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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ug 24. 2022

미슐랭 원스타, Trent trois

파리 삶의 명과 암

미슐랭 원스타인 트헝 트후아(Trent trois) 가기 위해   전부터 예약을 했다. 파리의 럭셔리 거리인 몽테뉴 거리에 위치한 숫자 33이란 뜻을 가진 미슐랭 원스타는 어떤 곳일까? 8 22 아침, 아이를 방학 학교에 보내고 우리 부부는 오전 10 반에 라데팡스로 먼저 향했다. 라데팡스에 볼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1  가까이 벽이 뚫려있는 화장실을 고치는데 10 가까운 숫자의 기술자가 다녀갔고, 20번이 넘게  보험 회사인 GMF 통화를 하고 5 가까이 GMF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지만 벽은 여전히 뚫린  있기 때문에 오늘은 어쨌든 해결을 하고 싶었다. 라데팡스는 현대적인 건물이 많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많고 그만큼 영어를 잘하는 직원도 많고 일처리도 현대적으로   같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라데팡스 지점에 갔다. 조그만 사무실을 겨우 찾았고, 1 넘도록 수많은 전화와 기술자가 다녀갔지만 그저 상태를 확인하고 견적을 내러 오기만 했지, 누구 하나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도 아니고 작은 부분의 벽을 메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일이 그렇게나 힘들단 말인가. 한국이었으면 일주일은커녕   하루 만에 뚝딱 해결했을 텐데. 기대를 안고 갔지만 오늘도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다. 업체와 연락을 해볼 테니 15 정도 기다리라고 해놓고서는 다른 사람 업무를 하다가 오후에 연락을 줄게요라는 쪽지만 남기고 자기 일을 했다. 11 50분에 보험 사무실에서 나왔고 지하철을 타고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12시 10분에 루스벨트 역에 도착했고, 몽테뉴 거리에 있는 명품샵을 둘러봤다.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디올 등 명품샵이 즐비했다. 몇 군데 들어가 보았다. 프라다, 알마니 매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시 30분에 식당 입구에 들어섰다. Maison Villeroy이라는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인데 2022년 미슐랭 원스타라는 표시가 호텔 입구에 있었다. 호텔 로비는 아담했다. 일박에 한화로 최소 15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이었다. 들어보기만 했지 일박에 1000만 원인 곳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포시즌 호텔, 리츠 호텔처럼 익히 들어본 이름도 아닌 곳인데 숙박 가격이 상당했다. 입구에 바로 식당이 있었다. 식당은 크지 않았다. 테이블은 단 6개. 테이블 6개를 놔두니 방이 가득 찼다. 대게 미슐랭 레스토랑은 테이블 간 간격이 꽤 떨어져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는 않았다. 다소 어두운 편이었지만 분위기가 고즈넉하니 좋았다. 바로 옆에는 바가 있었다.


주소가 33이므로 식당 이름을 33이라고 지었다. 호텔 호비. 화장실 물비누 담긴 통이 특이했다. 출처: 모니카


이미 한 테이블이 와서 식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2번째였고, 그 후 차례차례 들어와서 금세 5 테이블이 채워졌다. 한 테이블만 젊은 동양 여성 혼자 왔고, 그 외는 우리 부부와 같이 남녀 커플이었다. 한 커플은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독일 커플, 다른 두 커플은 30대 및 40대로 보이는 커플이었다. 혼자 온 동양 여성은 유튜버인지 핸드폰으로 주문부터 식사하는 것까지 계속 영상을 찍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대부분 캐주얼했다. 청바지에 셔츠, 청바지에 티셔츠, 심지어 동양 여성은 캡 모자를 쓰고 왔다. 다들 편안한 차림이었다. 우리 또한 평소보다는 조금 신경 써서 입었지만 그렇게 꾸미지는 않았다. 나는 액세서리와 가방으로 포인트를 줬다. 요즘은 미슐랭 식당이라고 해서 대단하게 격식을 차려 입고 오지는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물론 쓰리스타는 조금 다르겠지만. 재미있는 점은 각 테이블마다 매니저와 영어로 대화를 했다. 즉, 현지 프랑스인 손님은 없었다. 현지인들은 굳이 미슐랭이 아니라도 동네 곳곳에 있는 맛집을 잘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어쩌면 미슐랭 만큼의 맛을 내는 가성비 좋은 식당을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점심 세트로 각각 시켰다. 전식, 본식, 후식이 각각 3가지 요리가 있는데 이 중에서 각각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각 메뉴를 고르자 곧바로 아뮤즈 부쉬가 나왔다. 3가지의 핑거 푸드였는데, 당근으로 만든 것, 쌀 페이퍼에 블랙 올리브, 양파 및 미모자 등으로 만든 것이 나왔다. 다 색다르고 맛있었다. 이제 전식이 나올 줄 알았는데, 또 한 번 아뮤즈 부쉬가 나왔다. 이태리 빵 포카치아에 올리브유가 발라져 있고, 애호박과 민트를 갈아 만든 차가운 수프가 곁들여져 나왔다. 여기 위에는 burn bread가 올려져 있었다. 식감이 매우 다양했고, 포카치아를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아뮤즈부쉬는 주문에 포함하지 않고 서비스로 제공되는 음식이다.


드디어 주문한 전식이 나왔다. 내가 선택한 Heirloom은 토마토의 한 종류인데, 마트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토마토이다. 그런데 일반 토마토와는 조금 다르다. 크기가 조금 더 크고, 맛이 매우 달다. 한국으로 치면 찰토마토 같다고 날까. 나는 이 토마토를 좋아하는데, 이곳에서 전식으로 나온 요리는 푹 삶아서 껍질을 벗겨서 그 안에 부라타 치즈를 곳곳에 채워 넣었다. 신랑이 주문한 Rock Octopus는 삶은 문어와 그 밑에 옥수수 수프가 깔려있었다. 옥수수도 몇 개 들어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문어라 그런지 맛있었다. 식감이 쫄깃하니 좋았다. 전식으로는 신랑은 구운 대구 생선과 보라색 아티초크가 곁들여져 나왔다. 나는 Imperial pigeon 즉, 비둘기 요리를 주문했다. 비둘기 다리 꽁피와 코코넛과 홍합을 비롯한 해산물이 곁들여졌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남프랑스 염소 치즈와 살구와 크림이 섞여있는 적당히 단맛의 디저트가 나왔다.


다른 테이블은 모두 와인을 주문했다. 화이트 와인 및 레드 와인을 적절하게 곁들여 먹고 있는데, 우리 가족은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둘 다 술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곳에 오면 와인을 곁들여 먹는데 우리는 처음에는 미슐랭 식당에 가면 괜히 눈치가 보여서 시키곤 했지만 이제는 마시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마시지는 않는다. 일반 물을 달라고 했고, 스파클링 물도 가능하다고 해서 스파클링으로 달라고 했다. 물을 따로 시키면 돈을 받는데, 돈을 내지 않는 탭 워터를 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니, 마지막으로 피니쉬라며 핑거 푸드가 나왔다. 계란 흰자와 초콜릿, 체리와 만든 것, 홈메이드 쿠키, 레몬 타르트가 나왔다. 프랑스 음식은 접시에 담긴 양이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천천히 하나씩 먹고 나면 이미 배가 많이 부르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에 가서는 배가 엄청 부른 것을 알게 된다. 한국 음식은 한 번에 반찬이 여러 개가 나와서 막 먹다 보면 배가 부른지도 모르고 먹는데, 프랑스 음식은 하나씩 천천히 나오니 금방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낀다.


아뮤즈부쉬 핑거 푸드 3개. 아뮤즈부쉬 두번째는 포카치아와 애호박과 민트로 만든 스프. 상큼했다. 출처: 모니카


전식 토마토와 치즈 요리, 문어 구이와 옥수수 소스. 창가에 앞에 놓인 빵과 치즈. 출처: 모니카



요리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다 먹고 나서 드는 생각이 이 정도 수준의 요리가 일반 식당에서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리가 일반 식당에 비해 아주 특별하다거나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슐랭 스타의 기준은 단순히 음식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식당의 위치, 식당이 속한 곳, 매니저 서비스, 식기류, 주변 환경, 전반적인 분위기 등 모든 것을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 같다. 사실 이 보다 훌륭한 요리를 파는 식당 중에서 미슐랭 스타가 아닌 곳도 많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식당이 약간 위험한 동네에 위치해 있다면 과연 미슐랭 스타를 줬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먹는 것이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맛을 보는 것을 넘어서 오감을 이용한 종합 예술을 체험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Trent trois는 일단 명품샵이 즐비한 몽테뉴 거리에 위치해있다. 식당은 일박에 150만 원~1000만 원 하는 개인 호텔 안에 입점해있다. 이 호텔에 멤버십 가입하면 호텔 안에 있는 스파 및 짐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매니저가 말하기를 숙박이 다 찼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보복 심리인가. 이런 곳에 묵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멤버십 비용은 또 어마어마할 것 같다.


전식은 대구요리와 아티초크, 비둘기 고기와 해산물과 흰콩. 후식은 남프랑스 염소치즈와 살구와 크림. 출처: 모니카 박


프라이빗한 호텔이라 식당도 매우 프라이빗한 느낌을 풍겼다. 딱 소수의 인원만 받으며, 다른 미슐랭 스타 식당과는 달리 디파짓이라는 것도 미리 냈다. 50유로 디파짓을 내라고 했었다. 노쇼를 방지하지 위함인 것 같다. 화장실도 남달랐다. 액상 비누가 나오는 곳이 매우 특이했다. 무엇보다도 서빙하는 매니저가 매우 친절했다. 소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매니저가 다섯 테이블을 모두 혼자 담당했는데, 다소 바빠 보이기는 했으나, 각 테이블에 매우 충실하고, 늘 밝은 미소로 대하고, 궁금한 점은 언제든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리츠 호텔 미슐랭 1 스타, 포시즌 미슐랭 2 스타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두 곳 모두 격식은 차리되 그다지 프렌들리 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하지만 이곳 매니저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매우 프렌들리하고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경쾌했다.


피니쉬로 나온 핑거 푸드. 모두 맛있었다. 식당 옆에 있는 바. 햇살 좋은 파리 거리를 걷는다. 출처: 모니카  


다 먹고 나니 시계는 2시 정도를 가리켰다. 근처에 디올 갤러리가 있어서 들어가 봤다. 올해 3월에 문을 열었는데, 매우 깨끗하고 규모가 컸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순히 디올 가방, 지갑 등만 파는 것이 아닌, 디올에서 나오는 그릇, 식기류 등 인테리어 제품이 많았다. 마치 자라 홈처럼 디올 홈을 연상하게 했다. 한 켠에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메뉴 이름이 디올 계란인데 가격이 48유로, 한화 6만 원 정도 했다. 계란을 먹는데 파리 명품샵에서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배로 올랐다. 샌드위치 하나도 4만 원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한 같은 음식인데, 집에서 먹느냐, 공원에서 먹느냐, 디올 매장에서 먹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가 최종 가격을 좌우하는 것 같다. 미슐랭 원스타 식당도 디올 식당도 모두 럭셔리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예쁜 식기에 담겨져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우아하게 먹는 값이 더해진 결과값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찍기 바빴다. 디올 매장에서 셀카를 찍기도 하고, 가방 및 향수를 구매하기도 했다. 샹젤리제 거리는 관광객으로 가득했고, 갤러리 라파예트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디올 갤러리에 있는 장미꽃 조각,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한 벽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디올 식기류 전시. 출처: 모니카


오후에 전화 주기로 한 GMF 직원은 전화를 준다고 해놓고서는 없다. 오후 5시 반쯤, 그 직원한테서 문자가 왔다. 수리 업체 연락처와 함께 이곳에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으라고 한다. 이런 문자와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 수리업체 연락처이니 직접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아라.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고 기사님과 연락을 하면 대부분 오지 않았다. 온다고 해놓고서 안온적이 태반이다. 그동안 온 기사님만 해도 8명 가까이 되는데 다들 견적을 내기 위해 왔다고 하고서는 그 후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이 넘었다. 큰 공사도 아니고 고작 벽 한편 뚫린 부분을 시멘트로 닫으면 되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복잡한 일인가. 시작은 물이 새서 페인트 칠 벽이 물에 젖어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업체를 불렀고, 벽을 뚫더니 안에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더니 새는 부분을 발견했다며 시멘트로 막았다. 열려있는 벽을 닫는 것은 몇 일 후에 다시 와서 하겠다는 말만 남기며 그 기사님은 떠났는데 그 후로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안에는 너무 노후화가 되어 있었다. 파리의 아파트는 기본 100년이라 수도관 등이 매우 낡았으며 이것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그냥 이렇게 산다. 아파트 외관은 오스만 스타일로 멋지고, 안에 인테리어는 새로 해서 또 멋질 수가 있지만 벽 안에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100년이 된 것인지 200년이 된 것인지. 집을 다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낡고 낡은 수도관이 집집마다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파리는 집을 또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는다. 조금씩 보수 공사를 할 뿐. 주방 설거지하는 곳에도 입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물이 잘 막히더니, 지금까지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채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괜히 열어 봤다가 또 화장실 상황과 같이 될까 봐 아예 손도 안 대고 있다. 물이 천천히 내려가도 그냥 참고 설거지를 한다. 가끔 막힌 곳 뚫는 액체를 뿌려가면서. 신랑은 내일 다시 사무실에 찾아가기로 했다. 전화로는 도저히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담당자를 만나 담당자가 약속을 확실하게 잡아줘야 일이 진행된다. 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 이 일 하나로 몇 번이고 오페라에 위치한 사무실에 갔는데 오페라 사무실은 역사와 전통이 넘치는 클래식한 오페라 옆에 있어서인지 고리타분하고 서비스는 찾아볼 수 없으며 인종차별 느낌까지 받은 그런 곳이었다. GMF 보험회사에서는 계약 연장하라는 메일이 왔는데, 이번 건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연장하지 않겠다고 할 계획이다. 매달 돈을 내면서 집 보험을 들었는데, 이런 작은 건 조차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서 연장 메일은 꼬박 온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차분히 생각해본다. 이것이 프랑스이고 이것이 파리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미식으로 평가하는 프랑스 요리와 디저트, 미슐랭 스타급 식당. 오늘 식당만 해도 다 외국인이었다. 외국인들이 프랑스 요리를 비싼 돈 지불하고서라도 먹으러 온 것이다. 명품샵이 즐비한 몽테뉴 거리. 디올 갤러리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특히 아랍계가 많았다. 아랍 부자들이 쇼핑을 엄청 해댔다. 모델인지 몸매가 좋고 패션이 화려한 여성들도 많이 보였다. 다들 사진 찍어 인스타 등 SNS에 올리기 바빠 보였다.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는 샤넬, 루이비통을 비롯한 각종 명품을 쇼핑한 사람들이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매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리는 미식의 도시, 쇼핑의 도시, 명품의 도시가 맞다. 사람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그런 곳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하지만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이런 도시에서 살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다. 답답하고 느린 행정 절차, 친절하지 않은 서비스, 인종 차별 등 살아가면서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캉스 기간이라서 안되고, 쉬는 날이라 안되고, 다른 일이 있어서 안되고, 말이 안 통해서 안되고, 다른 부서에 떠넘기고... 화장실 벽은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다. 참고 살기 싫으면 내가 떠날 수밖에 없다.


우리만 그런가 싶어 다른 집에 물어보니 원래 느린 편이라고 현지 이웃들이 말했다. 그래도 그들은 현지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우리 만큼은 아닐 것이다. 말도 잘 통하고, 같은 민족이라 바가지 씌울 일도 적다. R네도 옥상 수리를 맡겼는데 3개월 넘게 걸렸다고 했다. 3개월이라도 완성을 해내긴 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DIY가 발달했다. 웬만해서는 자기들이 직접 고친다. DIY 제품이 다양하다. 업체를 부르면 돈도 많이 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 느리고, 그럴 바에 그냥 혼자 하는 것 같다. 이곳은 서비스 비용이 한국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프랑스 와서 DIY를 배워야 하나 싶다. 한국에는 뭘 수리해달라고 하면 금방 와서 뚝딱뚝딱하는데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완성한다. 그런데도 비용은 여기 비하면 아주 싸다. 이럴 때면 한국이 그리워진다. 삶의 편리함은 한국이 최고다. 이 집을 떠나기 전에는 무조건 해결을 해놓고 나가야 한다. 아니면 에따데리우라고 해서 집을 빼기 전에 집 상태를 점검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돈을 엄청나게 물린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사 오기 전 상태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물린다. 이전에 이사할 때 무시무시한 에타데리우라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바가지를 씌운 것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고 따라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이곳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달고 달은 노련한 업체에게 싸워 이길 수가 없다.


오늘이 바로 전형적인 파리 삶의 명과 암을 경험한 하루란 생각이 든다. 아침에 보험회사에 직접 가서 담판을 짓고 오려고 했는데 이따 오후에 전화 주겠다며 돌려보냈다. 더운 날 우리는 라데팡스에서 몽테뉴 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점심은 멋진 곳에서 미슐랭 원스타 요리를 우아하게 즐긴다. 몽테뉴 거리를 걸으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명품샵에 들어가서 명품을 둘러본다. 오후 늦게 문자 하나가 온다. 업체 연락처이니 직접 연락해서 약속 잡으세요. 직접 연락을 잡는 게 안되니 찾아간 것인데. 내일 다시 가서 담판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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