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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Sep 16. 2022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Sir András Schiff

루이비통 재단은 올 9월부터 2022-2023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작한다. 현재, 10월 초 새롭게 선보이게 될 그림 전시를 한창 준비 중이다. 그래서 갤러리는 임시 휴업 상태이지만 오디토리움에서 하는 음악회는 진행된다. 9월 프로그램의 첫 테이프를 끊은 연주자는 바로 53년생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Sir András Schiff의 피아노 리사이틀 및 마스터 클래스였다. 14일 피아노 리사이틀이 저녁 8시 반에 있었고, 다음날인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마스터 클래스가 있었다. 대게 음악회는 평일 저녁 늦은 시간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있는 나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아무리 가까워도 음악회가 끝나면 밤 10시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스터 클래스는 낮 시간 대라서 갈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9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볼로뉴 숲은 언제나 그렇듯 맑고 청아하고 평화로운 녹색빛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오디토리움에는 좌석이 거의 다 찼다.


오전 10시, 공연장이 가득찼다. 나이드신 분들도 많이 왔다. 출처: 모니카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953년에 태어났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각종 유명 음반사와 음반 녹음, 콩쿠르 수상, 연주 경력 등 프로필이 화려했다. 그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정치 운동에 대한 공개 비판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5세에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와 세월에 따른 경력이 차곡차곡 쌓여 프로필이 참으로 길었다. 2014년에는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Knight Bechelor라는 직위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서 Sir이 붙어 있나 보다.


나는 맨 앞줄에 앉으려다가 너무 부담되나 싶어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마침 두 번째 줄 중간에 빈자리가 있었다. 명당 중 명당자리였다. 연주자의 손가락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안드라스 쉬프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편안해 보이는 구두, 검정 양복바지, 감색 양복 재킷, 감색 넥타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꽤나 깐깐해 보였다. 3명의 프랑스 국적의 남학생이 공개 수업에 참여했다.


첫 번째 학생인 Jérémie Moreau가 바흐 곡을 연주했다. 연주곡목은 5 Suite Française BWV 816이었다. 1999년 생인 그는 20분가량 연주를 했고, 그 후 30분가량 공개 수업이 진행됐다. 말을 하기 전의 안드라스 쉬프 표정만 봤을 때는 매우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을 할 때는 꽤나 유머가 있고, 여유 있어 보였다. 연륜에서 오는 여유일 것 같다. 수많은 수업과 연주 경험 및 인생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영어로 할 줄 알았는데, 프랑스어로 수업을 해서 놀랬다. 꽤나 유창한 편이었다. 예체능 쪽은 메인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언어 소통만 되면 나머지는 몸으로도 표현 가능하다. 53년 생이라는 연세를 감안할 경우 발음 등에서 꽤나 유창하다고 느껴졌다.


첫 번째 학생에게 칭찬도 많이 해줬다. 연신 Tres bon이라며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학생은 Gaspard Thomas로 1997년 생이며,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 경력이 화려했다. 세 번째 학생은 Rodolphe Menguy로 1997년 생이며, 파리 CNSMD를 졸업하는 등 그도 각종 콩쿠르 및 연주 경력이 화려했다. 사실 이곳에 나온 3명의 학생 모두 학교, 콩쿠르, 연주 등 프로필이 화려한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학생이 제일 잘 치는 것 같았다. 3시간 동안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도 잠깐 스쳐지나갔다. 초등학생 때, 한국으로 초청한 외국인 교수님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은 적이 떠올랐다. 제주 음악캠프에 참가해서 유명 교수님에게 수업을 받은 때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피아노가 좋다기 보다는 엄마가 하라고 시키니까 억지로 했었고 결국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만 뒀다. 지금 저기 무대위에 있는 만22세 및 만24세인 3명의 연주자들은 자신이 좋아서 지금까지 피아노라는 한 길을 걸어온 것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현장 모습. 출처: 모니카


쉬프는 표현을 참 재밌게 했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가 기분이 덜 나쁘게 말투와 어조를 부드럽고 매너 있게 했다. 그가 수업 중에 한 말을 꼽아보자면, "이 때는 베토벤이 매우 병약할 때란 말이야. 그렇니까 이렇게 연주해서는 안되지. 죽어가고 있어. (스스로 목을 잡으면서 숨을 멎을 듯한 연기를 하면서), 이때 그는 절망적이고 우울하잖아." "(연주자가 부드럽게 연결해서 치지 않고 음을 뚝뚝 끊어서 치니까) 지금 체르니 치니? 오페라처럼 하란 말이야" "피아니스트들은 연주할 때 호흡을 하지 않는단 말이야. 호흡을 해.(스스로 호흡을 안 해 숨이 막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피아노는 고리타분한 악기야(물론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고, 위트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등등 이 외에도 재밌는 순간들이 많았다. 3시간 동안 꽤나 유머 있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객석의 사람들은 여러 번 박장대소를 했다.  


또한, 세 번째 연주자가 베토벤 악보대로 치지 않으니까, 악보를 너무 벗어나는 것은 안된다고도 했다. 같은 곡을 두고 연주자 개인의 느낌대로 약간 변형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나가는 것은 작곡가 의도를 벗어나는 행위인 것 같다. 학생에게 같은 부분을 계속해서 지적하자 그는 "실례지만, 여기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야."라며 다시 연주해볼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는 Sir이라고 불릴 만큼 신사다웠다.


그는 노래하듯이를 강조했다. 학생에게 음계를 노래하듯 읽어보라고 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성악하듯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성악, 오페라, 노래라는 단어를 꽤 자주 사용했다.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성진 씨도 파리 유학 당시 오랑쥬리 미술관을 수시로 찾았고, 쇼팽 콩쿠르 전에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찾아가서 쇼팽의 무덤 앞에서 그의 삶을 느끼기도 했다고 했다. 피아노 연주는 기교로만 되는 것이 아닌, 작곡가의 의도 및 곡을 만들었을 당시 그의 상태 등 작곡가의 삶을 전체적으로 온몸으로 이해해야 비로소 그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 같다. 연주자들은 악기 연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도 듣고, 책도 읽고, 뮤지엄도 많이 다니며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연주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림, 음악, 무용, 오페라 등 모든 예술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동영상으로 조성진 및 임윤찬 씨 피아노 연주를 많이 들었다. 주로 연주회는 저녁 시간이 많아서 자주 찾아다니지는 못해도 이렇게 현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집에서 편안하게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그들의 연주를 많이 들어서 귀가 한국 연주자들에게 익숙해진 탓인지, 오늘 세 명의 프랑스 학생들이 그렇게 우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들을 비하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들도 프로필이 화려한 실력 있는 연주자이다. 나는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잠재력과 우수성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젊은 연주자들인 임동민, 임동혁,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으로 이어온 한국 현대 피아니스트 계보를 보면(물론 여기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뛰어난 한국 차세대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많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적으로 더욱 빛을 바라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백건우, 신수정, 백혜선 씨 등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많았다. 과거에는 영미권 및 유럽권 학생들을 마냥 우수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서양인 또는 백인 프리미엄이 아무래도 자동적으로 붙었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클래식이 유럽에서 시작됐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조성진 씨는 한국 음악가들의 뛰어남에 대해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그는 이전부터도 동양인 음악가들 실력이 평가절하된 경향이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동양인들도 우수한 음악가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대륙적, 지역적, 국적 등의 차이로 인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눈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성진 및 임윤찬 씨 등 한국 음악계 및 피아노계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번 피아노 마스트 클래스를 참석하면서, 조성진 및 임윤친 씨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전에는 한국인들이 유럽 및 미국, 러시아 등으로 피아노 유학을 갔다.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으로 피아노 유학을 오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프로그램 뒤편을 보니, 루이뷔통 재단에서 주최하는 젊고 재능있는 차세대 유망주들을 소개하는 ‘뉴 제네레이션 피아노 리사이틀(Récital Piano nouvelle génération)' 시리즈에 임윤찬 씨가 내년 2월 이곳에서 연주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2017, 같은 시리즈로 조성진씨가 이곳 무대에 오른적이 있다. 그때 나는 조성진  연주를 들으러 이곳에 왔었다. 작년 제 18회 쇼팽 콩쿨 1위를 한 Bruce Liu도 같은 시리즈로 다음달 이곳에서 연주한다. 전 세계가 한국 연주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다.


프로그램 뒷편에 발견한 임윤찬 씨 리사이틀. 출처: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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