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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l 24. 2020

'성교육'을 반대하는 너에게

폴란드 성교육의 현실과 탄압받는 성소수자의 인권


[해외특파원 소식] 어린 시절부터 다양성에 대해 말을 건네는 솔직한 사회

인종, 젠더 등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가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알아봅시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유치원, 학교 교육이나 도서관 등 제 3의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각 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도록 어떤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소개할 해외특파원들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각국의 해외특파원들이 각 나라의 아름다운 미담을 전해주는 가운데, 갑갑한 현실의 폴란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유럽의 국가라고 하면, 성교육이나 성적 지향과 관련해서 한국보다 더 진보적이거나 개방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올해 봄 폴란드에서는 다양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차별과 혐오 이슈가 있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지금은 21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씨의 유튜브 클립, '동성애를 반대하는 너에게'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3년 전,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가 당시 대선후보 TV토론에서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화가 나 올렸던 동영상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많은 (혐오) 댓글이 달리는 동영상 중 하나이죠.

 이와 비슷한 일이 8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 머나먼 나라 폴란드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대통령 선거 재출마가 가능한 폴란드에서는 공공연하게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하는 그(안제이 두다)가 집권당 PiS의 대통령 후보일 뿐만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공공연한 장소에서 이 나라의 동성애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끊임없이 기사화되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히려 그런 그의 발언을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 7월 12일, 결국 재선출에 성공합니다.  

7월 12일 있었던 2차 결선투표에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아니 대체 정치인이,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공공연히 국민을 차별하나.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나라 헌법을 포함한 여러 국제법상 인정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었나. 동성애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대놓고 무시하는 저런 연설을 듣고도 저 사람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다니 이 나라 국민들은 제정신인가...? 하는,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여러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폴란드 국민들은 안제이 두다의 손을 들어주었고, 다시 많은 성소수자들은 이 나라 폴란드에서 끊임없이 실존의 위협을 느끼는 삶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의 반복이 되고 있는 폴란드의 성소수자 이슈. 저는 이것이 폴란드의 빈약한 성교육과 그로 인해 대다수 국민이 가지고 있는 '성적 주체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과반의 넘는 국민들은 성소수자 차별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걸까요? 지난 대선 릴레이 기록을 정리해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아이들을 'LGBT 이데올로기'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LGBT는 공산주의보다 더 나쁜 '이데올로기'입니다.
폴란드에서 가족의 정의는 여성과 남성의 결합입니다.


 앞선 6월에 있었던 Brzeg 선거유세와 2차 선거를 앞둔 또 다른 선거유세에서, 이제는 전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이 된 안제이 두다의 연설 중 일부입니다. [1]  끊임없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동성애자 그 자체를 현존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관념(ideology)으로만 치부하고 있죠. [2]


"우리는 사람이다. 관념(ideology)이 아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이렇게까지 현직 대통령이, 그리고 국민의 한표 한 표가 소중할 정치인이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되는가? 의아하겠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히려 그의 이런 차별적 발언은 지지자들의 표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PiS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정책을 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극우 정당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하듯 지난 12일, 2차 대선 결과로 안제이 두다가 재선에 성공했으니... 환장할 따름입니다.

 사실 황이 이렇다 보니, 폴란드 내에 성소수자들의 많은 수가 반대 진영의 대표 후보자였던 트샤스코프스키를 지지했습니다. [3] 그렇지만 지난 10일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트샤스코프스키를 지지하는 포스터를 문 앞에 내걸었던 96세 할머니의 집에, 일부러 가톨릭 사제가 방문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어요. [4] 폴란드에서는 매주 성당에 나오는 게 어려울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병들거나 노쇠한 노약자가 있다면 마을의 사제가 가정을 방문해서 성체성사를 해주는데, 집집이 다니며 늘 그렇듯 성사를 해주던 사제가 할머니의 집만 쏙 빼놓은 것이지요. 심지어 할머니 본인이 동성애자인 것도 아니고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사실 트샤스코프스키도 공식적인 석상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두다 대통령처럼 대놓고 비난하고 반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동성애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아는 바이지만,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명백하게 차별적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전 국민의 98%가 폴란드인이라는 단일민족 신화를 가진 나라, 그리고 인구의 90-95%가 가톨릭교도인 폴란드는 타 인종과 타 종교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인 나라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세력과 결탁한 가톨릭 교회의 강건한 교리는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도 직접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마련이지요. 저는 이것이 이 나라의 차별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성수자에 대한 차별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을 파헤쳐보면 사실 이것은 폴란드의 '숨기기 급급한' 성교육과 낙태법이 같은 맥락에 존재합니다. 폴란드의 성교육은 사실상 퇴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경이 닫혔던 지난 4월. 그리고 5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과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을지 불투명했던 4월. 집권당인 PiS는 두 가지 법안을 발의합니다.

 하나는 낙태금지법, 그리고 또 하나는 성교육 금지법입니다.


 현재 폴란드는 한국처럼 기본적으로 낙태가 불법이지만, 강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예외적으로 합법입니다. 하지만 폴란드 집권당은 그 예외적인 경우에마저 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강력한 낙태금지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역사가 오래된 이 과정은 지난 2016년 폴란드의 '검은 시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의 '검은 시위'란 현행법이 예외로 두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중단까지 처벌하겠다는 '낙태 전면 금지법'이 4년 전 발의되자 전국의 여성들이 공분해서 약 1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지난 4월, 코로나바이러스로 통행령이 금지되면 더 이상의 검은 시위는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을까요? 또다시 집권당은 같은 법안 제정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여전히 들끓는 가운데 낙태법 개정은 실패했지만, 같은 날 발의되었던 성교육 금지법은 통과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폴란드에서는 성교육이 불법입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 싶겠지만 사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계속된 휴교령으로 인해 실제 학교에서 현장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장 민감한 이슈로 두드러진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성교육을 감행한 학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입법 이후에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몇몇 교사들과 전문가들의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거죠.

 원래 기존의 성교육도 공식적인 학교 교과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별도의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 시작 전 이른 아침이나 혹은 늦은 오후에, 선택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져서 이미 결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제정된 아동 성애 금지법(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다들 성교육 금지법이라 부르는 이 법)은 다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합니다. 성교육, 성, 생식 건강 및 권리에 관한 정보 (교사, 봉사 활동 종사자, 저자 및 건강 관리 인력 포함)를 제공하는 사람과 조직은 이 법안에 의해 최대 3 년간 구금되어 감옥에 갇힐 수 있다.  [5] 성교육을 반대하는 보수정당의 발의 사유가 또한 이해가 안 되는데, 성교육을 하는 교사들이 동성애 운동가 혹은 아동성애자이기 때문이랍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교육이 아이들을 성에 대해 지나치게 빨리 깨어있게 만들고, 동성애에 익숙해지게 만들기 때문에 성교육은 동성애자들의 급진적인 정치 목표를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6] 아이들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아동성애'를 동일하게 보는 관점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성교육을 통해 다양한 성적 지향에 대해 배우는 것이 동성애자를 양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나라라면 대통령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동성애를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겠습니다만. 작년 11월, 유럽연합의회는 성교육 금지법이 포함되어 있는 아동 성애 금지법안의 도입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7]




 그렇다면, 금지법이 발의되기 이전까지의 성교육은 어떤 형태였을까요? 공식적인 이 성교육 수업의 명칭은 '가족생활(Family Life)' 수업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의무교육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요. 명시적으로는 '개인의 성생활, 의식적이며 책임 있는 부모의 원칙, 가족의 가치, 태아기의 삶, 의식적 출산의 방법 및 조치에 관한 과정'을 가르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가톨릭 교회의 여성에 대한 정치적 통제, 가족에 대한 통제의 내용이 교과서에 가득합니다. 전통적 성 역할만을 강조하는 교육이지요. 2017년 교육개혁 이후 발행되었던 교과서를 보면 전체 교재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173번 사용되지만, '성'이라는 단어는 오직 2번만 사용됩니다. [7] 그것도 사이버 섹스 및 성적 중독과 관련된 문장에서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생활에 대한 주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은 성적 지향에 대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가장 분노했던 부분은 교과서에서 의학적인 '피임'은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자연 가족계획의 반대 선상에 있는 것처럼 서술되며 낙태와 비교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가톨릭 교회법이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폴란드 사람들은 낙태를 죄악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죄악시하는 시선이 낙태뿐만 아니라 피임에까지 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낙태가 불법이고 현실적으로 낙태 수술을 받기 어렵다면 피임이 적극적으로 교육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봄알람 출판사에서 출간된 <유럽 낙태 여행>에는 폴란드의 페미니스트 단체 라젬(Razem)과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이 인터뷰에서 피임을 죄악시하는 폴란드의 문화가 자세히 나와있어 본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폴란드의 가톨릭적 교육과 이념은 피임 또한 낙태와 같은 의미에서 죄라고 치부한다. 피임약을 구하는 과정은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피임약 처방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야 하고, 처방을 받으러 간다 해도 피임약을 원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난하거나 무례한 언사를 하는 등 수모를 겪는 일이 흔하다. 한 번의 처방으로 약을 계속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약값 자체도 비싸다. 이런 식으로 폴란드 사회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주면서 피임과 낙태, 즉 여성 당사자의 재생산권 행사를 막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신앙 있는 이들은 실제로 피임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말을 들으며 한숨이 나왔다. 여성에게 죄의식과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 검은 시위를 전후로 변화하고 있는 대중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런 메커니즘은 이 나라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놀랍지 않게도, 사후 피임약도 마찬가지다. EU에서 사후피임약 구입에 처방전이 필요한 나라는 폴란드와 헝가리뿐이다. (중략) 낙태를 금지하면서 피임도 금지하는 나라. 계속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끝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것이 폴란드의 현재였다.

-유우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2016), 182쪽


 같은 책에 폴란드 성교육에 대해 다룬 인터뷰가 있어 조금 더 실어봅니다. 폴란드 페미니즘 단체 위민 프로테스트의 카타지나 스칼스카 씨와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이에요. 이렇게 여성의 피임이 어렵게 되어있다면, 과연 남성들은 피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제가 가장 뜨악스럽게 읽은 부분이니 심호흡 한 번 하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피임 자체가 죄라면 아이를 원치 않는 폴란드 남성들은 어떤 입장인지도 궁금했다.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자, 카타지나는 "폴란드 남자도 피임 잘 안 한다."라고 우선 단언했다. 그런데 거기에 이어진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꽤 신중하게 이어진 그의 답을 간추려보자면 폴란드 남성들은 임신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피임을 하는 것을 "꺼린다". 여성이 "알아서 어떻게든 임신을 피하기를" 바란다. 거기까지 듣고 우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카타지나는 우리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한 눈짓을 하며 덧붙였다.
 "가톨릭 기반 교육은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남성의 정액은 축복(blessing)이며 여성의 건강에 좋다'라고."
 그의 입에서 '축복'이라는 단어가 뱉어지는 순간 머리로는 화가 나고 뱃속에선 토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그 심경을 여과 없이 표정으로 드러내자 카타지나도 웃었다.
 "아이를 원치 않는데 섹스는 하고 피임은 안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물론 교육이 잘못돼서 벌어지는 거겠죠. 어쨌든 내가 일생 동안 봐온 남자들이 그래요."

- 같은 책, 192쪽




 피임도 어렵고 낙태도 불가하니 마치 폴란드는 인구 재생산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일 것 같지만, 사실은 EU 가입국가 중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입니다. 현실적으로는 60퍼센트 이상의 여성이 낙태를 해도 폴란드 정부는 '생명은 신성하므로 낙태는 죄악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과거 공산국가였던 폴란드는 공산주의 이념이 붕괴하면서 그 자리를 가톨릭 교회 이념이 빠르게 치고 들었습니다. 아마 자국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의 탈 공산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가톨릭 교회와 정치권의 공공연한 결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톨릭 교회는 공공기관 및 학교와 굳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교사 및 학생 가족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가톨릭교도인 학교에 갈 수밖에 없고, 피임과 낙태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재생산과 성적 권리, 성적 지향. 이런 것들에 대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가 다시 자라 부모가 됩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악순환의 반복을 오늘날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교육 금지법 반대 청원 사이트

 물론 이러한 자국의 현실을 바꿔보고자 하는 여러 노력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성교육 금지법 통과 이후에 이에 반대하는 청원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제가 사는 수도 바르샤바 주변에는 집권당인 PiS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가톨릭 교리가 전반적인 국민 의식에 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사실 주변에서만 봐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 전 동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피임에 적극적이고, 이혼한 부부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직된 성교육과 그것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민감하게 의식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수도에 사는, 대졸 이상의 교육을 받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외국어가 유창한, 30대 직장인이라는 인구 편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의 굳건한 보수세력과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엮여있는 이 현실을, 소수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바꿀 수 있을까요?  




 지난 대선운동 기간 동안, 몇 차례의 동성애자를 향한 묻지 마 폭력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폴란드는 LGBT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 극에 달했던 나라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연일 뉴스에서 현직 대통령이 동성애 반대 연설을 하는 것을 극우주의자가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이 일로 인해 지난 5월에 있었던 한 설문조사에서는 폴란드가 EU 국가 중에 동성애자가 가장 살기 어려운 나라 리스트에서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8] 

이미 지난 2016년에 폴란드 의회는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취향, 장애 및 연령을 '혐오 표현'의 근거로 삼아 소외 계층 및 정체성 보호를 강화할 법안을 기각했습니다. 통과되어야 할 법안은 기각되고, 기각되어야 할 법안은 통과되는 현실. 여성의 권리, LGBT 권리가 무시당하는 사회. 이것을 가장 기쁘게 바라볼 집단은 누구일까요?

유럽연합 국가 중 붉은 표시로 이루어진 국가들은 반 LGBT문화가 강한 나라입니다.  (출처: Notes from Poland)

 이제는 다시 집권당이 된 우파 정당 PiS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 역할과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속될수록, 국민들은 여전히 그들을 지지할 테니까요.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할수록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점차 적극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차별받는 반대파들은 그들의 폭력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할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더 나은 성적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지금도 폴란드 정부는 법적 규제를 강화하려 합니다. 가톨릭 교회 세력과 결탁해서 포괄적인 성 교육과 성 평등을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에 대한 공격과 아동에 대한 위협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둡니다. 이것이 현재, 폴란드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폴란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이 나라의 아이들이 만들어갈 나라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이자 가톨릭교도인 플로랑스 몽테르노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9]


"가톨릭의 정신은 자신이 문제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에게 연대하는 거예요. 실제로 가톨릭은 연대, 자선, 연민의 정신에 입각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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