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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27. 2022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한 이중언어 발달

노력하나 들이지 않고 2개 언어를 할 수 있었던 비결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이는 만 13개월 정도였다. 나는 말이 많지 않은 엄마다. 아이가 말을 하게 하려면, 엄마가 수다쟁이가 돼야 한다고들 하는데 말이 많은 편이 아닌 나는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또한, 육아로 인해 체력적으로 힘이 부쳐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우진이는 만 2살 반 가량 됐을 때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나는 그 시간에 집안일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우진이는 프랑스어 환경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만 2살가량의 프랑스 아이들이 아직까지는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우진이를 배제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감 가지고 놀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몸으로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렇게 9개월가량 프랑스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즈음에는 간단한 프랑스어 단어 몇 개 정도만 구사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계속 한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아이는 하루의 반은 한국어, 하루의 또 다른 반은 프랑스어 환경에 놓이다 보니 아무래도 두 언어 모두 썩 잘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만 4세에 프랑스 공립 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만 4세가 되면서부터 아이는 한국어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만 4세가 되면서 갑자기 어떻게 한국어를 말하기 시작한 걸까? 유튜브 영상을 자유롭게 보여줬다. 나 편하고자 한 일이기도 했다. 최소한 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동안은 요리며 청소며 집안일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시간들이 쌓여서 한국어 어휘가 늘고, 문장도 구사하게 됐다. 영상은 주로 한국어로 된 영상을 봤다.  


한창 성장하는 어린아이들의 과도한 영상물 시청에 대한 이슈가 논란이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꼭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과도한 시청 시간은 아이들의 뇌 발달 및 시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는 유튜브 영상이 긍정적이 면도 있었다. 한국 문화를 접하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도구였다. 


만 4세를 시작으로 한국어는 일취월장해서 만 4세 반 정도 되니 일상생활 속 한국어 구사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만 3세가 넘어도 물, 꺄꺄, 엄마 등 간단한 한국어 단어만 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아이들 언어 발달 수준을 놓고서 서로 비교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이 언어 발달에 대해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주변 환경이 아이 언어 발달에 대해 비교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다 보니 나도 육아를 하면서 마음을 더욱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만 4살이면 프랑스 아이들은 어느 정도 모국어를 잘 구사하는 편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2주 정도는 아침마다 힘들었다. 아무래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다 보니 유치원 생활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진이는 비교적 사교적인 성향이라 쉽게 친구를 사귀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으로 뒹구르며 자연스럽게 친구를 하나둘씩 만들었다. 2주 정도가 지나니 아침마다 유치원 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우리 아이의 손을 잡아준 고마운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착한 프랑스 아이들 덕분에 우진이는 낯선 프랑스어 유치원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프랑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아이는 갑자기 집에서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집에서는 프랑스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해보라고 해도 절대 안 했던 아이였다. 아이가 집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게 그저 신기했다. 나는 집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아이는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스스로 프랑스어를 터득했다. 


우진이는 프랑스 유치원에서 1년을 생활하고 났더니, 집에서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된 영상물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프랑스어로 된 키즈 영상물을 시청하려고 하면 금세 채널을 돌려서 한국어 키즈 영상물만 보려고 했던 아이였다. 프랑스어로 된 영상물을 즐겨보는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내가 아이한테 프랑스어를 물어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분 좋은 지경이었다. 


우진이가 만 5세 반 정도 되니, 한국어도 재잘재잘 잘하고, 프랑스어도 조잘조잘 잘 말했다. 두 개 국어를 스위치 전환하듯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스러워 보였다. 언어 발달에 있어 정해진 때란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이고 아이고 각자 다 때가 다를 뿐이다. 


한국어는 만 4세 반, 프랑스어는 만 5세 반 정도에 유창해졌다. 한국어를 4년 반 동안 믿고 기다렸기에 다른 언어에도 자신감이 생겨서 1년 만에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더 빨리, 더 늦게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아이들은 다 다르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때도 모두 다 다르다. 


나는 아이를 항상 믿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줬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크게 노력한 것도 없고, 가르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잘할 수 있게 된 비결을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언제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기다렸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못해도 불안하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너는 잘할 수 있다고, 언젠가는 잘할 수 있다고, 너는 최고라고, 엄마는 우진이를 믿는다고, 그리고 엄마는 우진이를 있는 그대로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매일 밤 아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프랑스어를 하기 싫어할 때도 절대 다그치거나, 잔소리하지 않았다. 아이가 스트레스받는 것이 무엇보다 염려되어서 유치원 생활을 편안하게 잘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 잘 노는 것만으로도 매일 감사하며 지냈다. 말을 못 해서 스트레스받기보다는, 말을 못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편안함 속에서, 즐거운 학교 생활 속에서, 따뜻한 가정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배워나가고 있었다. TV를 통해, 친구를 통해, 선생님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마트에서, 길거리에서, 엄마 아빠가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보면서 혼자 가만히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아이는 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과 입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조물조물 혼자 말해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엄마가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엄마는 너를 믿고 있다는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고, 즐겁고, 부모로부터 무한 신뢰와 긍정, 조건 없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언젠가 아이는 스스로 터득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꽃봉오리가 어느 날 갑자기 확 터지듯 그런 꽃피는 날이 온다. 


아이는 이제 어엿한 만 6세가 되어서 올해 9월 1일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어도 프랑스어도 막힘없다. 엄마 아빠와 집에서 속 깊은 대화를 할 때에도,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어느덧 아이는 새로운 언어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다른 나라 국적인 국제 커플이 많다. 친구들을 통해 다른 나라와 문화를 알아가며, 다른 나라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로 된 인사말을 따라 하며 다양한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도 늘 외국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 앞에서 늘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책을 읽다가, TV를 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봤다. 우진이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처음에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했어. 그런데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하니까 지금은 처음보다는 잘 말할 수 있게 됐어. 처음에는 어려워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것이 외국어인 것 같아." 


아이들 눈에는 부모가 아직은 매우 큰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큰 존재도 외국어를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으며, 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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