를 끌고 이 추운 겨울에 시청에 왔다는 이 광경 자체가 시청 직원의 마음을 울렸으리라... (때마침 유모차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이런 분위기를 한 층 더 고조시켜 주었다.) 4개월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드디어 왔다. 크레슈는 아니지만, 알트라도 어디냐며 얼른 하겠다고 말했다. 알트 주소 및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내게 건네며 지금 내가 알트 원장에게 전화할 테니 10분 정도 후에 나보고 전화를 하란다. 그렇겠다고 말하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구름에 붕 뜬 발걸음으로 16구 시청을 나왔다. 이제부터 문제였다. 전화를 해도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한단 말이더냐... 그래도 직원이 전화를 하라고 했으니 지시를 따라야 했다. 주요 단어들을 구글 번역 앱에서 찾아 메모해 놓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였는데 원장은 영어도 가능하다며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면담 날짜 및 시간을 정하는 간단한 통화였다.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데 마음 한편에서는 너무 쉽게 일이 풀리는 이 상황에 불안감도 살짝 들었다.
드디어 면담 날이 다가왔다. 제일 예쁜 옷으로 나와 아이를 꾸미고, 단정한 차림으로 알트에 찾아갔다. 버스로 20분, 걸어서 30분이 소요되는 파리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Porte de Saint Cloud라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직 대중교통보다는 걷는 게 차라리 몸도 마음도 편했다. 초행길이라 1시간 전에 집을 나섰고, 정말 1시간 정도 걸어서 드디어 우리 아이가 다니게 될 알트를 찾았다. Halte-garderie Municipale Claude Terrasse라고 적힌 작은 팻말을 발견했다. "엥? 이게 탁아소 맞아? 그냥 지나가면 이게 어린이들이 지내는 탁아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름했다. 눈 돌아가게 휘황찬란하게 꾸며놓은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 홍콩, 한국을 보다가 이곳 파리의 탁아소를 보니 아직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7~8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탁아소에 PMI라는 정부 보건소도 함께 있다. 우선 벨을 누르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잘 열리지 않는 철문을 겨우 밀고 들어가서는 유모차를 세우고 아이를 안고 들어갔다. 원장은 조그만 얼굴에 오목조목 귀여운 생김새의 키가 큰 여성이었다. 시크하고 도도한 파리지앵의 이미지와는 다른 밝은 미소의 소유자였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데 지금껏 이런 대우는 처음 받아본 나로서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친절한 게 당연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친절한 게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놀라운 변화...
나에게 기본 인적 사항에 대해 물어본 뒤, 일주일에 2번, 하루에 3시간 반을 맡길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좋다고 했고, 필요한 준비물에 대해 숙지를 한 뒤 감사 인사와 함께 돌아갔다. 드디어 나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구나! 하며 뛸 듯이 기뻤다. 아이를 보내고 나는 그때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가볼지 기대하며 총총 집으로 돌아갔다.
2018년 2월, 이때부터 나는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했다. 20번 버스를 타고 6 정거장 정도 지나면 알트에 도착하였다. 첫 1주일은 부모가 함께 했다. 일주일의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아이 혼자 지내는데 아이는 워낙 사교적인 성향이라 금세 적응을 하였다. 보육 교사 4명이 25명 정도의 아이를 보았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고, 가는 요일도 정해져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화, 목 오후반이었다. 그냥 아이들이 잘 노는 것을 봐주는 정도였다. 함께 모래 놀이도 하고 책 읽어주는 시간도 있긴 했지만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기저귀도 갈아주고, 중간에 간식 시간도 있었다. 3시간 동안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잘 관찰하고, 함께 가볍게 놀아주는 정도 였지만 나는 그렇게 아이를 맡기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아이를 기다렸다. 3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어디를 가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왔다 갔다만 해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아이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어디 가지를 못하고 근처 카페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아이는 알트라는 곳을 잘 적응하며 6개월 정도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