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엄마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이유
2017년 9월 어느 날, 새롭게 집을 구한 파리 16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지가 하나 붙었다. 아파트에서 개최하는 친목 도모회였다. 목요일 저녁 7시 반쯤 아파트의 넓은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케이터링 서비스 업체가 와서 각종 핑거 푸드를 준비했다. 다들 한 손에 핑거 푸드, 다른 한 손에 와인 또는 샴페인을 한 잔씩 들고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우진이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아랫집에 이사 온 사람이에요?”
“네, 이번에 이사 왔어요. 4층에 사세요?”
알고 보니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셨다. 연락처를 건네주시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또다시 우진이와 단둘이 배회하고 있으니 어떤 중년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는 몇 살이냐고 물었다. 아직 16개월 정도라고 대답하니, 대뜸 크레쉬에 안 다니냐고 물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다고 했더니 얼른 크레쉬에 등록하라고 했다. 나는 크레쉬라는 단어를 난생처음 들어봤다.
그때부터 그녀의 크레쉬 찬양론이 시작되는데 크레쉬는 프랑스가 처음 시도한 아주 자랑스러운 보육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발전해서 독일 같은 주변 유럽 국가들이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며 당당하게 힘줘 말했다. 약 30분 동안 프랑스의 크레쉬 찬양 연설이 지속되었는데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우진이가 없어지거나 다칠까 봐 두 눈과 귀가 너무 바빴다.
그녀는 크레쉬 원조는 프랑스이며 국가가 어린 아기들을 안전하게 맡아주기 때문에 프랑스 여성들은 출산을 하고도 안심하고 일터로 나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부분의 프랑스 여성들은 출산 유무와 상관없이 일을 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자의 인생 큰 틀을 바꿀 만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 프랑스 여성들은 아기가 태어나도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한다. 내가 먹고 즐기던 것을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다양한 형태의 크레쉬(Créches)가 존재한다. 공동 크레쉬(crèche collectives), 가정 크레쉬(crèches familiales), 부모 크레쉬(crèches parentales), 기업 크레쉬(crèches d'entreprise) 등 설립 형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공동 크레쉬는 최대 60명까지 수용하며, 시에서 관리 감독하는 공립 또는 사립 크레쉬가 이에 해당된다. 걷지 못하는 아이의 경우, 선생님 1명 당 5명의 아이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아이의 경우, 선생님 1명 당 8명의 아이를 맡는다. 크레쉬에서는 아이들의 안전, 건강, 성장 발달 등을 주로 맡는다. 크레쉬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국가에서 지정한 자격증을 이수해야 근무가 가능하며, 원장은 간호사 자격증을 필수로 소지해야 한다.
가정 크레쉬는 아이 1명에서 4명까지 집에서 보육하는 형태를 말한다. 관할 지역 시청 또는 협회에서 관리한다. 보육자는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넷플릭스에 2017년 개봉한 <Daddy Cool>이란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있는데, 남자 주인공이 가족 크레쉬를 운영하는 내용이 나온다. 부모 크레쉬는 부모들끼리 직접 만들어서 해당 부서에서 승인을 받으면 원장 및 전문가들이 운영한다. 부모가 자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모의 참여가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기업 크레쉬는 회사 및 공공 기관 직원들 자녀들을 맡아서 보육한다. 주로 회사 근처에 있거나 사내에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 크레쉬는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들은 자신이 임신인 것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이 살고 있는 시청에 가서 크레쉬를 신청한다. 그만큼 크레쉬 경쟁이 치열하다. 근무 여부, 자녀 수, 소득 수준 등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신랑과 함께 파리 16구 모차르트 거리(Avenue Mozart)에 있는 로댕이라는 이름을 가진 크레쉬에 찾아갔다. 내부 시설은 크고 좋았으며,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원장 선생님이 나오더니 마담 보엘이라는 여성의 이메일 주소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이 분께 연락해보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속으로 궁금했다.
마담 보엘은 파리 16구 시청 부시장으로 가정 보육 관련 최고 결정권자였다. 이 분께 내 사정을 말하면 부탁을 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비슷한 문의가 수백 통에 이르는 높은 분들께는 무조건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PPT를 만들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및 왜 크레쉬에 보내야 하는지 간단명료하게 그림과 함께 만들었다.
마담 보엘을 16구 시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프랑스의 우수한 육아법 및 영유아 교육 시스템을 한국은 높이 평가한다고 했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시종일관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사르르 번졌다. 종이에 주소를 적어주며, 이곳에 직접 연락해서 크레쉬 원장과 약속을 잡으라고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크레쉬였다. 외관이 마치 반지의 제왕 마법의 학교같이 생긴 매우 멋진 건축물로 된 크레쉬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 아이가 들어갈 곳이라니!
2018년 10월 중순, 아이가 30개월 즈음이었다. 들어가기 하늘에 별따기라는 크레쉬에 입성하는 날이 왔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프랑수아 미예(Francois Millet) 크레쉬 벨을 눌렀다. 크레쉬 선생님 한 분이 아이 이름을 물어보고는 해당 반으로 친절히 안내를 해주셨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맨 안쪽 끝에 위치한 방에 들어서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꽤 넓었다. 넓은 홀에 우진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크레쉬는 만 2개월부터 만 3세 미만의 아이를 보육한다. 연령별로 나눠서 아이들을 보육한다. 각 반마다 선생님은 3명 정도 됐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보조 선생님 또는 인턴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날 선생님이 없을 경우에는 다른 반 선생님이 오셔서 같이 봐주시기도 했다. 1주일 정도는 엄마가 함께 있으면서 적응 기간을 보내는데, 각 아이의 적응도에 따라 기간은 상이하다.
점심시간이 왔다. 만 1세, 2세 아이들은 제 앞에 놓인 턱받이를 일제히 하고서는 식판이 올 때까지 비교적 잘 기다렸다. 선생님은 음식을 각 아이들 식판에 하나씩 배분해줬다. 아이들은 자기 입에 맞는 음식은 잘 먹으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안 먹는다고 해서 선생님이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재촉하지는 않았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입맛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낮잠을 잤다. 그 시간에는 선생님들도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선생님 한 명씩 잠자는 아이들 곁에 함께 했다.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가 있을 경우, 그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허락했다. 잠이 오지 않는 아이에게 잠을 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정해진 규율을 비교적 잘 따라가는 어린아이들이 대견해 보였다. 티티라는 담당 선생님께서는 우진이가 크레쉬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예정된 적응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부모님은 안 오셔도 된다고 했다. 아이는 크레쉬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는지 매일 아침 크레쉬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프랑스는 아이들 사진을 함부로 찍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초상권 침해라고 생각한다. 크레쉬 행사 때에도 아이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부모들의 허락을 받는다. 외부용이 아닌 내부용이라도 허락을 받고 찍는다. 한국은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진으로 찍어 학부모에게 보낸다고 하는데, 프랑스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 행사가 있을 때에 학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행사에도 베이비 시터가 대신 참석하는 집이 약 50% 정도 됐다. 일하는 맞벌이 부부는 아이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도 한다. 우진이와 친하게 지내는 남자아이 3명이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친한 친구 부모를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에도 부모들은 잠깐만 있다가 돌아갔다. 어린이집 졸업식 같은 것도 없었다. 마지막 날 그저 함께 다과를 하는 것으로 끝냈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대해 왈가부왈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싸는 것에 집중했다. 누구는 말을 하는데 누구는 말이 늦는다는 말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동 성장 발달 전문가가 와서 아이들의 발달 사항을 체크했는데, 큰 부분에서 발달 사항이 떨어지지 않으면 세세한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추구한다.
점심시간에 양치질하는 일도 없다. 한국처럼 하루에 양치질은 세 번 해야 한다는 것이 없는 문화다. 점심 먹고 나서 양치질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에도 양치질을 하지 않는다. 점심 먹고 나서 양치질을 해야 하는 한국 엄마들은 아이 이빨이 썩을 까 봐 걱정도 되지만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진이는 어린이집 다니는 동안 이가 썩지 않았다. 약 9개월 정도 다닌 프랑스 어린이집은 아이에게도 내게도 편안한 곳, 즐거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