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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Sep 19. 2022

카셀 도큐멘타15와 반유대주의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예술담론웹진 대문 가을호에 실린 글

독일 중부 도시 카셀에 있는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미술관을 중심으로 카셀 도큐멘타15(Kassel Documenta15)가 한창 열리고 있다. 5년마다 개최하며 올해 15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전시는 6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한다. 100일 동안 전시를 하기 때문에 '100일간의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가진 카셀 도큐멘타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국제 미술행사이자 현대미술 전시로 꼽힌다. 1955년, 카셀 출신 예술가이자 교수인 아놀드 보데(Arnold Bode)가 독일 연방 원예 전시 일환으로 카셀에서 처음 전시를 개최했다. 나치 기간 동안 문화예술적으로 어두웠던 시기를 청산하고, 나치에 의해 퇴폐의 소산이라고 여겨져 억압받던 독일 현대미술을 빠르게 발전시켜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도큐멘타라는 단어는 전시회를 위해 창조됐다. 나치 시절, 독일 일반 대중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현대 미술을 문서화(Documentation)하려는 목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단어이다.


1955년 1회 전시회에서는 1920년대 및 1930년대 추상 미술이 주를 이루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현대 미술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유럽 지역 작품으로 제한했으나 곧 미주, 아프리카 및 아시아 등 다른 대륙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루기 시작했다. 1945년, 1968년, 1977년 등 사회적,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미학적 탐색을 반영한 작품들도 많이 선보였다. 도큐멘타는 동시대를 반영하는 사회 현상 및 이슈를 다루며 대단히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대담한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첫 회 13만 명의 관람객에서 시작해서 도큐멘타 13(2012년)에서는 약 100만 명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관람객 수를 경신했다. 카셀 인구가 20만 명인데 이에 5배에 달하는 인구가 카셀을 찾은 것이다. 도큐멘타 14(2017년)는 그리스와 카셀 두 곳에 전시를 진행하는 등 매 회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며,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와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매 회 전시마다 예술총감독 선임을 했는데, 올해는 아시아 출신 총감독이 선정되어 전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기존에는 유럽 백인 남성 위주의 총감독을 선임했는데,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그것도 개인 1명이 아닌 그룹을 총감독으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도큐멘타는 또 한 번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 중인 루앙루파(Ruangrupa)라는 아티스트 그룹이 도큐멘타15를 이끌어가고 있다. 루앙루파는 룸붕(Lumbung)의 실천 정신을 바탕으로 도큐멘타를 함께 기획해나갔다. 룸붕은 인도네시아어로 수확한 쌀 저장 및 건조를 위해 지역 사회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쌀 헛간을 의미한다. 즉, 도큐멘타에 참여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 자원 공유, 공정한 분배, 상호 배려 및 실천으로서의 나눔을 강조한다.


루앙루파는 도큐먼트15 전시회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전시장은 마치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고, 배우는 집 안 거실이 됐다. 관람객이 현장에서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단순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매 순간 변화하는 역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다.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공연 및 워크숍 등도 함께 진행됐다. 일방적 소통의 단순 관람이 아닌 작품과 관람객이 쌍방향으로 서로 소통하며 예술 작품을 실시간으로 함께 만들어 나갔다. 또한, 당대 사회 이슈를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담론화하는 장을 마련하는 등 예술이 독립적 세계가 아닌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예술에 담아내야 한다는 것도 보여줬다.


도큐멘타15는 개막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이더니, 7월 16일(현지시각) 도큐멘타 감독 위원회와의 상호 동의 하에 도큐멘타 사무총장인 사빈 쇼르만(Sabine Schormann)이 사임했다. 알렉산더 파른홀츠(Alexander Farenholtz)가 임시 책임자로 새롭게 임명됐다. 논란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타링 파디(Taring Padi)라는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그룹이 <인민의 정의(People's Justice)>라는 작품을 선보였고, 이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개막 3일 만에 철거됐다. 주 독일 이스라엘 대사관 및 독일 문화부 장관 등 각계각층에서 반유대주의적 작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과 정치 및 종교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에 있어 지속적으로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면 이는 진정한 예술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링 파티는 인도네시아의 사회 정치적 격변에 대응하여 진보적 예술 성향의 학생 및 활동가에 의해 1998년 만들어진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의 예술은 사회 정치적, 문화적 연대와 실천을 표방한다. 최근에는 공정한 인도네시아 총선(2018/2019년)을 위한 목판화 포스터 제작 및 흑인인권운동(2020년)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등 정치 및 인권 관련하여 예술을 통해 꾸준히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민의 정의는 타링파디가 2002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폭력, 착취 및 검열이 일상 현실이었던 수하르토(Suharto) 정권의 군사 독재 아래에서 살아온 이들의 투쟁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해된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둘러싼 복잡한 권력관계를 폭로하려는 시도였다. 8 x 12 미터의 배너에서 두 군데가 반유대주의적 이미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6월 24일(현지시각), 타링 파디는 공식 사과문을 도큐멘타 홈페이지에 올렸다. 독일 시민 및 유대인 커뮤니티에 깊은 사죄를 표하며, 어떠한 고의적 또는 특정한 의도는 없었으며, 자신들의 이번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인민의 정의는 자신들이 겪은 수하르토 정권의 만행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반유대주의를 표현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논쟁의 중심에 선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 혐오, 증오, 편견 및 차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을 반유대주의자라고 한다. 텔아비브(Tel Aviv) 대학의 현대 유럽 유대인 연구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Contemporary European Jewry)에서 발간한 ‘전 세계 반유대주의 보고서 2021(Antisemitism Worldwide Report 2021)’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관련 범죄가 2021년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2021년 5월에 있었던 가자 지구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 팬데믹, 몇몇 인권 운동가들의 투쟁 활동에서 의도적인 유대인 배제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한 해 동안 589건의 반유대주의 관련 범죄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2020년에 비해 74%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은퇴한 의사이자 교사였던 유대인 출신 사라 알리미(Sarah Halimi)라는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무슬림 출신 이웃 남성으로부터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이는 프랑스 사회를 큰 충격과 혼란에 빠트린 대표적인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이다. 7월 17일(현지시각), 마크롱 대통령은 홀로코스트 연설에서 증가하는 반유대주의 범죄 및 무지에 대해 연설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446,00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으며, 프랑스는 미국(6백만 명) 다음으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이다.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유대인이 적지 않는데, 아이 반 30명 중 8명가량이 유대인이다. 이들은 유대인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급식 대신 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기도 한다.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유대인 출신 리아 씨를 만나서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 사고가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이라는 것을 밝히기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늘 착용하는 목걸이를 파리 시내에 나갈 때는 보이지 않게 가리고 다닙니다."라며 내게 유대인 문양의 목걸이를 보여줬다. 논쟁이 된 그림을 보여주니 반유대주의적 이미지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디어가 반유대주의를 선동 및 확산시키기도 하며,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이용 및 악용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반유대주의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했던 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반유대주의 정서가 유럽 사회에서 생각보다 뿌리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타링 파디는 공식 사과문에서 밝혔듯 어떠한 고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및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깊이있게 모를 수도 있다. 반대로 인도네시아 군사 독재, 캄보디아 킬링 필드, 한국 전쟁 및 일본 강점기와 같은 아시아 국가의 역사적 사건 및 아픔에 대해 유럽을 포함한 다른 나라 국민들은 자세히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큐멘타 주최 측에서는 인민의 정의가 반유대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눈감아 준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몰랐던 것일까? 때로는 미디어가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기도 한다는 리아 씨의 말처럼 이슈 몰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을 벌인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1(1955년)이 도큐멘타15(2022년)에서는 반유대주의 이슈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시각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독일 출신의 히토 슈테옐(Hito Steyerl)은 이번 반유대주의 사태와 관련한 경영진들의 미흡한 대응 및 예술가들의 근로 조건과 근무 환경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의 예술 작품 철거와 함께 도큐멘타15를 떠났다. 또한, 7월 말에는 알제리 여성 아티스트 그룹의 작품도 반유대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전시에서 삭제됐다. 이처럼 계속되는 예술 작품 검열, 표현의 자유 억압 및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및 토론 거부 등으로 인해 도큐멘타15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으며, 작품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에 8월 초(현지 시각)에는 '과연 100일이 될 무렵 카셀 도큐멘타15에 남아있을 작품이 있을까?'라는 우려와 조롱이 뒤섞인 뉴스 기사도 나왔다. 행사가 끝날 무렵, 카셀 도큐멘타15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예술담론웹진 대문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daemun.or.kr/?p=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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