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의 시작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 X 해외 리포터]에서는 아이와 함께 해외에서 살고 있는 엄마, 아빠 리포터들이 직접 경험해본 다양한 제3의 공간을 소개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공원 등 공간의 물리적인 환경은 물론, 공간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 아이들이 경험하는 콘텐츠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프랑스는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두 달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자연히 모든 학교도 스탑이 되었다. 대부분의 프랑스 엄마들은 임신을 하면 바로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생후 3개월부터 다닐 수 있는 크레쉬 신청을 한다. 왜냐면 대부분 프랑스 엄마들은 일을 하기 때문에 갓난아기도 기관에 맡긴다. 자녀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하루 종일 집안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익숙지 않은 프랑스 엄마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렸단다. 자가 격리가 풀리면서 6월 초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 점차적으로 개학을 하기 시작했다. 만 4살인 우리 아이는 마지막 1주일 간 다니고 있던 국제학교에 다시 등교를 하였다. 3개월 간 집에 있다가 1주일 등교하고 졸업이라니... 그리고 올해 9월부터는 프랑스 공립 유치원인 마떼흐넬(Maternelle)에 다닐 예정이다. 시청에 가서 마떼흐넬 입학 신청을 하였고, 앉은자리에서 바로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마떼흐넬로 배정해주었다. 그곳 원장님과 미팅 날짜를 잡고 만났다. 원장님은 아이가 프랑스어를 아직 잘 못하니 여름 캠프(Centre de loisirs d'été), 직역하면 여름 레져/취미 센터를 미리 다닌다면 입학 전 프랑스어뿐 아니라 친구들도 미리 사귀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여름 캠프를 다닐 것을 강력 추천하였다. 7월 6일부터 여름 캠프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데다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여름 캠프란 말 그대로 여름 바캉스 기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다. 신청 가능 기간 동안 신청서를 작성해서 시청에 직접 제출하거나 온라인 신청도 가능하다. 신청 기간이 넘어서 등록해도 되는데 그럼 가격이 미리 신청했을 때의 비용보다 30% 더 내야 한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세 단어를 내세우는 나라인 만큼, 사회 평등과 복지를 철저하게 추구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면 무조건 소득에 따라 비용을 책정한다. 여름학교 비용, 점심 비용, 방과 후 활동 비용 등 모든 비용은 10단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의 가정은 1단계 비용(0.13유로/한 끼)에 해당되며 모든 비용이 거의 공짜라고 볼 수 있다. 고소득층의 경우 10단계(7유로/한 끼)에 해당한다. 즉, 두 명의 친구가 나란히 앉아서 똑같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각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무려 54배나 차이 나는 이 놀랍고도 기이한 상황...
7월 6일부터 8월 31일 중, 원하는 요일 아무 때나 보낼 수 있다. 여름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하는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만큼 바캉스가 중요하다. 대게 3주에서 4주 정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데 휴가를 떠나는 기간 외에는 이곳에 보낸다. 프로그램에는 수영, 캠프 등도 포함되어 있고, 실내에서도 주로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졌기 때문에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7월 첫째, 둘째 주는 일주일에 3번, 세 번째 주는 4번, 그리고 한 달 여름휴가를 보낸 후, 8월 마지막 한 주 동안 4번을 보내기로 했다. 즉,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총 14일을 보내기로 했다.
시청에서 나온 직원이 시청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해서 작성을 하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총 학생 및 교사 수, 프로그램, 안전 수칙 등등... 그리고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인 위생 관련한 질문들까지...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로 인해 여름 캠프에 보내도 될지 말지 고민 중인 학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위생 수칙들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물었더니 올해는 아무래도 수영, 캠핑, 미술관 및 박물관 견학 등 야외 활동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신청서 작성표에는 야외 활동 관련하여 부모의 동의를 구하는 란이 있었다. 나는 '모든 야외 활동은 하지 않겠다'에 표시를 했다. 야외 활동 미 희망자의 경우, 그 시간에 실내 활동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픽업 오는 사람의 인적 사항, 사진 촬영 동의 유무 등등을 빼곡히 작성했다.
드디어 여름 캠프가 시작되는 7월 6일 월요일 아침이 드디어 밝았다. 파리는 20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구마다 곳곳에 마떼흐넬이 있다. 여름 캠프는 유치원 건물인 마떼흐넬에서 진행이 된다. 아이가 9월부터 다니게 될 마떼흐넬의 아이들도 오기 때문에 입학 전에 미리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등교시간은 아침 8시 20분에서 9시 사이이며, 9시가 넘으면 출입이 불가하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야외 공공 놀이터 및 학교 건물들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심지어 주말에 고등학교 건물을 빌려서 음악회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한국은 키즈 카페, 각종 학원 등 사설 건물 및 시설들이 너무 깨끗하고 현대적으로 잘되어 있다. 반면 프랑스는 그런 곳은 별로 없다. 대신 국립 박물관, 미술관, 시립 야외 공원, 놀이터, 공립 학교, 동네 성당 등 이런 공공 건물들을 많이 활용한다. 어차피 방학이라 노는 학교 건물들을 몇 군데 지정해서 근처 4~5개 학교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도시 공간 활용 및 환경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학교 정문 게시판에 주간 프로그램을 붙여놓는다. 매주 프로그램을 새로 업데이트 한다. 한 달 치 식사 메뉴도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점심 메뉴 및 구떼(goûter)라고 불리는 간식 메뉴도 함께 표기해 놓았다. 재밌는 것은 "오늘 저녁 메뉴 아이디어가 필요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저녁 메뉴까지 적어놓았다. 먹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답게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려하여 저녁에는 이런 이런 음식을 아이에게 해주면 좋다며 하루의 균형잡힌 식사 메뉴까지 시에서 알려준다.
학교 입구에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표시를 바닥에 해 놓았다. 정문을 들어서도 입구와 출구를 따로 구분해 놓았고, 안내 선생님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아이의 이름을 말하니 아이만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서로 헤어졌다. 나는 여전히 남아서 선생님께 이것저것 더 물어보았다. 점심은 몇 시에 먹는지, 물은 수시로 주는지, 낮잠은 자는지... 많은 질문에도 선생님은 마다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우리는 여름 캠프가 처음이고, 아이가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걱정이 많이 되어 질문이 많다고 하니 걱정 말라며 안전에 유의한다고 재차 당부했다.
여름 캠프는 예체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주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만들기, 그림 그리기, 단체 게임하기, 춤추기, 노래 부르기, 단체 스포츠 시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만들기 시간이 많은 편이다.
나는 잠깐 한국의 경우를 떠올려보았다. 양손 가득히 학원 책가방을 몇 개씩이나 들고 다니면서 학원 투어로 하루하루를 마감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가정 방문 학습지, 미술 학원, 수학 학원, 피아노 학원, 발레학원, 수영, 스케이트, 영어 학원 등등... 요즘 한국의 만 4살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가정교사가 집에 와서 한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단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과도한 사교육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잘 안다. 이 곳 프랑스의 경우, 학원은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교육을 신뢰하는 편이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많이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요일은 프랑스의 모든 학교가 오전만 수업을 한다. (이전에는 수요일은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단다. 그러자 엄마들의 반발이 있어서 오전만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에는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다니거나, 엄마 또는 보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수요일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여름 캠프 프로그램 중에서 프랑스어, 영어, 수학 등을 공부하는 시간은 전혀 없다. 오로지 음악, 미술, 스포츠 등 예체능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그만큼 수요가 높아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여름 만큼은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변수가 조금 생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코로나를 비교적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등록률을 보이고 있다고 관계자는 내게 말해주었다. 올해 이곳 여름학교에는 만 3살 30명, 만 4살 20명, 만 5살 15명 총 65명의 아이들이 등록했다.
프랑스 아이처럼 이란 책을 엄마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책에는 아이가 울 때는 바로 달려가지 말고 스스로 자기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아이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하라고 나와있다. 아이가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 들어간 첫날,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월요일 오후 4시 반,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서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거리에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매우 사교적인 성향의 아이라서 크레쉬(어린이집)든 국제학교든 음악교실이든 다 잘 적응을 잘했기 때문에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갑자기 들으니 조금 놀랬다.
"왜 학교가 가기 싫어?"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내게 "노노"라고 말했어요."
자초 지종을 들어보니 선생님은 금지된 상황에서 "안돼"라고 단호기 말을 했고, 1년 간 사립 국제학교의 미국인 선생님에게 길들여진 이 어린아이는 엄하고 단호한 프랑스 선생님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익히 들어서 대충 알고는 있었다. 프랑스 유치원인 마떼흐넬부터(만3세) 공교육이 시작되며, 공교육을 담당하는 프랑스 선생님들은 기존의 어린이집 선생님, 사립학교 또는 국제학교와는 달리 조금 엄격한 편이라고 들었다. 선생님의 "안돼"라는 단호한 말투와 눈빛에 아이는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단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단다. 주변 아이들도 자기를 지켜보기만 했지 누구 하나 곁에 다가오는 이가 없었단다. 아이는 그 순간 수치심, 두려움, 공포,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을 맛보았으리라. 아마도 엄마와 아빠의 손길이 간절했으리라...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진아, 선생님은 너를 위험에서 보호해주려고 "노노"라고 말한 거야. 엄마도 때로는 우진이에게 "노노"라고 말하잖아."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잖아.
뜨거운 햇살 아래, 머리를 띵하고 한 대 얻어맞는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친정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이셨는데 딸을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 내게 피아노를 혹독하게 직접 가르치셨다.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친정 엄마는 내게 있어서 포근한 엄마의 모습 보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모습으로 내 기억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 나에게 엄마는 엄마였나, 선생님이었나... 한동안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지. 엄마가 선생님이 되면 안되지.
엄마가 선생님이 되는 그 순간, 아이는 외로워진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엄마 역할보다는 때론 선생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엄마는 밖에서 만난 나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선생님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이의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그저 포근히 안아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맞아, 우진이 말이 맞아.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야.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아이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그 믿음대로 하루가 더 지나고 나니 친구가 생겼다며 학교에 매일 가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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