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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ug 05. 2022

아이와 진짜로 한 달 살기

잊지 못할 2022년 7월 한여름

유치원에 7월 7일을 끝으로 더 이상 가지 않는다. 7월 8일 금요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 달가량을 아이와 함께 붙어 있었다. 사태의 발단은 나의 불찰. 여름 방학 동안 다니는 방학 학교 신청을 깜빡하고 하지 않은 것이다. 5월에 신청 기간이었는데 나는 여름 방학 학교 신청을 이렇게나 빨리 할 줄 몰랐다. 아무튼 나는 그 기간을 놓쳤고, 시청에 찾아가서 사정했지만 진짜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 8월에는 휴가를 많이 떠나서 자리가 있다고 7월 중순 즈음에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감사했다. 그래, 한 달 같이 있어보자. 만 3세 전에도 내가 혼자 끼고 키웠는데 이쯤 못할까 싶다가도 에너지 넘치는 만 6세 남자아이와 한 달을 함께 보낼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라도 좋으면 어디 돌아다니겠다지만 40도 폭염이 와서 어디 자유롭게 나갈 수도 없는 상황. 팬데믹 기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약 반년 동안 아이와 집안에 있었던 경험도 있는데 그깟 한 달 못할까 싶었다. 그렇다가도 금세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다른 아이들은 방학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우리 아이만 친구도 못 만나고 집에서 엄마와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해졌다. 7월이 오기 전,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드디어 한 달 같이 있기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7월 초에는 많이 아픈 바람에 초반 한주는 몸을 많이 사렸다. 매일 보던 친구들 며칠 못 봤다고 답답해하는 아이를 위해 7월 11일에는 오후 5시쯤 방학 학교에서 돌아온 N을 만나서 함께 잠깐 놀았다. 13일에는 아끌라마따시옹 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 누웠다. 곳곳에서 온 단체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유치원 및 초등 저학년들이었다. 그날 오후 늦게 방학 학교 교문 앞에 서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는데 아이 주장에 못 이겨 학교 앞에 가서 서성거렸다. 14일에는 프랑스 대혁명 축제일이라 친구를 못 만나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R네와 함께 놀았다. 15일은 칼레 바닷가에 가서 물놀이하며 놀았다. 16일은 어제 피곤함 때문인지 집에서 푹 쉬었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친구와 함께 작품 감상하며 놀기. 오디토리움 바닥에 앉아서 함께 책 읽기. 출처: 모니카


본격적으로 17일부터 약 2주간 아이와 함께 어떻게 보낼지 프로그램을 짜 봤다. 엄마표 학습을 하기로 했다.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산수, 그림, 음악, 체육...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는 당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순순히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고 나면 꼭 게임 한판을 해야했다. 사실 게임 한판이 아니라 열판도 더 됐다. 결국 꽁꽁 숨겨뒀던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공부 30분 하고, 아이패드로 게임 1시간 했다. 때로는 1시간도 더 됐다. 본인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지 1시간이 넘어가면 슬슬 눈치를 봤다. 그러면 아이가 먼저 "엄마! 공부!" 했다. 공부를 해야 게임할 권리도 정정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근엄한 목소리로 "엄마~ 공부해야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몇 자 글쓰기 해보고는 금색 게임할 시간이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말이 공부지 집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내가 조금 엄하고 단호하게 나가면 되긴 하겠지만 나는 그것은 또 싫었다.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다'는 명제를 늘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 하겠다고 아이와 관계가 나빠지는 것보다는 공부 안 해도 되니 엄마와 애착관계를 잘 형성하고 정서적 유대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7월 18일, 19일은 폭염이었다. 41도까지 올라갔다. 집안에서 꼼짝 못 하고 둘이 대자로 뻗어버렸다. 파리 아파트에는 에어컨이 없다. 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쐬는데 41도가 되다 보니 바람 자체가 뜨거웠다. 문을 닫고 바람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게 더 시원했다. 얼음을 얼려서 만졌다. 얼음을 몸에 발랐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사람들이 몸에 물을 뿌리고 있는 광경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이런 모습을 보다니 그랬다. 한국은 시원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쾌적하고 우아하게 있는데 이곳은 다들 덥다고 물을 몸에 뿌리고 부채를 연신 부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물을 온몸에 뿌리며 좋다고 하고 있으니 살아가는 환경이 이렇게나 무섭다. 더위를 먹었는지 온몸은 축 쳐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둘은 그냥 더위에 순응하며 그렇게 얼음을 안고 하루를 견뎠다.  


우진이 친구들은 다들 며칠씩 방학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정식 명칭인 레저 센터(Centre de Loisirs)라는 곳은 방학만 되면 같은 학교 건물에서 아이들을 맡아서 노는 곳이다. 레저 센터, 레저 교실, 방학 교실 등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곳을 방학 학교라고 부른다. 테마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이에 맞춰 만들기, 그림 그리기, 연극, 단체 게임, 야외 활동, 놀기 등 다양하면서도 재미있게 진행한다. 학습은 거의 없다.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선생님이 책을 종종 책을 읽어주는 것이 전부다. 공부는 하지 않고 주로 예체능 위주로 진행된다. 시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가격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같은 반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환경이 낯설지가 않다. 익숙한 교실과 익숙한 선생님,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정규 과정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대신 여름 방학 때는 야외 활동이 더욱 많고, 주변 다른 유치원 학생들도 온다. 올해는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방학 학교 생활을 한다. 한두 개 유치원이 합쳐진다. 이곳에 보내지 않는 집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따로 서머 캠프에 보내기도 하고, 조부모님이 돌봐주시기도 한다. 조부모님들이 아이들 육아에 많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많이 봤다. 조부모님 댁에 아이만 보내거나,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그래도 여름 방학 2달 내내 휴가를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방학 학교에 약 3주에서 한 달가량 다닌다. 어차피 규정상 한 달 이상은 못 보내게 되어 있다. 


친구네를 불러서 함께 논다. 도시락 싸들고 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피크닉을 한다. 내 사랑 포켓몬 콜렉션 앨범을 보고만 있어도 흐믓한 아이. 출처: 모니카


아빠와 아들의 게임 한판. 아이패드에 내 사랑 포켓몬을 그려본다. 칼레 바닷가에서 모래 파기. 출처: 모니카


친구들은 다들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R은 7월 8일부터 8월 5일까지 방학 학교를 매일 다니고 그 후로 3주간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매일 보내는 이유는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 E는 7월에 8일부터 13일까지 매일 방학 학교 다니고 14일부터 남프랑스로 가족 휴가를 떠난다. 꽤 오랫동안 휴가를 보낸 뒤, 8월 마지막 주 일주일 동안 방학 학교에 다시 매일 온다고 했다. A는 2주 정도 조부모님 댁에 보내고, 2주는 코르시카 섬으로 가족 휴가를 보내고, 2주는 방학 학교에 보낸다고 했다. L는 1주일 정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친척들과 휴가를 보내고, 3주 정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시부모님 댁에 아이 세명 전부를 보내서 조부모와 함께 지낸다. 재밌는 점은 L엄마는 가지 않고 일을 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신랑과 아이들만 시부모님 댁에 갔다. 그리고 돌아오면 도빌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방학 학교에 보내지 않는 L네다. 자신의 부모님도 방학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자신의 친정 어머니는 치과 의사였기 때문에 일에 있어 비교적 주도권을 갖고 방학 또는 수요일마다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유대인 출신인 그녀는 집안 대대로 자녀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N은 방학 학교에 1주일 정도 다니고, 2주 정도는 다른 지방에서 하는 서머 캠프에 간다. 숙식을 하는 캠프라는데 만 6세 여자 아이 혼자 캠프에 보내도 될까 속으로 많이 염려가 됐다. 부모들은 괜찮다며 작년에도 보내봤는데 좋았다고 한다. 안전이 가장 중요한 우리 가족에겐 만 6세 아이 혼자 지방에서 하는 서머 캠프는 언감생심이다. 그리고는 남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곳에 친척들과 함께 별장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근처 산으로 등산도 할 거라고 했다. V는 방학이 시작한 바로 첫날 바로 노르망디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세명이 보내졌다. V의 엄마는 신랑과 함께 이곳에 남아서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7월 한 달가량은 아이들이 친정 부모님이 봐주시면 그렇게 보낼 예정이란다. 8월에 그리스로 가족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E는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인 6월에 이미 엄마의 고향 모로코에 갔다. 8월 말에 돌아오니 거의 2달 넘게 모로코 마라케시에 머문다. E는 갈 때마다 모로코에 있는 방학 학교에 다닌다. 이 집은 방학마다 모로코에 가기 때문에 일 년의 반은 모로코에서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그곳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매우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J도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인 6월 18일에 코트디부아르에 갔다. 8월 말에 돌아오니 이 집도 두 달 넘게 아이가 아프리카에 있다. 그곳에서 배도 타고 놀 계획이란다. 아빠는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서 일을 하다가 추후 조인하는 듯 보였다. 엄마가 아프리카 출신이다. 이렇듯 다들 여름 방학 및 휴가를 방학 학교 또는 서머 캠프, 조부모님 댁, 가족 휴가 등으로 적절하게 시간을 안배해서 기나긴 여름을 보낸다. 


우리는 안전 제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방학 학교 외의 다른 기관은 아직 안심이 되지 않아서 보내지 않기로 하고, 오로지 방학 학교만 신뢰하며 다니게 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아이도 이제 만 6세가 되었고, 친구들 만나기 좋아하며(학원에 가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면), 지적 호기심도 왕성해졌기 때문에 태권도 학원 또는 피아노 학원 정도는 보냈을 것 같다. 한국은 동네 및 아파트 상가에도 학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자리가 있다는 전제하에)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을 다닐 수도 있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한 달 단위로 학원비를 내며 다니는 학원이 없다. 주로 일 년 단위로 등록을 하며, 비용은 일 년 치를 3번에 나눠서 납부할 수 있다. 이곳 프랑스는 학원 문화가 없다. 한국처럼 방학 동안 미취학 연령 및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영어 학원, 수학 학원, 음악 학원 등이 여기에는 없다. 있다 하라도 여름 방학 기간에 이 연령대 아이들을 공부하는 학원에 보내지도 않는다. 여름 방학은 가족과 함께 놀며, 맛있는 것 먹고 쉬는 그런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선행 학습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학 학교 외 방학마다 운영하는 예체능 위주의 사설 프로그램이 있긴 하다. 프로그램은 주로 테니스, 수영 등 스포츠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미술, 체스, 만들기, 연극 등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까운 곳에 여행도 가기로 했다. 프랑스에 온 뒤로, 2020년만 빼고 매년 한국을 방문했다. 작년 여름에도 한국에 방문해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가지 않고 내년에 가기로 했다. 팬데믹 전에는 방학이 되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녔는데, 지금은 날씨도 많이 덥고, 코로나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며, 비행기 및 호텔도 가격이 많이 오른 상태라 신랑 휴가가 시작되는 8월이 되면 가까운 곳으로 짧게 여행을 다니고, 파리 시내 못 가본 곳도 가보고, 맛집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루브르 박물관도 더 자주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7월 20일, 그 전날 이틀 연속으로 폭염으로 인해 집안에서 뻗어있었기 때문에 온도가 조금 내려갔을 때 우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에 갔다. 루브르 여권을 들고 10개 작품 찾기를 했다. 나는 다리가 아파 더는 못 걷겠는데 아이는 끝까지 다 찾겠다며 드농관, 리슐리 외관, 쉴리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찾는 과정에서 다른 작품들도 보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루브르에 가는 분이 계시면 루브르 뮤지엄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Louvre Passport를 달라고 하면 좋다. 아이들이 자칫 지루해할 수 있는데 작품 찾기 미션으로 인해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작품을 볼 수 있다.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같은 대표 작품을 찾으면 스티커를 붙이는 작은 수첩이다. 끝나고 근처 이케아에 가서 핫도그를 사 먹었다. 우진이와 나는 서로 비를 피하며 이케아까지 걸어갔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루브르에서 작품을 보고, 이케아 핫도그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2022년 6월 6일에도 루브르 관람 후 이케아 핫도그 먹기 일정으로 아이와 단 둘이 보낸 적이 있는데 우리 모자는 이제 루브르에만 갔다 나오면 이케아 핫도그를 먹는 것이 우리 둘만의 무언의 룰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우리 둘만 알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도 꽤 괜찮았다. 우리는 작품을 함께 감상하면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볼리가를 걸으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맛있게 핫도그를 먹으면서 인생의 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추억을 쌓는다. 이케아를 둘러보다가 커다란 강아지 인형을 사달라고 하도 졸라대서 결국 한 개 사줬다. 방학인데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답답하겠다 싶어서 사줬다. 근처 Les Halle에 가면 큰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에 가서 더 놀고 싶었지만 다리도 아프고 큰 강아지 인형도 있었어 그곳까지 가기에는 무리인 것 같았다. 신랑이 데리러 와줘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루브르 패스포트 수첩에 있는 10개 작품을 찾아라. 찾았을 때의 희열이란. 루브르에 있는 키즈 공간 스튜디오에서 책을 읽는다. 작품 찾기는 계속된다. 출처: 모니카


강아지 인형을 들고 사마리텐 백화점을 배경으로 한컷. 길거리에서 인형과 똑닮은 강아지 발견. 강아지는 친구인줄 알고 짖는다. 나뭇가지로 낚시질을 해본다. 출처: 모니카


21일, 운동을 안 하고 집에서 먹기만 해서 살만 급격히 찌고 있다. 운동을 하자며 근처 볼로뉴 숲에 갔다. 우리 둘은 뛰었다. 호숫가를 뛰다가 낚시하는 아저씨들을 발견했다. 우리도 낚시를 하자며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물에 담가본다. 실제 호수에는 커다란 물고기 5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호수를 보고, 물고리를 보고, 오리에게 빵조각을 던져주고, 그렇다 둘이서 축구를 하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2~3일 정도는 운동에 심취했다. 공을 가지고 나서 축구를 하고, 조깅을 함께 했다. 엄마 살을 빼주겠다며 아이는 자기가 하라는 대로 뛰라고 했다. 내가 지쳐서 멈추면 "뒤에 공룡이 다가오고 있다!"라며 내게 빨리 뛰도록 했다. 개인 PT가 따로 없다. 나는 아이를 선생님 또는 코치님이라도 부르기 시작했다. 호칭이 사람을 다르게 만드는지 그렇게 불러주니 더욱 몸에 각을 잡고 나를 혹독하게 운동시켰다. "운동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치님!"이라고 하니 다음날부터는 매일 눈뜨면 "운동!"이라고 했다. 이제 공부와 게임은 뒷전이다. 


25일, 오전에 이웃 Y와 볼로뉴 숲 속 야외 카페에서 차 한잔을 했다. 아이들은 스위스에 있는 시댁에 모두 보냈고 혼자 집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는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이런저런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유대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눴다.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진이는 공차기도 하며 잘 있다가, 우리 옆에 앉아서 음료수와 과자를 먹다가, 끝내는 지겨워해서 핸드폰으로 만화를 보여줬다. 27일에는 과학산업관에 갔다.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방학 학교에서 단체로 온 팀이 곳곳에 많았고, 다른 날보다는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온갖 시설을 골고루 다 체험했다. 과학관 내부는 시원했다. 교육적인 내용이라 하루 종일 있어도 좋았다. 다만, 게임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빠지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1시간 반 정도 게임을 하고는 다시 과학산업관을 체험했다. 우주 체험도 했다. 6시 반에 나와도 밖은 아직도 밝고 더웠다. 라 빌레뜨 공원 한 바퀴를 돌다가 신랑이 픽업 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파리 과학산업관에서 과학 원리를 놀이로 재밌게 체험해본다. 방대한 공간이며 하루 종일 놀다오기 좋다. 루이비통 재단 오디토리움에서 미술 놀이. 출처: 모니카


7월 한 달가량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때까지 우진이와 늘 함께했다. 내 시간과 내 공간은 없었다. 그전에 유치원에 갈 때면 내 시간과 내 공간이 생겨서 나 같은 내향인은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었는데, 7월 한 달 동안은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과 공간 및 여유가 없어서 늘 에너지가 방전되기 일쑤였다. 오직 잠자는 시간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이가 자는 동안 내 시간을 가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온종일 다 써버린 에너지가 고갈이 심한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정신력의 문제일 수 있는데 정신력도 많이 약해빠진 나다. 정신력도 체력도 모두 좋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누군가와, 그것이 가족 및 자식이더라도, 온종일 함께 붙어있으면 에너지가 고갈되며, 잠으로 그것을 겨우 채울 수밖에 없다. 약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에 나는 그 끝을 향해 조금만 더 힘을 냈다. 


누구는 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도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부모들도 있다. 일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제각각의 이유 등으로. 아이와 어릴 적 함께하는 시간은 나중에는 돈 주고도 못 산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이전을 되돌아봤을 때, 다른 것은 다 괜찮아도 그때 아이와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낼걸, 조금 더 아이 곁에 있어줄걸, 조금 더 아이와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며, 조금 더 아이와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눌걸, 조금 더 아이 말을 귀담아 들어줄걸... 이런 것들이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공부를 더 시킬걸, 옷을 더 좋은 것을 해줄걸, 더 맛있는 것을 줄걸 그런 것보다는 아이와 함께 그냥 소소한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인생의 순간순간을 함께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7월 한 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맞이했다. 폭염과 코로나 증가로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아이와 24시간을 오롯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큰 감사로 느껴졌다.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도 늘었고, 아이가 하는 말을 더 가까이 더 자주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도 엄마와 함께했던 이 시간을 따뜻하게 기억하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애착관계가 한층 더 형성되었다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결과 및 성취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냥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고, 아이스크림과 수박을 먹으며 하하 호호하며, TV를 보는 시간도 매우 소중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어디 학원을 가서 뭘 배우지 않아도 그저 엄마와 피부를 맞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우리가 함께한 2022년 7월 한달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값지고, 돈으로도 살 수 없으며,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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