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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27. 2022

사건사고가 적은 프랑스 어린이집

어린이집 근무 환경

어느 겨울날, 우진이를 픽업하러 크레쉬에 들어섰는데 아이 얼굴에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마에서 인중까지 확 긁어놓은 것처럼 새빨간 줄 세 개가 세로로 그어져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래서 담당 선생님께 여쭤봤다.


“무슨 일이에요? 아이 얼굴이 어떻게 된 거예요?”


선생님은 친구 손에 있는 책을 가져가려고 하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얼굴을 할퀴었다고 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자신들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다 챙길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원장 선생님 방으로 갔다. 원장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했다. 어느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만약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 모두가 일단 우선은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 같다. 본인 잘못은 아니지만, 집이 아닌 어린이집에서 아이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났으니 약간은 죄송한 제스처라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되려 당당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그런 뉘앙스도 전혀 없었다.


그 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이곳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조금 다치는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 부모들에 비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무덤덤한 편인 듯 보였다. 물론, 큰 사고가 났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어떤 사건일 발생했을 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면, 혹시 나중에 이 일로 인해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상황이 닥쳤을 때,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진이가 크레쉬에 9개월 동안 다니는 동안 이곳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한국의 한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영상 속에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학대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를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처럼 한국 뉴스에서 어린이집 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것을 봤기 때문에 프랑스의 어린이집에서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들을 몇십 명씩 다루다 보니 선생님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이 절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어린이집 선생님은 한국에 비해 업무 중에 받는 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아 보였다. 한국 어린이집의 경우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아이처럼 귀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은 아이에게도 어른한테 말하듯이 말하고 어른 대하듯 했다. 아이들이라고 특별히 더 말투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소진도 덜하다. 학부모들에게 특별히 잘 보이려는 것도 없다. 어린이집 교사들도 시크한 프랑스다.


아이를 데리러 올 때면 그날 있었던 하루 일과를 간략하게 부모에게 알려줬다. 오늘 무엇을 잘 먹었고, 무엇을 안 먹었으며, 화장실은 몇 번 갔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등 각 항목별로 간단하게 알려줬다. 일과만 간단하게 알려줄 뿐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었다. 학부모 질문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하지 길게 설명하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아이가 다쳤을 때에도 놀다가 다쳤다며 당당히 말하고, 학부모도 불만을 크게 제기하지 않았다. 학부모에게도 에너지 소진이 덜하다. 역으로 학부모들도 선생님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 얼핏 보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아이를 아침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각자 일터로 돌아가기 바빠 보였다. 한마디로 서로 깔끔한 관계다. 학부모끼리도 말을 잘 안 하니 과연 이들은 자기 아이가 다니는 곳에서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단체 생활은 잘하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그들 상사인 어린이집 원장에게도 에너지를 덜 쏟았다. 상사 눈치를 그다지 보지 않았다. 언젠가 나는 크레쉬 담임 선생님과 대화 중이었는데 원장님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원장님은 선생님 옆으로 다가와서 우리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분명 선생님도 원장님이 옆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며,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 그제야 원장님께 고개를 돌린 후 “무슨 일이시죠?” 하고 물었다. 원장님도 그런 상황이 불쾌하지 않다는 눈치였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에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그 상대의 지위를 막론하고 대화 중에 제삼자가 끼어들지 않는다. 대화 중인 두 사람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원장님과 선생님 사이의 상하관계가 한국에 비해 비교적 수평적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원장님의 눈치를 보거나 할 필요가 없다. 학부모 스트레스 또는 상사에게 쏟는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동료들 간에도 수평적인 관계이다.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 교실과 다른 층에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선생님들 쉬는 공간에서 편히 쉬다가 다시 내려왔다. 선생님들이 하루 종일 일하는 일터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 외의 것들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과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듯 보였다.  


나는 프랑스인들의 조직문화가 비교적 수평적이라는 것에서 어린이집도 또 하나의 회사라고 볼 때 비교적 스트레스가 덜한 덕분에 아이들의 사건 사고도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 어린이집의 경우, 아이들이 생활하는 것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유튜브에서 한국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모여서 각자의 고충을 얘기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다가 사고가 생기기도 하는데 학부모들이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사실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이곳 프랑스에는 이런 일이 절대로 없다. 학부모가 요구한다고 해서 어린이집에서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이를 요구하는 학부모도 없다. 크레쉬 안에서는 담임 선생님들의 자율과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원장도 학부모도 선생님들에게 개입 또는 요구 사항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직접 돌보는 가장 중요한 선생님들의 심신이 비교적 편안할 수밖에 없고, 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는 어떤 다른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 사고가 많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시크한 선생님들 가이드 아래에서 즐겁게 생활한다. 나름의 규칙과 규율 속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한다. 학부모가 우리 아이는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면 “오늘 하루 잘 지냈어요.”가 최고의 칭찬이다.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해주지도 않고 아이의 세세한 발달 사항을 구구절절 나열하지도 않는다. ‘꽁떵Content(행복해)’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도 없고 평가도 없다. 나는 종종 선생님께 우진이가 말은 하는지 프랑스어는 잘하는지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모두 다르니 말을 늦게 하더라도 괜찮다고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한국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느 정도 되면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못 한다고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고민 글에 달린 댓글에는 언어 치료를 받아보라고 하는 글도 꽤 많았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룰이 형성되어 있는 듯했다. 다른 아이들은 말을 하는데 자신의 아이는 못하니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한국의 비교 문화는 자기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서로가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아이만 보는 문화 속에 내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내가 속한 환경과 문화에 동화되기 쉽다. 나는 그렇고 싶지 않은데, 내 육아 철학은 그렇지 않은데,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비교하고 평가하면 스스로 귀가 얇아지고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한 적이 없다. 우진이는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크레쉬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관계로 말이 늦은 편이었다. 어찌 보면 늦었다고 말하는 기준도 모호할 수 있겠으나, 대게 한국에서 말하는 만 3세가 되면 어느 정도 말을 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놓고 보면 늦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이는 만 4세가 되어서야 말을 어느 정도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주변 환경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준 것도 한몫했다. 만나는 이웃들은 우진이의 언어 발달에 대해 염려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크레쉬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다리면 언젠가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동안 현지 TV에서 어린이집 사건 사고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TV 뉴스에서 본 적은 없다. 왜 한국은 프랑스와는 다르게 어린이집 문제가 잊을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닷 페이스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보육 교사는 사진 찍는 기계? 어린이집은 군대?'라는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국 조직 문화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어린이집 시스템이 자칫 교사들로 하여금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그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물론, 어린이집 구조적인 문제 또는 조직 문화와는 상관없이 어린이집 교사 개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개인의 성품 또는 자질이 의심되는 어린이집 교사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처벌을 받아 백번 마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아이가 너무 좋아서 어린이집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그들의 초기 열정과 꿈을 사그라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이에 대해 정부, 시민 사회, 학부모들이 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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