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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l 17. 2022

시네마 축제

헤어질 결심

축제의 끝은 어디인가? 파리는 여전히 날마다 축제다. 여기서도 축제, 저기서도 축제다. 아마도 365일 축제일 것 같다. 봄은 봄이라 축제, 여름은 여름이라 축제, 가을은 가을이라 축제, 겨울은 겨울이라 축제. 축제를 사랑하는 그런 민족이다. 7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시네마 축제가 진행됐다. 4일 동안 모든 영화관에서 모든 영화를 단 4유로에 관람할 수 있다. 영화 마니아에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4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영화를 관람할 것 같다. 대게 영화 티켓 가격은 연령에 따라, 영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번에 내가 본 헤어질 결심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원래 가격은 13.10유로다. 이것을 4유로에 볼 수 있었으니 70% 할인가로 본 셈이다.


프랑스 영화제는 1985년부터 매년 6월이 되면 열리는 영화 홍보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1992년까지는 단 하루만 운영했다.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3일간 개최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토요일부터 금요일까지 7일간 지속되다가 2012년에는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4일이라는 형식으로 돌아왔다. 조금씩 개최 기간이 변경됐음을 알 수 있다. 영화제는 1985년 6월 14일 프랑스 영화 연맹(FNCF)의 주도로 문화부 및 모든 영화계 종사자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시작됐다. 2004년부터 BNP Paribas는 운영 파트너였으며, 은행은 시네마 축제(Fête du Cinéma)를 운영하고 축제 후 일정 기간 동안 우대 요금으로 영화 바우처를 배포함으로써 영화제를 확장했다. 2013년에 FNCF는 영화 축제 티켓에 대해 3.50유로 할인을 제공함으로써 공식을 단순화하고 더 많은 관중을 유치하려고 했다. 2020년에는 처음으로 영화제가 취소됐다.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3개월 동안 폐쇄된 영화관이 엄격한 방역 지침에 따라 6월 22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FNCF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건으로 인해 당초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로 예정됐던 시네마 축제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5일, 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라데팡스에 있는 영화관, UGC에 가서 <헤어질 결심>을 보려고 했다. 우진이 담임 선생님 선물을 사야 했기 때문에 선물을 산 뒤, 남은 시간에 영화를 보려고 했다. 7월 7일이 유치원 마지막 날이라서 담임 선생님께 그간 1년 동안 감사했다는 성의를 표하는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 집에서 가까운 라데팡스에 있는 쇼핑몰인 les quatre temps에 갔다. 파리 시내 갤러리 라파예트 또는 쁘랭땅에 가고 싶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가까운 곳에 갔다. 선물로 디퓨저를 샀다. 쇼핑을 하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를 보지 못하고 바로 돌아왔다. 다음날 6일, 다시 라데팡스에 있는 UGC 영화관에 가서 영화 티켓을 구매했다. 우진이를 아침에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라데팡스로 걸어갔다. 라데팡스는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수많은 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융회사가 많고 그 외 큰 규모의 회사가 많다.


현대 고층 건물이 밀집한 라데팡스는 더욱더 문화예술 및 자연을 시민들 곁에 두려고 노력한다 (출처: 모니카 박)


아침 출근길 풍경을 보고 있으니, 결혼 전 직장 다닐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피스룩으로 바쁜 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하던 그때 그 시절. 프랑스인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들 회사 출근하기 위해 가방을 들고, 노트북을 들고, 다들 어디론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걷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빨리 걷기도 하고.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바빠 보였다. 라데팡스는 고층 건물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공원과 숲이 많은 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현대 고층 건물만 있으면 자칫 무미건조하고 삭막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과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프랑스답게 더욱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을 라데팡스 곳곳에 심어놓았다. 예를 들어, 곳곳에 조각상 및 조각예술 작품을 설치해놨다. 거리 전시도 하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도록 각종 이벤트도 열고 있다. 물이 흐르는 분수대는 미적 감각을 놓치지 않고,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벤트 및 행사도 늘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일하다가 점심 시간에 나와서 잠깐이라도 자연환경 및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 


예술작품도 많고, 직장인들의 휴식 공간도 군데군데 잘 만들어놓았다. 분수대도 예술적으로 설치 (출처: 모니카 박)
치맥이라 적흰 푸드 트럭 발견. 한국 음식이 직장인들에 인기있나보다 (출처: 모니카 박)


10시 15분. 사람이 별로 없다. 창구로 가서 3초 정도 망설이다가 “디시전 투 리브(Decision to leave) 한 장요”라고 말하니, 판매원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다시 말해도 못 알아듣길래, 순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말해야 하나 살짝 고민했다. 프랑스어로 데씨지옹 드 파흐띠흐... 라고 조용히 소심하게 말하니, 또 못 알아듣는가 싶더니, 잠시 후, 데씨지옹이라는 단어를 들었는지 잠시 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데씨지옹 투 리브?" 그렇자 옳거니 싶어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혼용했다. 알파벳은 같지만 발음이 영어와 프랑스가 조금 다르다 보니 자주 생기는 해프닝이다. 이전에 영화 기생충의 경우, parasite를 영어로 발음하면 패러사이트, 프랑스어로 하면 파하씨트가 되는데, 단어는 똑같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이것을 현지 발음인 파하씨트로 늘 발음했다. 해외 개봉을 염두한 영화는 해외에서 사용하는 영화 제목을 영어로 짓는데, 프랑스에서는 영어로 발음해야 하는지 프랑스어로 발음해야 하는지 순간 고민될 때가 있다. 현지 프랑스인들은 그들이 늘 사용하는 현지 발음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라데팡스 UGC 입구. 헤어질 결심 (모니카 박)


오전 10시 50분 상영하는 것으로 구매했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와 쁘레따멍제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사서 올라갔다. 먹을 것은 9유로 정도 나왔는데, 영화표는 4유로다. 영화를 2개 보고 싶기도 했지만,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아서 1개도 겨우 봤다. 마스크를 꼭꼭 눌러쓰고 영화를 봤다. 마스크 쓴 사람은 나뿐이었다. 총 12명 정도가 영화를 봤다.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 빼고 3명, 그 외는 외국인이었다. 이날이 수요일이라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친구끼리 또는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오기도 했다. 10대로 보이는 여자 아이 2명이 헤어질 결심을 보러 2관에 들어왔다. 그 외는 모두 성인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연령을 조금 낮춰서 기대를 조금 한다고 했는데, 실제 관람 가능 연령을 낮추니 10대들도 보러 왔다.


영화관 복도에 걸려있는 영화 배우 및 김지운 감독 사진 (모니카 박)


해외에서 한국 영화가 개봉하는 찾아보는 편이다. 영화관에서 자막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막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색다른 경험이고 기분이다. 프랑스 영화 또는 영어로 된 영화를 보면 자막을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현지인들은 자막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되기 때문에 부러웠는데, 한국 영화를 보게 되면 정반대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그런 기분을 꼭 느껴보고 싶었다. 프랑스인들은 자막 읽기 바쁜데 나는 자막을 보지 않는 상황...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기분일지 아주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모국어가 세계 제1의 언어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어떤 기분일까. 영화관에서 미국 영화 또는 영어로 된 영화가 많은데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되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세계의 주인이 된 그런 기분일 것 같다. 곽미성 작가의 <다른 삶>에서 '제1세계의 사람들'이라는 목차가 있다. 같은 이방인으로서 책의 대부분이 내용이 많이 공감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언어, 외국어에 대한 부분도 참으로 많이 공감됐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에는 평생 외국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제1세계'에 속하는 서방국가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이 가장 그럴 것이다. 나의 모국어가 전 세계 공용어라는 것은, 비단 전 세계 사람들과 큰 노력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세상의 기분이 내가 사는 세계에 맞추어져 있다는 뜻이고, 그건 곧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세계 중심 언어인 것과 변방의 소수언어인 것과는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런 소수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 프랑스 영화관에서 중심을 가지고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기회이자 진귀한 체험이 된다. 


영화 내용도 한국인과 중국인이 서로 사랑에 빠져드는 내용인데, 언어 소통의 한계로 인해 구글 번역 앱을 자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제 커플이라면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해외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구글 번역 기능 앱은 정말 소중한 존재다. 파리 정착 초기에 구글 번역기가 내 삶의 소중한 안내자였다. 이것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요즘도 구글 번역기는 소중하다. 해외 살이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현대 신문물이다.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 남녀가 언어의 한계로 인해 뜻이 잘 전달되는 듯하면서도 또 안 되는 듯하며... 미묘한 사랑이 감정만큼 언어 소통도 미묘했다. 그런 미묘한 뜻 전달의 한계로 인해 어쩌면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의사소통이 너무 정확하다면 미묘한 감정 전달에 있어 오묘함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 모호하기 때문에, 불확실하기 때문에 어쩌면 더욱 애틋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보일 수 있다. 중간에 중국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때 한국어 자막은 없고, 프랑스어 자막만 나와서 중국어를 모르는 프랑스 사는 한국인들이라면 몇 장면은 이해를 못 하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박해일이라는 배우는 표정이 참 압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빛과 눈매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날까. 살인의 추억을 대학생 때 삼성동 코엑스에서 봤는데, 그때 영화를 본 날, 끝나고 밤에 집에 돌아간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날 밤에도 비가 많이 내렸고, 빨간색 옷인가 우산인가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날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 배우와 박해일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했는데, 그때 두 배우의 표정, 눈빛 연기가 매우 특이하고, 깊고, 탁월했기에 그때 이후로 박해일이란 배우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박해일 씨의 표정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다. 영어 제목을 다시 봤다. Decision to leave. 헤어질 결심이 아닌 떠날 결심이라고도 번역이 가능할 것 같다. 여자 주인공은 떠날 결심으로 바다를 찾고, 그곳에서 세상과 헤어진다. 세상을 떠날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영화가 다 끝나고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들 이름이 하나씩 올라가는데 혼자 끝까지 남아서 마지막 이름까지 다 읽었다. 대게 영화가 끝나면 바로 나오는데, 오늘따라 끝까지 이름을 다 읽어보고 싶었다. 언제 끝나나 싶어서 한참을 스크린 앞에 서서 고개를 높이 들고 화면을 쳐다보는데 이름이 너무 많고 끝이 없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구나 싶었다. 2시간 정도의 영화를 편안하고 시원하게 앉아서 보면 끝이지만,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기획하고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영화라는 장르를 다시 보게 됐다. 영화를 예술의 한 장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알듯했다. 배우들이 뿜어내는 혼신의 연기,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 그 외 분장, 음악, 시설, 특수효과 등등 너무도 많은 요소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탄생하는 영화. 


자막이  이상 올라오지 않자 그제서야 청소를 하는 여성분과 잠깐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고 유유히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바로  관에서는 <탑건>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출구로 안내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영화관 복도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하나씩 보았다. 유명 배우들의 얼굴이 걸려 있었는데, 한국 이름이 보였다. 김지운이라고 적혀있었다. 김지운 감독은 2018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오피시에를 받았다. 프랑스와 남다른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문화예술공로훈장은 1957년 설립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상으로 프랑스 문화예술사 발전에 크나큰 공로가 있는 문화예술인에게 준다. 국내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도 상을 주는데 한국인들 중에서는 백남준, 정명혼, 봉준호, 나윤선 등 많은 한국문화예술인들을 상을 받았다. 미슐랭처럼 3등급으로 나뉘는데 3등급은 슈발리에(Chevalier), 2등급은 오피시에(Officier), 1등급은 코망되르(Commandeur)이다. 


오후 1시 반,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더욱 많이 영화관에 모여들었다. 모두 시네마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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